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내 목부터 치라"는 김성태 발언의 속뜻은?
입력: 2018.06.28 15:52 / 수정: 2018.06.28 15:52

자유한국당이 지난 6·13 선거 패배 후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는 최근 혁신비대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진정성에 물음표가 이어지고 있다. /이새롬 기자
자유한국당이 지난 6·13 선거 패배 후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는 최근 혁신비대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진정성에 물음표가 이어지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며 요직에서 사퇴하는 조건으로 참형(목을 베는 형벌)을 면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퇴와 참형이라는 두 선택지를 놓고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고민해본다.

나라의 독립이나 국가의 기밀을 다루는 사람이거나 정말 중요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면, 참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나라의 독립이나 기밀 정보 등이 아닌 자신의 처신과 관련한 문제라면 결정을 달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참형을 면하는 조건이 사퇴와 백의종군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스스로 물러남을 선택하지 않을까. 요즘 정치권에선 사퇴, 백의종군, 은퇴 등의 말들이 매일같이 거론된다. 물론 정치인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최근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가 자신의 목을 쳐달라고 하면서 그 저의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혁신비대위원장에게 한국당을 살려낼 칼을 주고 '내 목부터 치라'고 하겠다." 김 대행의 발언이다. 물론 형벌인 참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 대행의 의원직 사퇴나 21대 총선 불출마 등으로 해석된다.

자유한국당 초재선 의원들은 김 대행이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퇴를 촉구했지만, 최근 원내대표는 유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모임을 갖는 초재선 의원들. /문병희 기자
자유한국당 초재선 의원들은 김 대행이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퇴를 촉구했지만, 최근 원내대표는 유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모임을 갖는 초재선 의원들. /문병희 기자

그런데 김 대행의 발언에서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멋진 모습도 있는데 굳이 목을 쳐달라는 것은 어떤 의도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 대행의 발언은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다. '나는 국회의원 사퇴할 생각이 없으니 목을 칠 수 있으면 쳐봐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김 대행의 이런 발언은 왜 나왔을까. 그 배경에는 지난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참패가 있다. 한국당은 선거 참패 후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당을 수습할 비대위원장을 인선해야 하지만, 누군가 선뜻 나서지도 않은 모양새이다.

무너져가는 집안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쉬울 리 만무하다. 이미 다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은 한국당의 재건을 위해서는 일단 재를 걷어내야 가능하다. 그런데 누구도 이 재를 걷어내는 데 나서려 하지 않는다. 김 대행의 발언도 이런 답답한 심정에서 나온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김 대행이 이런 답답함에 신임 비대위원장에게 목을 치라고 했겠지만, 왜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김 대행이 비대위원장을 모신 후 사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지금 그 말을 꺼낼 경우 당의 중심이 무너질 수 있어 언급을 미루는 신중함을 기하는 것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김 대행은 책임지는 정치인으로서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선거 참패 후인 지난 15일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표어를 걸고 국회 본청에서 무릎 꿇고 국민에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혁신과 쇄신을 언급하면서도 누구도 내려놓지 않는 모습에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자유한국당은 선거 참패 후인 지난 15일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표어를 걸고 국회 본청에서 무릎 꿇고 국민에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혁신과 쇄신을 언급하면서도 누구도 내려놓지 않는 모습에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문득 지난 선거 후 한 유명한 정치평론가와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었으니, 앞으로 더 신중해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당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당은 의원들이 모두 탈당해야 한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천막당사로는 해결이 안 된다. 그런데 아마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아서 답이 없어 보인다."

결국엔 한국당 의원들이 내려 놓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됐다. 그런데 한국당은 여전히 깜깜한 어둠 속을 걷고 있다. 선거 패배 후 무릎 꿇고 '저희가 잘못 했습니다'라고 했지만, 계파 갈등을 겪는 모습에서 아직 멀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한 것은 한국당은 '혁신'과 '쇄신'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과 쇄신은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국당이 말하는 혁신과 쇄신의 첫 번째는 묵은 것, 그릇된 것, 관습 등을 버려야 한다.

한국당은 무엇을 버렸을까. 정작 한국당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혁신과 쇄신을 하겠다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내 목부터 치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고 혁신과 쇄신을 하겠다는 한국당과 김 대행의 발언은 국민이 듣기엔 궤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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