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조작 사건 주범인 '드루킹'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피의자 신분이 됐다. 사진은 김 지사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 참석한 뒤 국회를 떠나는 모습. /이새롬 기자 |
특검, 2일 압수수색 등 증거 확보 나서…이르면 주말 소환 관측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정조준했다. 김 지사를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데 이어 전방위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 확보에 나섰다. 김 지사의 소환이 임박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칼을 겨눈 특검과 방어에 나설 김 지사의 명운이 주목된다.
특검팀은 김 지사를 '드루킹' 김동원(49·구속) 씨의 공범으로 판단하고 있다. 드루킹 일당의 진술과 물증을 토대로 크게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 활동을 묵인·지시하거나 관여하고, 드루킹이 만든 조직인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측으로부터 후원금 27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김 지사가 2016년 11월 드루킹 일당 사무실인 경기 파주 느룹나무 출판사에서 댓글 조작 자동화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회를 보고 댓글 조작을 승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은 김 지사의 소환에 앞서 혐의 입증을 위해 증거물 확보에 주력하는 등 '실탄'을 장전하고 있다. 2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창원 집무실, 관사 등에 검사와 수사관 17명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아울러 김 지사가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국회 비서의 컴퓨터 등도 압수했다. 특검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증거물을 분석한 뒤 김 지사와 드루킹과의 관계와 위법성 여부를 명확히 밝히겠다는 방침이다.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을 공범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드루킹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을 마치고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앞서 특검은 김 지사와 드루킹이 메신저 '시그널'을 통해 나눈 대화가 담긴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확보했다. 드루킹에 제출한 이 기기에는 김 지사가 지난해 1월 드루킹에게 대선 후보 정책 공약 관련 조언을 요청하는 대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 포럼에 참석해 '재벌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난 뒤 김 지사가 드루킹에게 기조연설에 대한 반응을 물은 내용도 특검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조연설에 앞서 김 지사가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을 예약했다는 메시지를 드루킹에게 보낸 것을 두고 특검은 서로 만나 관련 내용의 의견을 나눈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김 지사와 주변 인물들의 계좌를 추적해 김 지사가 2016년 11월 초께 느릅나무 출판사에서 열린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한 단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댓글 조작을 승인한 것으로 보고 '업무방해 공범 '등 혐의를 적용했다.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조작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드루킹이 지난해 2월 3일 재벌 개혁 정책인 '개성공단 2000만평 개발' 문건을 김 지사에게 전달한 정황도 특검은 포착했다. 같은 해 2월 9일 실제 당시 문 후보는 개성공단 확장 계획을 내놔 신빙성이 높은 상황이다. 문 후보는 페이스북에 "정권 교체를 이루면 당초 계획대로 개성공단을 2단계 250만평을 넘어 3단계 2000만평까지 확장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국정농단 최순실 씨를 빗대 드루킹이 김 지사의 비선실세가 아니냐는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익범 특검이 드루킹 관련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시작한 2일 오후 특검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전 김경수 의원실(현 김정호 의원실) 압수수색을 마친 후 물품을 들고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
김 지사는 정면 대응할 방침이다. 김 지사 측은 동명이인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 등 3명을 변호사로 선임하고 특검 조사를 대비하고 있다. 앞서 김 지사는 드룹나무 출판사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킹크랩' 등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댓글 조작 승인을 부인한 바 있다. 실제 경찰은 지난 5월 김 지사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으나 댓글 조작에 관여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김 지사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페이스북에 "이제 갓 1개월 남짓 된 도청 사무실과 비서실까지 왜 뒤져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긴 어렵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과 이미 경찰 조사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하고 밝혔던 사안들이, 마치 새롭게 밝혀지고 확정된 사실처럼 일부 언론에 마구잡이로 보도되면서, 조사 결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을 통한 망신 주기, 일방적 흠집 내기로 다시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당당하게 이겨내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드루킹과 대선 전 메신저를 주고받는 등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줄곧 선을 그어온 연장선이다.
법조계에선 이런 정황들이 김 지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A로펌 소속 한 변호사는 1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김 지사와 드루킹 관계를 의심할 만한 대화 내용이 담긴 증거라면 명백한 증거가 아니더라도 정황증거로서 가치가 있다"면서 "특검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정황이 구체성을 띠게끔 수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 측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김 지사와 드루킹이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던 만큼 실체를 밝힐 과제를 특검은 떠안고 있다. 가뜩이나 '빈손 특검'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시점에서 수사 선상에 올랐던 노회찬 전 의원의 투신 사망으로 위축됐던 특검이다. 반면 김 지사는 여러 물증과 진술이 더 나온 상황에서 기존보다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게 됐다. 자칫 정치적 타격을 받을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특검은 이르면 이번 주말 김 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