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농단 특별법 통과가 지연되면서,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진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일 양승태 사법농단 특별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국회=임현경 인턴기자 |
양승태 사법농단 특별법 계류, 국회에 비판 쏟아져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하여 사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에 대해,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양승태 사법농단 공동대응 시국회의·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2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사법농단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다.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발언대에 올라 "특별법 통과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아 법안을 만들 때 관여한 단체 분들을 모시고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이제 법원의 자정을 기대할 단계가 아니다. 법관이 방탄재판을 이용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작태를 더 이상 두 손 놓고 볼 수는 없다"며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영장전담법관 및 특별재판부 구성, 국민참여 재판을 포함하는 '양승태 사법농단 재판절차 특례법' 제정 △특별재심제도, 사법농단 피해구제위원회 설치 등을 포함하는 '양승태 사법농단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하여 사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수행 등 세 가지 사항을 촉구했다.
이날 발언대에 오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법농단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최근 관련 인사들의 압수수색영장이 연달아 기각된 일을 지적하며 "법원 스스로가 입법의 필요성을 보여줬다. 사법부의 셀프 개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국회가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특별법을 제정, 반헌법적 사법농단을 바로잡고 공정히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 반드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사법부 독립을 이뤄내는 데에 국회가 앞장 서주시길 부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염형국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 센터장 또한 "국회, 특히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이 법안심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법사위의 조속한 논의를 요구했다.
시민단체 측은 국회가 입법을 통해 '사법농단'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지난 18일 주최한 사법농단사태 주요이슈 심층분석 기자좌담회 모습. /문병희 기자 |
◆ 피해자 구제·재판권 보장 시급한데 '손 놓은 국회'
시민단체는 사법부의 신뢰와 국민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선 국회가 법안을 통해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20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국회라면 사법부가 헤매고 있을 때 특별법 제정에 나섰어야 했는데 몇 달 동안 방치했다. 이는 사실상 직무유기"라며 "눈치만 보며 손 놓고 있는 국회가 상황 개선을 위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회가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의지가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담당 상임위인 법사위 위원장이 자유한국당 소속 여상규 의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의원들도 해당 법안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승태 사법농단 재판절차 특례법'을 발의한 의원 56명 중 민주평화당(김종화·정동영) 2명, 정의당(심상정·추혜선) 2명을 제외하면 전부 민주당 소속이다. 여기에 장병완 평화당 의원을 추가하면 '양승태 사법농단 피해자 구제 특별법' 발의 의원 명단이 된다.
익명의 관계자는 "법안이 법사위 접수만 된 상황인데, 구성원상 통과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며 "한국당 의원들이 결사반대하고 있고, 민주당은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나 의지가 크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법안은 많은데 이런 식으로 계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법조 관계자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결의안에 따라 해당 법안을 처리한다면 통과 가능성이 높겠지만, 애초에 사개특위에 기대를 걸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앞선 20대 상반기 사개특위가 법사위 인적 구성과 유사했을 뿐 아니라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도 사개특위 구성이 결정됐지만, 본격적인 진행은 미진한 상황이다.
또, 법원 행정처가 20대 의원들에 대한 정보를 쥔 만큼 국회가 사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비공개 문건 중에는 20대 국회의원의 주요 이력, 평판, 가까운 법조인, 사법부에 대한 인식, 개인 정보 등이 담긴 '20대 국회의원 분석' 파일이 포함됐다.
일각에선 국회, 특히 법사위가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기에는 구조 문제상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진은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달 1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모습. /문병희 기자 |
◆ 국회의 억울함? 처리 법안 수 한계…우선순위는 '글쎄'
다른 한 편에서는 "직무유기를 논하기에는 국회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력 부족과 구조적 한계 탓에 신속한 법안 처리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오유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주요 법안의 통과가 지연되는 원인을 간단히 설명할 순 없다고 했다.
오 간사는 "법안 처리 속도에 대해서는 20대 국회도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발의 법안이 과거에 비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처리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법안 발의 건수가 실적처럼 다음 공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법안을 쏟아낸다. 신속한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설명했다.
또, "다른 상임위에서 논의를 끝낸 부분을 법사위가 다시 수정·보완하며 애초 취지와 내용이 달라질 때도 있다. 비효율적인 과정이다. 이를 빌미로 계류시키기도 한다. 법사위 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법안 통과가 달라지는 문제는 위원장의 당적과 상관없이 늘 그래왔던 부분"이라며 법사위가 법안 심사 권한을 갖는 구조를 지적했다.
그러나 8월 임시국회에서 우선적으로 다루는 법안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냐'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박 대표는 "정기국회 전 임시국회서 양승태 사법농단 관련 법안 두 가지를 통과 시켜야 한다"며 "은산분리나 규제 완화를 통과시키느라 나중으로 넘겨선 안 될 일"이라 일침을 가했다.
국회가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 수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오 간사도 "민주당이 여러 법안 가운데 국민 합의가 충분하지 않고 첨예한 대립각이 세워질 것이 분명한 은산분리·규제프리존 등을 우선 추진하는 것은 의아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사실상 파기하는 사안인데, 오히려 민주당이 나서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이 현재 제대로 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