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김 비서'는 지금③] 성범죄 '사각지대' 보좌진은 '참을 인(忍)'만…
입력: 2018.08.22 05:59 / 수정: 2018.08.22 08:26

성 문제 사각지대 국회. 지난 4월 실시된 국회 윤리특위 주관 국회 내 성폭력 실태조사에선 성범죄 피해 사례가 수백 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팩트DB
성 문제 '사각지대' 국회. 지난 4월 실시된 국회 윤리특위 주관 국회 내 성폭력 실태조사에선 성범죄 피해 사례가 수백 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팩트DB

최근 '김 비서가 왜 그럴까'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성황리에 종영했다. 드라마 속 여성 비서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상사로부터, 동료직원들로부터 존중받는 모습으로 그려져 호평을 받았다. 현실은 어떨까. 민의의 전당, 국회에도 많은 여성 '김 비서'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실과 드라마의 극명한 차이 때문이다. <더팩트>는 약 한 달간 전·현직 30여 명의 여성 보좌진 및 전문가들을 만나 국회 여성 보좌진들이 느끼는 남성 보좌진과의 ▲업무차별 ▲진급에서의 차별 ▲성추행 실태 ▲대안 등 총 4편의 기사를 통해 국회 내 유리천장 민낯을 들여다봤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의원실과 실명은 배제했다. <편집자 주>

여성 보좌진 성희롱·성추행 '만연'…원인은?

[더팩트ㅣ국회=이원석 기자] "상사였던 보좌관이 술자리에서 저와 선거를 돕는 아르바이트생들의 허벅지와 등을 계속 쓰다듬었고, 나중엔 뒤에서 끌어안거나 귀, 손에 뽀뽀를 하기도 했어요. 캠프에서 매우 중요한 보좌관이었기 때문에 폭로하고 싶어도 저만 손해라는 생각을 했죠. 다음 날 조심스럽게 '어제 스킨십이 과하셨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후론 왕따를 시키더라고요. 물론 성희롱은 여전했고요."

모 의원실에서 9급 비서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그만둔 30대 여성 A 씨는 <더팩트>와 만난 자리에서 상관이었던 보좌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이같이 말했다.

직장·조직 내 성폭행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이던 올해 상반기, 입법부인 국회에선 여러 형태의 '미투방지법'이 발의됐다. 정치권은 일제히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직장·조직 내 성폭행을 비난했다. 그러나 <더팩트>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좌진들의 토로에서 정작 국회에선 다양한 형태의 성폭행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올해 4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실시한 의원실 내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지난 4월 3일부터 5일까지 국회의원 및 보좌진 1818명을 대상(응답률 50%)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에서 근무하며 직접 '강간 및 유사강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총 2명, 강간 미수 1건, 스토킹 10건, 아주 심한 성추행 13건, 음란전화나 문자 19건 등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가벼운 성추행을 당한 사람은 61명, 성희롱을 당한 사람은 66명이나 됐다.

성폭력 범죄를 목격하거나 들은 적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훨씬 많았다. 강간 및 유사강간 50명, 강간미수 52명, 음란전화·문자·메일 106명, 스토킹 110명, 심한 성추행 146명, 가벼운 성추행 291명, 성희롱 338명 등이었다. 성폭력 피해자는 직급이 낮은 7급 이하 여성 보좌진 비중이 높았고 가해자는 6급 이상 남성 보좌진이 다수였다. 아울러 가해자 중엔 국회의원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여성 보좌진은 <더팩트>에 성희롱·성추행을 직접 겪거나 들었다고 전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더팩트DB
다수 여성 보좌진은 <더팩트>에 성희롱·성추행을 직접 겪거나 들었다고 전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더팩트DB

◆ 외모 평가·술자리서 신체접촉…성희롱·추행 '만연'

<더팩트>가 만난 다수의 여성 보좌진들도 다양한 형태의 성희롱·성추행을 직접 겪거나 들었다고 했다. 일단 성희롱은 매우 흔하다. 흔히 성희롱은 남성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외모 평가', '성적 농담' 등이다. 여성 보좌진들은 '짧은 치마가 잘 어울린다', '달라붙는 옷을 입으니 예쁘다' 등의 발언들을 남성들로부터 지속해서 들었다고 했다.

성추행은 A 씨의 사례처럼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한 여성 보좌진은 "한 보좌관은 술만 취하면 아무렇지 않게 신체접촉을 하고 다음 날만 되면 모르는 척한다. 근데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술자리에 꼭 여성 보좌진을 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술자리에서 성추행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몇몇 남성 보좌관들은 여성들의 술자리 참석을 압박하기도 했다. /더팩트DB
술자리에서 성추행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몇몇 남성 보좌관들은 여성들의 술자리 참석을 압박하기도 했다. /더팩트DB

모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여성 B 씨는 근무 기간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씩은 술자리에 불려갔다고 했다. 상관이었던 보좌관은 B 씨에게 '술자리를 피하면 안 된다'며 압박했고, 다른 의원실 남성 보좌진들과 술자리에도 자주 참석했다. 더군다나 의원실 내 다른 남성 비서도 있었지만, 해당 보좌관은 꼭 여성을 술자리에 대동하려고 했다고 B씨는 전했다.

6급 비서 C 씨는 과거 다른 의원실에서 근무할 때 상관이었던 남성 비서관으로부터 매일 밤 사적인 내용의 문자를 받아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문자 내용엔 성적 농담 등도 섞여 있었고 '불편하니 사적인 연락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오히려 '예민한 여성'이라는 좋지 않은 소문만 돌았다고 한다.

몇몇 보좌진은 같이 근무하는 남성들뿐만 아니라 민원인들로부터도 성추행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상습적으로 의원실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해 여성 비서들에게 성추행적 발언을 하고 노골적인 시선으로 불편하게 하는 경우다. 9급 비서 C 씨는 한 민원인이 엉덩이를 만진 적도 있다고 했다. C 씨는 당시 워낙 당황스러웠고 지역구민이었기에 소란을 벌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넘어갔지만, 며칠간 상당히 괴로웠다고 했다.

사회전반에 미투 운동이 터지면서 폐쇄적인 국회로 확산할 것으로 이목이 쏠렸지만, 오히려 감추기 급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승희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이 지난 5월 9일 국회는 왜 미투 사각지대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는 모습. /유승희 의원실 제공
사회전반에 미투 운동이 터지면서 폐쇄적인 국회로 확산할 것으로 이목이 쏠렸지만, 오히려 감추기 급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승희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이 지난 5월 9일 '국회는 왜 미투 사각지대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는 모습. /유승희 의원실 제공

◆ 국회 보좌진 사회 '폐쇄성' '남성성'이 원인

다수 여성 보좌진들은 국회가 다른 조직, 기관 등에 비해 성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더 권위적·폐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국회 보좌진 사회의 특성 때문이다.

지난 4월 국회 윤리특위 성폭력 실태 조사에서 피해자가 7급 이하 여성에 몰려있고, 가해자는 6급 이상 남성에 몰려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당시 실태조사를 수행했던 박인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 인한 성폭력 일상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성범죄 피해에 대응하기 어려움 ▲국회 내 성폭력 범죄 대응 시스템 불신 등을 문제점으로 진단했다.

게다가 같은 이유로 성추행 등을 겪어도 밖으로 드러나기 쉽지 않다. 지난 3월 국회에서도 첫 '미투'가 나왔다.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ㄱ 씨가 자신의 실명을 내걸고 과거 3년간 같은 의원실에 근무했던 ㄴ 보좌관으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이었다. 미투 운동이 처음 시작됐을 때부터 떠돌던 이야기가 많았던 국회에선 첫 미투를 시작으로 고발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ㄱ 씨의 미투는 처음이자 마지막 국회 미투가 됐다.

ㄱ 씨는 이후 국회 내에서 '꽃뱀'으로 몰리는 등 '2차 가해'로 고통을 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ㄱ 씨는 지난 5월 <여성신문>과 인터뷰에서 "잠도 잘 못 자고 힘들었다. 헛소문은 물론이고, 지인마저 '좋게 합의를 보라'고 하더라"며 "제가 미투를 할 당시에도 더 나오긴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2, 3호가 안 나올 것을 예상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 보좌관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보좌관들이 워낙 성 인식에 둔감하다"며 "보좌진 사회는 다른 조직들보단 더 경직됐고,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게 사실이다. 저도 들었던 (성추행) 내용이 많이 있었지만, 국회의 특수성 때문에 미투 운동으로 이어지진 못했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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