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에서 열린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인사특별청문위원회는 정해진 답을 듣기 위한 질문만을 반복했다. 사진은 이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문을 받는 모습. /사진=뉴시스 |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취재기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자신이 원하는 답을 미리 정해놓고 상대방에게 질문해서 어떻게든 원하는 대답을 듣는 행위나 그렇게 행위하는 사람을 가리켜 '답정너'라고 합니다.
답정너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2012년 신어 자료집에 수록됐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두루 사용하는 말입니다. 온라인상에는 '답정너의 흔한 예'라는 제목으로 메신저 대화 내용이나 드라마·영화의 한 장면이 게시되기도 합니다. '답정너 퇴치법'도 있습니다. 행위를 뚜렷이 지칭하는 말이 생기고 그런 사람을 콕 짚어 무안하게 만드니, 실제 답정너는 드물어졌죠.
하지만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임명 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회는 답정너의 향연이었습니다. 이날은 이동원 후보자가 김선수·노정희 후보자에 이어 대법관의 자격을 검증받기 위해 자리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법관으로서의 소신과 각오를 밝히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재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건에서도 절실하게 진실과 정의를 찾는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평범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정의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청문회에서 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후보자의 '보수 성향'인 것처럼 보였다. 사진은 이 후보자가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선서문을 낭독하는 모습. /국회=임현경 인턴기자 |
이제 이 후보자가 대법관으로서 적합한지, 약자를 존중하는 사법부를 위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아볼 차례였습니다. 그러나 의원들은 그가 '보수 성향'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 보였습니다. 이 후보는 이에 대해 "저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재판마다 다르지만, 그런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말이죠.
진보 진영에서는 이 후보자가 보수 성향임에도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으니 '다른 후보자들이 진보 성향이라서 편향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이념 논리는 잘못됐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자가 가장 아쉬운 대법원판결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꼽았다"며 "이렇듯 법적 판결은 정치적 잣대 없이 판단이 이뤄지는 것인데 이념적 색채를 강조하시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 또한 "이 후보자의 보수 성향이 재판에 영향을 주지 않듯 진보 성향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정 연구단체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에 옳지 않은 결정을 할 거란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김 후보자에게 특정 학회의 정치 편향성을 주장했던 일부 의원들을 겨냥했습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김선수·노정희 후보자를 옹호, 보수 진영은 두 후보자를 깎아내리는 데 열중했다. 사진은 청문회에 참석한 의원들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
보수 진영에서는 이 후보자의 '국가 정체성'이 드러나는 과거 판결을 칭찬하면서 '앞선 두 후보자가 얼마나 대법관으로서 부족한 사람인지'를 부각하는 데에 열을 올렸습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국제인권법학회가 '편향적인 사조직이 아니냐' 질문했습니다. 이 후보자가 "판사들 사이에선 일반적인 자율연구모임"이라 답하자 송 의원은 "대법원이 연간 100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지원한 것이 옳은 것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이 후보자는 이에 "정식 전문분야연구회는 세미나 같은 활동을 하기 때문에 예산이 나온다"며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은재 한국당 의원은 "다운계약서가 불법인지 밝혀달라. 김선수 후보자는 관행이라 법과 원칙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분이 어떻게 대법관이 되겠냐"고 강조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과세적 측면에서 보면 예전엔 실거래가, 기준 시가, 과세표준 등 어느 방식으로 신고해도 세금 탈루로 평가하지 않았다"며 "2006년에 실거래가 신고 의무가 생겨 그 이후에는 불법이 맞지만, 그 이전에는 잘 모르겠다. 반성은 하고 있지만, 불법 여부에 대해서는 명백한 의견 정리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김 후보자, 노 후보자의 설명과 같은 맥락이었지만, 야당 의원들의 반응은 이전과 달리 호의적이었습니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김 후보자는 삼권분립을 해치는 편향적 추천위원회를 거쳤고, 노 후보자는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논란이 있었다"면서 "이 후보자는 대법관으로 손색없는 분이다. 청문회에서 김 빼려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성 문제도 한 건(다운계약서)이다. 물론 관행이었고 과세 표준 작성이었지만, 서면을 통해 담백하게 사과했다"며 기쁨을 표했습니다.
김도읍 한국당 의원은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적폐 청산을 주창하는 문재인 정부가 또 다른 심각한 적폐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청문회에서 질문하고 있는 의원들 모습. /사진=뉴시스 |
김도읍 한국당 의원은 대뜸 이 후보자가 지금껏 민사 재판에서 강제 조정 사건을 몇 건이나 맡았는지 물었습니다. 이 후보자가 기억나는 두 가지 일을 막 설명하려 하는 찰나, 김 의원이 "전체 민사 재판 건수가 몇이냐"며 말을 잘랐습니다. '1000건'이라는 답을 들은 김 의원은 "그럼 0.2% 정도군요"라고 나지막이 읊조린 뒤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김 의원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불법 시위 때문에 40일이 지연됐다. 그래서 해군이 청구소송을 했는데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주민들에게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공약했고, 재판부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며 "여기에 김 변호사가 시위꾼 변호인 단장이었다. 이런 0.2% 미만의 확률의 일은 대통령과 사법부 커넥션이 아닌가. 삼권분립국가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후보자는 "언론 보도를 통해 봤을 뿐 정확한 경위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고, 김 의원은 "이것 외에 또 있는데 그건 추가 질의 때 다시 말할 것"이라며 질의를 마쳤습니다. 사실상 이 후보자의 대답이나 의견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김 의원은 이 후보자의 대법관으로서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해 자리한 것이었지만, 이 후보자의 말을 몇 번이나 가로막으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그친 것이죠.
삼권분립을 위한 입법부, 즉 국회의 사법부 견제는 중요하며 꼭 필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자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은 엄격한 질문자로서 적합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후보자는 여야 의원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청문회에서 소외되고 말았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서, 질문을 듣는 사람은 중요치 않으니까요. '이동원 없는 이동원 청문회'였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