[국회 '김 비서'는 지금④] "차별 없는 세상, 인식 개선이 먼저다"
입력: 2018.08.23 00:02 / 수정: 2018.08.23 00:02

국회 여성 보좌진들이 느끼는 성차별·성폭행의 고통과 관련 전문가들은 인식 개선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정기국회 때 국회 직원 및 보좌진들이 앉아 있는 풍경. /더팩트DB
국회 여성 보좌진들이 느끼는 성차별·성폭행의 고통과 관련 전문가들은 "인식 개선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정기국회 때 국회 직원 및 보좌진들이 앉아 있는 풍경. /더팩트DB

최근 '김 비서가 왜 그럴까'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성황리에 종영했다. 드라마 속 여성 비서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상사로부터, 동료직원들로부터 존중받는 모습으로 그려져 호평을 받았다. 현실은 어떨까. 민의의 전당, 국회에도 많은 여성 '김 비서'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실과 드라마의 극명한 차이 때문이다. <더팩트>는 약 한 달간 전·현직 30여 명의 여성 보좌진 및 전문가들을 만나 국회 여성 보좌진들이 느끼는 남성 보좌진과의 ▲업무차별 ▲진급에서의 차별 ▲성추행 실태 ▲대안 등 총 4편의 기사를 통해 국회 내 유리천장 민낯을 들여다봤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의원실과 실명은 배제했다. <편집자 주>

'성 평등 지원처' 신설 등…국회 내 성차별·성폭행 문제 대안은?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담긴 말이다. 성·신분·지위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차별 철폐'는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문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성차별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역사적으로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의 독립운동을 강조하며 감동을 안겼다. 문 대통령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의지와 방향과 달리 정작 대한민국의 입법을 책임지는 국회에선 여전히 많은 성차별과 성폭행 등 성 관련 문제들이 만연한 상태다. <더팩트>가 지난 한 달간 전·현직 국회 여성 보좌진들을 만나 들었던 국회 내 여성 직원들의 고통은 상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며 역사적으로 여성의 재평가와 남녀차별을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5월 10일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문 대통령. /더팩트 DB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며 역사적으로 여성의 재평가와 남녀차별을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5월 10일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문 대통령. /더팩트 DB

8,9급의 하급 비서들은 여성이 더 많지만 4급 보좌관의 경우 여성이 단 7.2%(총 581명 중 42명)밖에 되지 않는 등 비율에서부터 차별이 있었다. 자연스레 '잡무'가 주어지는 9급 비서의 경우 여성이 64.1%나 되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게 보였다. 의원실 내 한 명씩 있으며 차 준비, 정리, 전화 응대의 업무 등을 도맡는 행정 비서의 대부분이 여성이란 것도 구시대적이란 지적이다. 일부 남성 보좌관들은 "차는 역시 여성이 준비해줘야 한다" 등 성차별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또, 여성 보좌진들은 채용, 진급에 있어서도 여자란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했다.

성폭행 문제도 사례가 많았다. <더팩트>가 직접 들은 사례도 있었지만, 올해 4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실시한 의원실 내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 4월 3일부터 5일까지 국회의원 및 보좌진 1818명을 대상(응답률 50%)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에서 근무하며 직접 '강간 및 유사강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총 2명, 강간 미수 1건, 스토킹 10건, 아주 심한 성추행 13건, 음란전화나 문자 19건 등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가벼운 성추행을 당한 사람은 61명, 성희롱을 당한 사람은 66명이나 됐다. 이러한 사례를 '보거나 들었다'고 한 보좌진들은 유형별로 수십명, 수백명에 달했다. '민의의 전당'이라 불리는 국회가 오히려 일종의 '사각지대'가 된 셈이었다.

◆ 국회 보좌진 성차별, 전문가들이 바라본 대안은?

<더팩트>가 여성 관련 전문가들, 현역 의원들, 보좌진들 상대로 '현재 국회의 성차별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고 질문하자 대다수가 공통적으로 "인식 개선"을 말했다. 인식 개선 없이는 행동에 지침을 두거나 기준을 둬봤자 결국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고광철 한국당보좌진협의회장은 "모두가 함께 인식 개선에 힘쓸 수 있어야 한다"며 "또한 여성 보좌진들이 생활할 수 있는 생태적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고 회장이 언급한 생태적 환경이란 근로 시간의 준수 등 근무 환경을 들 수 있다.

다만, 여성 보좌진들은 환경의 개선이 여성들에게만 '혜택'처럼 주어지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수 보좌진의 견해에 따르면 국회 내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남성 선호'는 자신의 의원을 일거수일투족 책임지고 헌신해야 한다는 잘못된 보좌진 문화에서부터 기인한다. 그러한 문화로 인해 남성들도 자신도 모르게 성차별적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 보좌진들은 자신들은 물론 남성 보좌진들도 출산·육아휴직 등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등, 보좌진 근로 인식, 문화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함께 고 회장은 국회 보좌진 남녀 성비의 기형적 구조와 관련해선 여성 정치인의 정계 진출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여성 의원은 자연스럽게 여성 보좌진을 더 선발할 수 있을 것이고 정치권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도 함께 개선될 것이란 분석에서다.

이와 관련 고 회장은 구체적으로 비례대표를 선발할 때 여성 몫을 더 할당하는 방안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 또한 "현재 남성 의원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남성 보좌진들이 많은 것"이라며 "보좌진 세계에서 성차별이 없어지기 위해선 여성 의원들이 지금보다 더 생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사회 전반에 미투 운동이 확산하자 국회도 성평등 교육에 나서는 등 움직임을 보였지만, 현실에 반영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민주당보좌진협의회가 자당 보좌진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문병희 기자
올해 초 사회 전반에 미투 운동이 확산하자 국회도 성평등 교육에 나서는 등 움직임을 보였지만, 현실에 반영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민주당보좌진협의회가 자당 보좌진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문병희 기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혜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도 "인식 개선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전 위원장은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국회에서도 정기적으로 '폭력 예방 교육' 등을 실시해 국회 내 성차별·폭력 문제 등에 대해 대비하고자 한다. 하지만 참석이 의무가 아니어서 참석률이 상당히 저조하다. 전 위원장은 이와 관련 '성 인지 교육'의 의무화를 강조했다. 그는 "성 인지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남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성희롱을 하고 여성들은 상처를 받는다. 따라서 국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어려서부터 성 인지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성 인지 교육을 등한시하는 한 현재의 문제들은 앞으로도 계속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성차별·성폭력 관련 국회 내 독립된 기구인 '성 평등 지원처'를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소장은 통화에서 "얼마 전 국회 인권센터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성 문제'를 중점으로 하고 좀 더 권한과 위치가 강화된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의 구상에 따르면 해당 기구는 국회의장 직속으로 만들어져 다른 간섭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성차별·성희롱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국회의원의 성 관련 입법활동을 지원할 수도 있다. 또, 국회 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성추행 등 젠더폭력을 심의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국회 4급 보좌관 중 여성 비율은 7.2%밖에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유리천장의 모습이다. 사진은 세계 여성의 날에 시위하고 있는 여성. /이동률 기자
국회 4급 보좌관 중 여성 비율은 7.2%밖에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유리천장'의 모습이다. 사진은 세계 여성의 날에 시위하고 있는 여성. /이동률 기자

성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 뿐만 아니라 정치권 인식, 문화 전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통화에서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전투'하는 상황이 많았다. 같이 부딪히고, 싸우고, 합숙하고, 마시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여성 비율이 부족하는 등 차별로 인식됐다"며 "그러나 이젠 정치에 있어서도 여성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치에 점점 완력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남녀 상관 없이 능력 있고 전문성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때"라고 힘 줘 말했다.

또 박 교수는 오히려 보좌진 사회 내 여성의 역할이 커질 경우 여성들의 정치 입문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정치인이 많아져야 보좌진 내 성차별이 개선될 것'이란 견해와는 또 다른 시선이다. 박 교수는 "보좌진이라는 직업이 정치의 등용문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 있는 여성 보좌진들이 많이 생길 경우 좋은 통로가 돼서 여성들이 정치에 입문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우리 정치 문화가 다르게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

◆ "개선 노력 중…뜻 모으면 충분히 바뀔 수 있어"

물론 국회 내 여성 보좌진들이 겪는 고통을 남성 보좌진들 모두의 문제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남녀 간의 갈등으로 번져선 안 된다는 뜻이다. 여성 포함 다수 보좌진은 현재 국회 내 성차별 등 상황에 대해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것"이라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의원실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국회 보좌진 문화 또한 점차 변화되고 있고, 남성 보좌진들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보좌진들은 모두가 인식 개선 등에 힘쓰고 노력한다면 국회 내 보좌진 사회도 충분히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은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 연합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성차별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기사와 무관) /이선화 기자
국회 보좌진들은 모두가 인식 개선 등에 힘쓰고 노력한다면 국회 내 보좌진 사회도 충분히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은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 연합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성차별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기사와 무관) /이선화 기자

모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여성 보좌진 A 씨는 "여전히 전반적으로 성차별, 성희롱 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더 조심하려 하고, 성평등 인식을 가지려고 하는 남성 보좌진들도 늘고 있다. 당연히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남성 보좌진 B 씨도 "여전히 현재도 문제가 많은 것은 알지만, 많은 의원실이 문제 의식을 갖고 고쳐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녀 성평등의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된다. 사실 개개인의 문제도 있고 하지만 공통된 바른 생각을 공유하며 노력한다면 충분히 더 좋은 보좌진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김영수 민주당보좌진협의회장도 "보좌진 사회가 많이 바뀌고 있다. 저희 사무실에서도 그러한 차별을 없애도록 많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조금씩만 노력하면 다른 사무실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의원실 내에서 (성차별을 없애는) 기풍들을 만들어가 점차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 과정에서 <더팩트>와 만난 국회 근무 10년 차의 한 여성 보좌진은 "그저 남녀의 성 대결 혹은 갈등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성 보좌진들의 평소 노력과 헌신도 매우 높게 평가한다"며 "다만, 여성 보좌진들이 고통 받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고 서로 조금씩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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