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은 최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사구시 정신'을 화두로 꺼냈다./더팩트DB, 청와대 제공 |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실사구시(實事求是).'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가장 자주 쓴 글귀다. 사전적 의미는 '사실'에 바탕을 두어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진보·보수 특정 이념을 벗어나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을 찾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현실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정신은 남북 관계와 IMF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네 글자를 문재인 대통령이 끄집어냈다. 여름 휴가 후 복귀한 문 대통령의 국정 복귀 메시지였다. 지난 6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실사구시적인 과감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김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와 경제 번영을 이뤄가겠다"며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의 과제도 민주정부의 자부심, 책임감으로 온힘을 다해 해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실사구시를 위한 핵심 키워드는 '민생'과 '규제혁신'이었다. 최근 고용 등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 불이 켜지자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국정운영의 중심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경제는 국민들의 삶입니다. 경제 활력은 국민들의 삶의 활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과 소비 능력이 높아져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은 분배에 초점을 맞춘 '소득주도성장론'에 주력해 왔지만, 집권 2년 차 들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보수 진영의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분배냐, 성장이냐'란 공리공론(사실에 맞지 않은 이론과 실제와 동떨어진 논의)보다 국민 삶에 초점을 맞춰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진들에게 경제 상황과 관련해 "실사구시적인 과감한 실천"을 주문했다./청와대 제공 |
같은 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고, 지난 7월 문 대통령은 인도 삼성전자 신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두 일정 모두 일자리 창출에 방점이 찍혔다.
일각에선 이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불공정한 경제 체질을 바꾸자던 문 대통령이 그 약속을 저버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실사구시로 대처했던 데 대해 김 전 대통령도 지난 2008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우리는 오랜 독재정권에 시달리면서 빈부격차가 심하고 분배가 부족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80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임시직입니다. 이런 노동자들은 외식할 여유도 없고, 휴가갈 여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임시직 월급 받아서는 겨우 입에 풀칠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그걸(노동의 유연성 정책-구조조정) 시작했기 때문에 저도 지금 그때 판단을 잘 했느냐 하는 반성이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때는 외환위기 상황으로 아주 어려울 때니까 기업을 살리려면 어느 정도 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구실로 (구조조정을) 했는데 그때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늘어 이제 임시직이 정규직보다 숫자가 많아졌다"며 "같은 일 하고 월급은 반도 못 받고 그걸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했지만, '양극화와 불평등'이란 결과를 낳은 데 대한 자성이었다. 이는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더 심화됐다. 이를 바로 잡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공언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실사구시의 과감한 실천'이란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게 됐다. 그만큼 현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다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잘못 쓰면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