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 사람들] 라이벌 그리고 동지…유시민의 '오열'
입력: 2018.07.25 17:00 / 수정: 2018.07.25 17:00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생전 유시민 작가와 싸우면서도 정치적 길을 함께한 깊은 관계다. 사진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 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유 작가. /사진=뉴시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생전 유시민 작가와 싸우면서도 정치적 길을 함께한 깊은 관계다. 사진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 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유 작가. /사진=뉴시스

'진보의 큰 별이 떨어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1956년 8월 31일~2018년 7월 23일)이 향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루킹 의혹'에 스러졌지만, 노 의원은 노동운동가이자 '진보의 아이콘'으로 한국 진보정치 지형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의 마지막 길을 동료 정치인들과 지인 등 많은 사람들이 세대와 진영을 넘어 '기억'하고 있다. <더팩트>는 노 의원과 인연이 있었던 일부 정치인들과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편집자 주>

한때는 치열하게 다퉜고 둘도 없는 동지가 된 魯-柳

[더팩트ㅣ이원석 기자]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정사진을 마주한 유시민 작가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애써 참았지만 곧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잔을 올리며, 절을 하면서도 그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유 작가는 결국 상임장례위원장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 앞에 서서는 소리 내 울었다.

23일 밤 서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노 의원을 떠나보내는 유 작가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애틋했다. 그럴 만도 했다. 노 의원과 유 작가는 한때는 강력한 경쟁 상대였고 또,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나이는 노 의원이 3살 많지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이정미 대표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유시민 작가. /뉴시스
이정미 대표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유시민 작가. /뉴시스

지난 2004년 각각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소속이 달랐던 두 사람은 유난히 충돌이 잦았다. 먼저, 유 의원이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민노당으로 가는 표는 사표(死票)'라고 말해 갈등이 일기도 했다. 당시 선대본부장이었던 노 의원은 "자기 당 걱정이나 하지 왜 남의 당 표가 사표가 되는 것까지 걱정하는지 모르겠다"고 유 작가를 정면 비판했다. 유 작가는 민노당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다시 '제대로' 붙었다. 이번엔 노 의원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공부를 안 한다"고 비판하면서 싸움에 불이 붙었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개혁파이자 개혁적 보수주의자" 라며 "노 대통령이 노동자에게 대하는 것이나 경제관을 보면 진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유 의원은 노 의원과 민노당을 향해 "오만한 사람들"이라고 맞받아쳤다. 유 작가는 "제가 보기에는 노 의원보다는 노 대통령이 훨씬 공부를 더 많이 한 정치인"이라며 "물론 경기고나 고려대 같은 명문학교를 나와야 '공부한 사람'으로 쳐주는, 그런 분들에게는 노 대통령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를 들은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냐"고 따졌다. 다시 유 의원은 "노 의원이 대통령 경호실장을 임명하는 인사권자냐"라며 응수했다. '소속'이 달랐던 두 사람은 후회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다퉜다.

유시민(왼쪽) 작가와 노회찬 의원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언쟁을 벌였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사진은 지난 2011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1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던 당시. /뉴시스
유시민(왼쪽) 작가와 노회찬 의원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언쟁을 벌였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사진은 지난 2011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1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던 당시. /뉴시스

노 의원과 유 의원은 최고 논객 1, 2위를 다투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지난 2005년 400회를 맞이했던 MBC '100분 토론'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유 의원이 1위, 노 의원이 2위로 기록됐다. 두 사람의 차이는 불과 2.6%였다. 노 의원은 같은 해 <오마이뉴스>의 인터넷 의정보고에 출연해서도 '토론 강적'으로 유 의원을 1순위로 꼽았다.

경쟁자이기만 할 줄 알았던 노 의원과 유 의원은 2011년 한솥밥을 먹게 됐다. 당시 새진보통합연대의 상임대표였던 노 의원과 국민참여당의 대표였던 유 작가, 민노당의 이정희 대표가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단일 대오 형성을 위해 전격 통합, '통합진보당'으로 뭉친 것이었다.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은 수권능력을 갖추고 진보 집권시대를 열어 가겠다"는 각오로 손을 잡은 노 의원과 유 작가는 이때부터 떨어질 수 없는 정치적 동지가 됐다. '유시민-노회찬의 저공비행'이란 팟캐스트도 함께 진행했다. 이후 통진당 내에서 제19대 총선에 나설 비례대표 부정선거 시비가 일었고 두 사람이 속했던 신당권파가 통진당을 나와 현재 정의당의 모체인 진보 정의당을 만들었다.

유 작가와 노 의원은 팟캐스트를 함께 진행하는 등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걸어왔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1월 진보정의당 이정미 최고위원, 유시민 공동선대위원장, 노회찬 의원이 투표시간 연장 대국민 거리 캠페인 당시. /뉴시스
유 작가와 노 의원은 팟캐스트를 함께 진행하는 등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걸어왔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1월 진보정의당 이정미 최고위원, 유시민 공동선대위원장, 노회찬 의원이 투표시간 연장 대국민 거리 캠페인 당시. /뉴시스

이후 유 작가는 정계를 은퇴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계속됐다. '노유진(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의 정치카페'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불과 지난 1월 JTBC 신년 토론회에서도 함께 나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등 TV토론에서도 여러 번 입을 맞췄다.

그리고 가장 최근, 유 작가는 지난달 JTBC '썰전'의 바통을 노 의원에게 넘겼다. 유 작가는 노 의원이 후임자로 온다는 말에 "안심"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 사이의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오열하는 유시민 작가. /뉴시스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오열하는 유시민 작가. /뉴시스

안타깝게도 노 의원은 이날(23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 댓글 조작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단 의혹을 받던 그는 동생의 자택이 위치한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유 작가는 공동장례위원장으로 '동지' 노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게 됐다. 이날 유 작가의 오열 속엔 한때는 치열하게 다퉜고,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의지했던 노 의원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을 것이다.

한편, 5일간 치러지는 노 의원의 장례는 26일 오후 7시 추모제, 27일 오전 10시 국회 영결식 등으로 엄수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이다.

lws2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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