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시평] '불통'의 정치인들, 정조의 '소통 철학'을 본받자
입력: 2018.08.11 00:01 / 수정: 2018.08.11 00:01

한국에서 가장 소통이 필요한 분야는 정치권이다. 각 당의 대표를 새롭게 선출했거나 선출하는 요즘, 후보들뿐 아니라 그들의 지지자들끼리도 극단적으로 분열 및 대립하는 경우가 잦아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사진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 예비경선을 통과한 김진표, 송영길, 이해찬 후보(왼쪽부터)./이새롬 기자
한국에서 가장 소통이 필요한 분야는 정치권이다. 각 당의 대표를 새롭게 선출했거나 선출하는 요즘, 후보들뿐 아니라 그들의 지지자들끼리도 극단적으로 분열 및 대립하는 경우가 잦아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사진은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 예비경선을 통과한 김진표, 송영길, 이해찬 후보(왼쪽부터)./이새롬 기자

[더팩트|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우리 사회는 장유유서나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독특한 문화와 학교에서 인문학이나 토론 수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 등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원활히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많거나 조직에서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은 보다 젊은 사람이나 아래 직급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막히면 나이나 직급을 무기 삼아 무턱대고 나무라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이가 젊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들은 좋은 의견이 있어도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 생기며 좋은 의견은 사장된다. 학교에서 인문학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거나 토론을 하는 기회가 많지 않은 점도 여러 분야의 불통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서양이나 보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자라난 외국인들은 기탄없이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한국은 아직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한국에서 가장 소통이 필요한 분야는 정치권이다. 정치인들 사이뿐 아니라 정치인들과 국민 사이도 불통이 지배한다. 각 당의 대표를 새롭게 선출했거나 선출하는 시기다. 후보들뿐 아니라 그들의 지지자들끼리도 극단적으로 분열 및 대립하는 경우가 잦다. 마치 선거를 치르고 나면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비방하고 실제로 선거가 끝나도 서로를 외면한 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회에서 정치인들끼리 험담이나 욕설을 퍼붓거나 심지어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보았다. 정치인들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걸핏하면 서로 대화를 차단한 채 극단적인 대립만 일삼으며 국회를 공전시키는 경우가 잦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당파만이 옳고 상대는 무조건 그르다는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도 선거철을 제외하고는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들은 표가 아쉬운 선거철에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지역구를 돌며 시민들의 손을 잡고 90도 인사를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행동한다.


루소의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는 말이 슬프지만 현실이 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정조에게서 배워야 한다. 정조는 유가 사상을 대표하는 사서오경 중의 하나인 '서경'을 탐독하며 소통을 자신의 중심철학으로 삼았다. '서경'에 보면 순임금이 요임금을 평가하면서 “여러 사람에게서 살펴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며, 하소연할 곳 없는 사람들을 모질게 대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내치거나 버리지 않은 것은 오직 요임금만이 잘 해냈다”고 말한다.


결국 요임금은 자신보다는 남의 좋은 의견을 잘 따르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았다는 말이 된다. 순은 임금이 되자 사방의 문을 열어놓고, 사방에 눈을 밝혔으며, 사방에 귀를 열어놓았다고 한다. 임금이 되자 오직 소통에 힘썼다는 것이다. 신하인 고요가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들이 어질어지고 모든 일이 편안해지네. 임금이 좀스러우면 신하들이 게을러지고 모든 일이 어긋나네”라고 노래를 부르자 순임금은 절을 했다고 한다. 신하가 임금에게 경계의 말을 올리자 순임금은 절을 할 정도로 귀와 가슴이 열린 사람이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요순시대가 다시 올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며 자신도 요순과 같은 임금이 되고자 했다. 정조가 소통을 실천한 사례는 많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반대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심환지와 약 4년에 걸쳐 297통의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정조가 욕을 하는 대목도 나오고 심환지와 정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조를 지시하는 부분도 있다. 정조가 편지를 읽은 뒤에는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는데도 심환지가 남겨두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편지가 공개되자 정조가 반대파 인물과 짜고 술수를 부리기도 했다는 둥 말이 많았다. 화를 내고 욕을 하는 구절을 보고는 정조의 인간적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정조가 반대파의 중심인물이며 자신을 독살한 배후 인물로까지 의심받는 심환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 사실을 통해 어리석은 군주와는 다른 정조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 불통의 권력자는 반대 세력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귀는 닫고, 말도 섞지 않으려 한다. 반면에 정조는 반대 세력조차 소통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국내든 국제사회든 분열과 대립의 시대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차이는 차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상대방 사이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벽을 쌓는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대화와 타협, 소통이 끼어들 여지는 처음부터 없다.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소통하는 것을 보면 ‘쇼’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진정성은 갖다버린 지 오래이면서도 자신이 소통을 하는 양 연출하는 데 급급하다.


우리는 지금 불통이나 ‘쇼’ 에 불과한 소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조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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