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노회찬, 강자에 '차갑고' 약자에 '따뜻'했던 그의 어록
입력: 2018.07.24 00:00 / 수정: 2018.07.24 08:28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촌철 살인의 대가이자 언어의 마술사였다. 사진은 노 의원이 지난 2월 국회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국회=문병희 기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촌철 살인의 대가이자 언어의 마술사였다. 사진은 노 의원이 지난 2월 국회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국회=문병희 기자

노회찬 사망으로 생각나는 '노르가즘'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촌철살인의 대가'이자 국민에게 사랑받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노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노회찬 의원은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상징으로서 정치인이기 이전에 시대정신을 꿰뚫는 탁월한 정세분석가이자 촌철살인의 대가였다"며 애도를 표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확고한 정치철학과 소신으로 진보정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셨던 고 노회찬 의원의 충격적인 비보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촌철살인의 말씀으로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고 전했다.

노 의원은 여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두가 인정하는 '능변가'(말솜씨가 능란한 사람)였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출연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청취자들로부터 '노르가즘(노회찬+오르가즘)'이라는 애칭을 얻었으며, '대표 진보 논객'으로서 JTBC '썰전'에 출연해 활약했다.

노 의원은 정치 신념과 상관없이 여야 권력을 고루 경계하고 비판했다. 사진은 노 의원이 지난 2016년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이덕인 기자
노 의원은 정치 신념과 상관없이 여야 권력을 고루 경계하고 비판했다. 사진은 노 의원이 지난 2016년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이덕인 기자

◆ '촌철살인의 대가',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엄격 비판

노 의원은 상황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데 탁월했다. 복잡한 사안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비유를 들었으며 토론을 즐겁게 하는 '재미 보장' 논객이었다. 그는 이러한 특기를 권력을 쥔 정치 인사 및 특권층 비판에 자주 발휘했다.

노 의원은 지난 1월 자유한국당이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 비난하자 "그런 식이라면 냉면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는 "냉면, 하면 모두 평양 아니면 함흥인데, 대한요식업협회에 정치적 중립이 깨진 거 아니냐고 따지고 항의라도 해야 할 판이다"고 촌철살인 했다.

그는 지난 2017년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준 투표에서 옆자리에 앉은 조원진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벌떡 일어나 항의를 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촬영해 SNS에 공개했다.

노 의원은 "노룩(no look)촬영을 해봤다"며 "국회 난동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보존가치가 있어 기록은 하고 싶었지만, 직접 보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김무성 의원이 공항에서 자신의 캐리어를 옆으로 밀어 관계자에게 넘긴 '노룩 패스'를 동시에 풍자한 것이었다.

그의 비평은 보수진영만 겨눈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정의당 찍으면 사표'라는 민주당 주장에 대해 "제가 듣기에는 이마트 사장이 국민에게 동네 슈퍼는 다음에 팔아주라고 하소연하는 상황"에 비유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국민의당이 문준용 의혹 제보 조작 사건을 당원 이유미 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하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 대장균 단독 범행'이라 얘기하는 격"이라 일침을 가했다.

노 의원은 지난 1월 JTBC 신년 토론회에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4대강은 몇십억이 들어간 사업인데, 지금 보를 철거하고 물을 다 뺴내라는 것이 잘하는 짓이냐"고 주장했을 때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노 의원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사진은 노 의원이 지난 3월 촛불청소년인권제정연대 기자회견에서 18세 이하 선거연령 하향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는 모습. /임세준 기자
노 의원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사진은 노 의원이 지난 3월 촛불청소년인권제정연대 기자회견에서 '18세 이하 선거연령 하향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는 모습. /임세준 기자

◆ '명언 제조기', 국민에게 사랑받는 논객

노 의원이 늘 말 속에 뼈를 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성·청소년·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서는 배려와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노 의원은 2005년부터 14년간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장미꽃을 선물해왔다. 지난 3월 7일에는 당직자와 보좌진, 국회 여성 청소노동자 및 기자들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260송이의 꽃을 선물하며 "권력의 힘으로 강제된 억압과 착취와 침묵과 굴종의 세월을 헤치고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며,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7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눕회찬'을 선보였다. 노 의원은 당시 "서울구치소의 제소자 1인당 수용면적은 1.06㎡이다. 알기 쉽게 계산해보면 신문 2장 반인데 보여주겠다"며 신문지를 펼쳐 들었다.

그는 직접 신문지 위에 누워 보이며 서울 구치소 내 과밀 수용 현황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노 의원은 이때 자신의 지역구 신문인 경남도민일보를 들고 나와 '깨알 홍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노 의원은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노 의원은 23일 오전 예정된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발언할 내용을 사전에 서면으로 보냈다.

노 의원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적었다.

이어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 년의 복직 투쟁을 마감하고 180여 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믿고 일해왔는데 자회사로 옮기라는 지시를 듣고 싸움을 시작한 지 12년 만이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고도 했다.

노 의원은 끝으로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강자에겐 냉철했고, 약자에겐 한없이 따뜻한 '말'을 건넸던 노 의원의 마지막 정치 메시지는 그의 삶이 그랬듯 노동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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