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중구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경찰이 사고 현장 보존을 위해 주변을 통제하는 모습. /중구=김세정 기자 |
가족·지인에게도 심경 알리지 않아…마지막까지 노동자 위해 발언
[더팩트ㅣ중구=임현경 인턴기자] "정말 몰랐어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사망한 23일, 모두가 노 의원의 죽음을 두고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에 따르면 노 의원은 이날 오전 9시 38분께 서울 중구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초 신고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분리수거장에서 일하다가 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사람이 쓰러져있다"며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파란 천막을 설치해 현장을 보존한 후 수사를 진행했다. 놀이터, 주차장, 아파트 입구 등 곳곳이 통제됐다. 그 주위로 취재진과 동네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근처 차량에서 대기 중이던 한 구급대원은 "경찰이 먼저 왔다. 아직 조사를 더 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맞은편 동 경비원은 "오전부터 계속 순찰을 하느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박창덕(76) 씨는 "9시 50분쯤 집을 나오다가 봤는데 한 사람이 누워있었고 바닥엔 피가 낭자했다. 경찰차 두 대, 119차 두 대가 와서 인공호흡을 3~4분 시도하다가 비닐 같은 걸 덮었다. 누구인지는 몰랐는데 이제야 알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장은 취재진과 속보를 듣고 몰려온 주민들로 가득했다. 노 의원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다던 임영탁 씨는 비통한 마음을 안고 급히 현장을 찾았지만 폴리스라인 안쪽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사진은 경찰이 현장 노출을 막기 위해 천막을 설치하는 모습. /배정한 기자 |
사고 현장을 찾은 주민들은 "노 의원이 이곳에 사는 줄은 몰랐다", "왜 여기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등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해당 아파트에 노 의원 명의로 된 세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 자세한 정황은 과거 노 의원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다는 임영탁(59) 씨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임 씨는 노 의원의 동생이 중구 아파트에서 아픈 노모를 모시고 있으며, 노 의원이 종종 이곳에 들러 모친을 보살폈다고 밝혔다.
임 씨는 "지난달에도 노 의원을 봤는데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며 "뉴스를 보고 동생에게 급히 연락해 이곳에 오게 됐는데, 동생도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노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휩싸인 중에도 가족들에게 심경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 씨는 "어제(22일)저녁 노 의원의 부인과 통화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떤 기별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신 검안은 정오가 지나서야 이뤄졌다. 통행에 불편을 겪은 일부 주민이 "아침부터 여태이러고 있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검안의가 커다란 천막 안으로 들어간 지 1시간 만인 오후 1시께 현장 감식이 종료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차량이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경찰은 사망원인을 투신으로 결론짓고 부검하지 않기로 했으며, 정확한 유서 내용은 유족의 뜻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노 의원은 23일 정의당 상무위원회에 불참하면서도 노동자를 위한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은 23일 노 의원의 국회 사무실 풍경. /국회=문병희 기자 |
한편 노 의원은 이날 오전 9시 30분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에 '집안 사정'을 이유로 불참하며 서면을 통해 모두발언을 제출했다. 삼성 백혈병 사망 사건 합의 및 KTX 해고 승무원 복직에 대한 감사와 축하를 전하는 내용이다.
노 의원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다"면서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썼다.
이어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 년의 복직 투쟁을 마감하고 180여 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다.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믿고 일해 왔는데 자회사로 옮기라는 지시를 듣고 싸움을 시작한 지 12년 만이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두 사안 모두 앞으로 최종 합의 및 입사 등의 절차가 남아있었지만 잘 마무리되리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산재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10여 년이나 끌게 만들고, 상식적으로 필요한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겠다는 공기업의 태도가 12년 동안이나 용인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