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함께 국가 경영을 하는 장관은 단지 자신의 입신양명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며 대의에 복무하고 있다면 조선시대 정도전과 조광조처럼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맞장을 떠서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진은 동남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환송하는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더팩트DB |
[더팩트|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인간이라면 대부분 세속에서의 성공과 명예를 꿈꾼다. 특히 세상을 경영할 경륜, 지혜 및 지략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더욱 세상에 나가 세상을 바꿀 주역이나 조연이 되고자 한다. 충분한 역량과 품성을 갖춘 사람들이 세상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제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전혀 욕 얻어먹을 일이 아니며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꼭 그렇지 못 한 게 문제다.
현재 남북 사이의 평화 열차는 정상 궤도를 가고 있지만 교육, 사회 및 경제 영역에서는 눈에 띄게 개선되는 점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부처의 수장은 진보시민사회의 조급증으로 개혁이 실패할 우려가 있다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중앙부처의 장관은 정치인, 학자 및 내부 승진자 출신이다. 그들의 배경은 다르지만 성공과 명예를 꿈꾸는 사람들이며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받들어 업무를 수행하다보니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본인이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민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이유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장관은 단지 자신의 입신양명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며 자신이 대의에 복무하고 있다면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계급장을 떼고 맞장을 떠서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지시하는 일만 수행한다면 장관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며 나라의 녹만 축내는 인간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가까운 왕조 시대인 조선에서는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서 수많은 선비들이 불철주야 과거 준비에 매달렸다.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은 관직을 맡으면서 국왕과 국가 경영을 함께 했다. 조선 중기 이후 선비들의 당파 투쟁이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시대의 선비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자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선비정신으로 무장하여 사회문제를 해결코자 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 시대 장관들의 표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조선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근근이 수명을 연장하던 고려를 쓰러뜨릴 대의명분을 토지개혁에서 찾았다. 당시는 권문세족들이 토지를 제멋대로 겸병하여 백성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개혁적 신진사대부는 토지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어 민심을 끌어모았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도 정도전 못지않은 도학자이며 개혁가였다. 당시도 공신들을 포함한 훈구세력이 온갖 방법으로 백성의 땅을 빼앗아 독차지했다. 조광조를 포함한 사림 세력은 모든 토지를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주자는 균전제를 목표로 했으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워낙 거세서 1인당 토지 소유 한도를 정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또한 조광조는 공신의 수를 줄이는 등 각종 개혁정책을 실시했다. 율곡 이이는 «석담일기»에서 “조광조가 대사헌이 되어 법을 공정하게 다스리니 사람들이 감동하고 복종하여 매번 저자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조광조 말 앞에 엎드려 ‘우리 상전(주인) 오셨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백성들은 임금이 아니라 조광조를 주인으로 여긴 셈이다. 조광조는 백성의 질곡을 걷어내려 선비정신을 불태우며 개혁을 추진하다 무능한 악덕 군주 중종에게 이용만 당하고 사약을 받아 38세에 스러져갔다.
맹자는 “뜻 있는 선비는 지조를 지켜, 죽어 묻힐 곳이 없이 시신이 도랑이나 산구덩이에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는 선비는 의를 보고 행하다가 자기 머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는 이와 같은 ‘뜻 있고 용기 있는 선비’를 찾을 길이 없다.
정도전이나 조광조처럼 어떤 난관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고단한 삶의 개선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여 해결하려 한 사람을 지금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오직 자신의 영달이나 패거리의 득세만을 위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눈과 머리만 굴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다.
불의와 부도덕한 권력에 항거하고 시민을 위해 발분의식을 보여 시민들이 ‘저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믿고 따를 만한 주인이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우리는 정도전과 조광조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공자는 “옛날에는 자신을 위하여 배웠는데, 지금은 남을 위하여 배운다”고 하였다. 자신을 위하여 배웠다는 말은 수양과 수신을 목표로 배웠다는 의미이고, 남을 위하여 배웠다는 말은 배움을 남에게 잘 보이거나 인정을 받아 출세나 성공의 도구로 삼았다는 뜻이다.
우리 시대에도 자신을 위하여 배우며 선비정신으로 무장하여 자신만의 성공이 아닌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과제에 온몸을 던지는 정도전과 조광조의 후예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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