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의 한 호프집을 깜짝 방문해 청년 구직자, 음식점주 등 시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청와대 제공 |
최저임금 이슈 등 음식점주·청년 구직자·경력단절여성·중소기업대표들과 격의 없이 대화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다들 좀 놀라셨죠? 저는 오늘 아무런 메시지를 준비하지 않고 왔습니다. 그냥 오로지 듣는 자리 그렇게 생각하고 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의 한 호프집에 '깜짝 등장'했다. 대선 후보 당시 여러 차례 "퇴근길 국민들과 소주 한잔 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다만 장소는 남대문시장에서 '광화문'으로, 주종은 '소주'에서 '맥주'로 바뀌었다.
이번 일정은 '퇴근길 국민과의 대화'라는 콘셉트로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 자리엔 배준·안현주·이찬희 청년구직자, 이태희 편의점주, 이종환 음식점주, 김종섭 아파트 근로자, 은종복 서점사장, 박용만 대한상의회장, 변양희 도시락업체 사장, 정광천 중소기업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 이슈와 관련한 정부부처 관계자를 만나는 것으로 알고 참석자로 선정됐으나, 청와대는 행사 시작 직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과 소통 잘 하겠다고 약속 드리면서, 퇴근길에 시민들 만나겠다 그렇게 약속을 했었다. 처음에는 퇴근하는 직장인들 만나서 편하게 맥주 한잔 하면서 세상사는 이야기 이렇게 가볍게 나누기로 했는데, 요즘 최저임금, 노동시간, 또 자영업 그리고 또 고용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가 되는 그런 상황이어서 그런 말씀들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깜짝 미팅'은 음식점을 운영 중인 이종환 씨의 건배사로 시작됐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들 다 대통령께서 아끼고 사랑해주십시오. (건배사는) '아싸'로 하겠다. 아끼고 사랑 합시다, 아싸"라고 외쳤다.
건배 후엔 최근 경제 상황과 민심에 대해 진지한 얘기가 오갔다. 이 씨는 "정책을 세울 때 생업과 사업을 구분해달라. 근로시간, 시간 외 수당, 주휴수당 등 정책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다. 정말 최저 근로자만도 못해서 가족끼리 하려고 한다. 그러니 일자리 창출도 안 된다. 무인 시스템 가동할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문 대통령은 "(가게를) 얼마나 했나?"라고 물었고, 이 씨는 "23년 했다. 그런데 내 자식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일본은 대를 이어 성장을 하는데 그런 게 굉장히 아쉽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운영 중인 이태희 씨는 아르바이트생들의 4대보험료 공제 문제 등을 지적하며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을 했더니 20~30만원 오더라. 그런데 그것을 받으려면 4대 보험을 매달 100만 원을 넣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청년 구직자인 이찬희 씨는 '취업준비 비용'을 묻는 문 대통령의 질문에 "이공계생들은 자격증 공부에 돈이 많이 든다"며 "저는 자격증 3개 준비하고 학원만 4개 다닌다. 한 달에 80만 원 이상 든다"고 말했다.
공무원 준비를 하다 진로를 변경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27살 배준 씨는 "학비와 용돈을 벌어야 해서. 나이가 든 만큼 부모님께 손 벌리기 미안하다"면서 "알바도 잘 구해지지 않더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언어치료사인 안현주 씨는 경력단절여성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안 씨는 "쌍둥이를 낳는 바람에, 여러 가지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러고 나서 일을 그만둔 지 4년"이라며 "주변 환경이 정말 100% 지원된다면 충분히 복귀할 수 있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제가 일을 하면 보모에게 최저임금에 맞춰서 돈을 드려야 하고, 아이 참 기르기 어렵다"면서 정부 차원의 보육교사 처우 개선 등을 바랐다.
10년째 아파트에서 일하는 김종섭 씨는 "은행에 적금해도 이익이 없으니 부동산으로 다 돈이 몰려 버린다"며 "적금은 이율이 적으니까 안하게 된다. 그런 것 좀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건의했다.
정광천 중소기업 사장은 주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영 애로를 호소했다. 그는 최저임금과 관련해 "업종별로 지역별로 개별적으로 속도 조절을 할 필요는 있지 않나 싶다. 큰 틀에서는 동의를 하지만…"이라면서 주52시간 근무제에 대해선 "(중소기업은) 계절적 상황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제도에서 어려움을 겪는,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분들 위해 만들어진 게 최저임금인데, 직종에 차별을 가하면 취지에 맞지 않기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이런 논의를 많이 하겠다"라고 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만남은 올해 초부터 기획됐던 행사로 구직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 이슈 등) 최근의 경제 상황을 반영해 여과 없이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