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이웃사촌'이 바라본 JP…"옛날엔 쌀 주고 그랬어"
입력: 2018.06.27 12:37 / 수정: 2018.06.27 12:37
영원한 2인자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7일 마지막으로 서울 중구 청구동에 위치한 자택을 찾은 후 장지로 떠났다. 김 전 총리의 이웃들은 안타까워하며 그를 애도했다. 사진은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택. /청구동=신진환 기자
'영원한 2인자'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7일 마지막으로 서울 중구 청구동에 위치한 자택을 찾은 후 장지로 떠났다. 김 전 총리의 이웃들은 안타까워하며 그를 애도했다. 사진은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택. /청구동=신진환 기자

"JP 중정 부장 시절엔 동네에 도둑이 없었다"

[더팩트ㅣ청구동=신진환 기자] "아~주 옛날 명절 땐 동사무소 통해서 어려운 사람에게 쌀을 준 양반이야."

2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구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김모(75) 씨는 '이 동네 분이냐'는 물음에 "내가 터줏대감이야. 이 동네에서 70년을 살았어"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고 김종필(JP) 전 국무종리 자택과 불과 300m 지점에 떨어져 산다고 했다. JP와 이웃사촌인 셈이다.

그가 생각하는 생전의 JP는 어떤 인물일까. 김 씨는 "지금은 여기가 청구동인데 옛날에는 신당4동이었다. 알다시피 6·25 전쟁 끝나고 나라 살림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배곯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JP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부장할 때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쌀을 주고 그랬다. 명절 때 동사무소를 통해서 쌀을 나눠줬어." 쿠데타 직후 JP는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초대 부장을 맡았다. 당시 그의 나이 35세였다.

김 씨는 불붙은 담배가 타들어 가도 JP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중정 부장이면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였지. JP가 살아서 이 동네엔 도둑이 없었다. 경호가 삼엄했고, 초소도 따로 있어서 도둑이 이 동네 오는 것은 '나 잡아가쇼~'라는 것과 같았지. 나도 JP 집 근처에 가기가 조심스러웠어." 회상하는 듯 무심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덤덤하게 말하던 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구동에 있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택을 찾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청구동=신진환 기자
2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구동에 있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택을 찾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청구동=신진환 기자

'JP가 5·16 쿠데타에 가담해 안 좋은 평가도 있다'고 묻자 김 씨는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야"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1950~60년대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돈 되는 것은 자기 주머니로 넣었어.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한번은 (나라를) 뒤집었어야 했다"고 5·16이 쿠데타가 아닌 혁명인 이유를 설명했다. JP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한 편의점 앞 파라솔 아래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장모(69) 씨도 JP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 정치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장 씨의 생각이었다. 다만 '이웃' JP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이 동네에 9살 때 이사 와서 60년을 살았지. 헌데 살면서 JP를 몇 번 못 봤어. 그것도 JP가 차 타고 다닐 때나 봤지. 그만큼 동네 사람들과 왕래가 적었어. 언젠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옛날에는 선거철에 가끔 동네 주민들 만나 인사하고 다녔단 말이지. 서민과 '급'이 다르긴 하지만,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워. 살가운 면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

짧은 한숨을 나지막이 쉰 장 씨는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논란에 대해 "그것은 아주 옛날 일이잖아!"라며 발끈했다. 자세를 고쳐잡은 그는 이어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 어딨겠냐고. 국민(초등)학교 때 싸움박질하면 다들 맞고만 있고 안 때리겠어? 그걸 그렇게 따지면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딨겠어. 옛날 케케묵은 것까지 따지고 그러면 되겠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구동에 있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택 인근에서 만난 주민들은 고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청구동=신진환 기자
2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구동에 있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택 인근에서 만난 주민들은 고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청구동=신진환 기자

JP 자택 앞에서 만난 윤모(67·여) 씨는 오전에 진행된 노제를 직접 보기 위해 JP 자택으로 나왔지만, 늦어서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싶었다"는 윤 씨는 JP 자택과 직선거리로 600m 떨어진 한 아파트에서 산다며 손으로 자신의 집 쪽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JP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게 자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JP의 영면을 슬퍼했다. "사람은 태어나면 다 흙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이 아프다. 무엇보다 JP가 대통령을 한 번도 못 해보고 가서 너무 속상하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김영삼은 경상도, 김대중은 전라도, 김종필은 충청도 대표인데, 경상도는 인구가 많고 전라도는 사람들이 한(恨)이 많아 똘똘 뭉쳐서 두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어. 충청도도 JP가 선거에 나왔다 하면 밀어줬는데 결국엔 대통령을 못 했어. 하늘나라에서 대통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웃었다.

한편 이날 김 전 총리의 발인과 영결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엄수됐다. 영결식과 발인에는 유족과 김 전 총리와 인연이 있는 정계 인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김 전 총리는 부여군 회산면 가족묘원에 있는 아내 박영옥 여사 곁에서 묻히고 영면한다. 박 여사는 지난 2015년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3일 오전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타계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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