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뉴스뽕'에 취해보시겠습니까?
입력: 2018.07.02 00:06 / 수정: 2018.07.02 09:56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으면 각계각층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의 모습. /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으면 각계각층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의 모습. /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인턴기자의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 체험기

[더팩트ㅣ임현경 인턴기자]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슨 일을 하시나요?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켜고 뉴스부터 확인합니다. 특정 정치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리버풀이 새벽 경기에서 이겼는지, 어제 챙겨보지 못한 방송 내용이 어땠는지를 빠르게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일으키죠.

비단 직업이나 습관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지금은 소위 '뉴스 중독의 시대'이니까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스마트폰 속 소식에 몰두합니다. 포털사이트, SNS 등 눈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뉴스가 넘쳐나니 말입니다. 여러 전문가가 기사 검색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권고하기도 했죠. 하지만 저는 국회 '정론관'에 있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론관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편으로, 취재기자실, 사진기자실, 기자회견장 등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기사 작성, 사진 편집, 타 매체 모니터링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죠.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기자회견장입니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사를 쓰다 보면 정말 다양한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TV 뉴스에서 당 대변인이 푸른색 벽을 배경으로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게 기자회견장에서 촬영된 것이죠.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냅니다.

국회 기자회견장에서는 사용권자의 소개를 받은 외부인도 발언할 수 있다. 사진은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한국SGS그룹노조 관계자와 함께 다국적기업의 꼼수 분사를 규탄하는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국회 기자회견장에서는 사용권자의 소개를 받은 외부인도 발언할 수 있다. 사진은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한국SGS그룹노조 관계자와 함께 다국적기업의 꼼수 분사를 규탄하는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지난달 28일에는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단상에 올랐습니다. 한국SGS그룹 노동조합 김장신 위원장, 김세규 조직국장, 이옥형 한국마이크로소프트노동조합 위원장 등 여러 노조 관계자가 그의 곁에 나란히 섰죠.

추 의원은 "한국SGS그룹은 노동조합이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와 주 52시간 근무 시행에 따른 추가 인력 배치를 요구하자 회사를 특례업종 적용 가능 부분과 불가능 부분으로 분리해서 따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해외에서 우월한 근무환경으로 칭송받는 다국적기업이 왜 한국에만 오면 노동자들을 마른 수건 쥐어짜는 악덕 기업이 되는지에 대해 거대정당들이 되돌아봐야 한다"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법체계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기업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외국계 기업은 꼼수 분사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기자회견장의 기자는 이러한 내용을 보도합니다. 얻은 정보를 계기로 더 깊은 취재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6개월 처벌유예 기간을 두겠다"고 알린 날도 있고,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박주현·장정숙 의원이 발언대에 올라 '비례대표의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표한 날도 있었습니다.

독자 중 누군가는 노동자의 편, 또 다른 이는 기업의 편에 설 것입니다. 민주당의 논평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자유한국당의 현안 브리핑에 깊이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이해가 다르겠지만, 이와 별개로 모두에게 '말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참 근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만약 사안의 크고 작음에 따라 발언 기회에 차별이 있었다면, 말할 권리는 물론 듣는 이의 '알 권리'까지 보장받지 못했을 겁니다.

국회 사무처는 한때 기자회견장에서 외부인이 단상에 오르거나 발언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1층에 걸린 정론관 현판. /임현경 인턴기자
국회 사무처는 한때 기자회견장에서 외부인이 단상에 오르거나 발언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1층에 걸린 정론관 현판. /임현경 인턴기자

참, 정론관에 마술사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25일 마술사 최현우·유지 야스다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오는 7월 열리는 부산 세계마술대회에 북한 마술사가 참가할 수 있도록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죠.

속임수를 들키는 것이 치명적인 마술 특성상 외부 노출이 드문 북한 마술은 큰 장점을 가진, 높은 수준의 기술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다른 일정 때문에 직접 볼 수 없었지만, 해당 내용을 담은 기사를 읽고 마술로도 남북이 하나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북한 마술의 장점을 알게 돼 새롭더군요.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이 언제나 이렇게 열려있던 것은 아닙니다. 국회 사무처는 지난 2009년 6월 1일 "외부인의 무분별한 기자회견으로, 국회 관련 기관의 공식적인 입장과 외부 단체의 개별적인 입장이 혼재되는 문제점이 있다"며 외부인이 단상에 서거나 처지를 밝힐 수 없게 했습니다. 이후 한동안 국회의원과 국회 대변인, 원내정당 대변인, 실·국장급 이상 국회 직원만이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할 수 있었죠.

물론 가짜뉴스의 범람은 진실과 거짓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언론의 신뢰도를 하락시키기에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발화자와 소통 창구가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정보 과잉은, 그만큼 작은 목소리와 큰 목소리가 장벽 없이 뒤섞일 수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신조어 중에는 "~ 뽕에 취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로뽕(필로폰)에 취한 것처럼 황홀한 상태를 다소 속되게 이르는 것인데, 대한민국 월드컵 국가대표팀이 독일전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을 때는 '국뽕(애국심)에 취한다'고 표현하는 식입니다. 커피나 담배의 중독을 하나의 기호로써 즐기듯이, 어떤 중독은 이토록 유쾌하기도 하죠.

뉴스 중독 현상은 타인의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 일'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 시간을 쏟아가며 노력할 준비를 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뉴스 중독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닐 겁니다. 하루쯤은 다 함께 '뉴스뽕'에 취해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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