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지 않기로 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의 최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청와대 제공 |
靑 "역대 총리들도 무궁화장 추서" …빈소 조문 않기로 한 까닭은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를 정부 방침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선택은 여러 갈래로 해석됐다. 김 전 총리의 역사적 행보를 둘러싼 논란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란 시각과 개인적 인연이 없다는 점 등으로 관측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춘추관 정례 브리핑에서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문제부터 말씀을 드리겠다.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추서 문제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준비가 되는 대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할 예정"이라며 "추서를 하러 가는 김부겸 장관에게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뜻을 전달했다. '유족들에게 예우를 갖춰서 애도를 표하라'. 대통령의 조문은 이것으로 갈음한다"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김 전 총리 별세 소식에 조화와 함께 한병도 정무수석을 보내 애도를 표했다. 이에 귀국 후 문 대통령의 빈소 방문 여부에 시선이 쏠렸다. 정부는 다음 날인 24일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방침을 밝혔고, 이를 놓고 찬반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선 '철회 요구'까지 나왔다.
◆ 靑 "취임 후 대통령 조문간 적 없어"…개인적 인연 없어서?
문 대통령은 김부겸 행안부 장관에게 '유족들에게 예우를 갖춰서 애도를 표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은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김 전 총리의 빈소에 놓여진 고인의 영정사진. /이선화 기자 |
이러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조문 여부와 추서를 추진키로 확정·발표하면서 논란을 매듭지으려 한 것이란 게 일각의 분석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조문을 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선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번도 조문을 간 적 없었고, 현직 대통령이 전직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은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청와대가 고려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또 문 대통령은 김 전 총리와 개인적 인연이 거의 없으며, 생전 고인이 문 대통령을 비난한 언사를 했던 점을 꼽는 이들도 있다. 문 대통령의 정치 활동 시기는 김 전 총리와 겹치지 않는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4월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문 대통령은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김 전 총리는 여러 차례 독설에 가까운 설전을 주고받았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대선 직전인 5월 5일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이가 얼마 전에 한참 으스대고 있을 때 한 소리가 있어. 당선되면 김정은이 만나러 간다고. 이런 놈을 뭐를 보고선 지지를 하느냔 말이야"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정은이가 자기 할아버지라도 되나"라며 "빌어먹을 자식"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도 김 전 총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해 1월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언제 JP인데 지금도 JP입니까"라며 "이제는 정치와 초연한 어른으로 남으셔야지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JP는 오래전의 고인 물이다. 옛 정치인들은 이제 원로 반열에 올라가고 후진한테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 JP 훈장 추서 논란에 곤혹스런 靑…김부겸 "관례에 따른 것"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훈장 추서 논란에 대해 김부겸 장관은 25일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례라는 것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서울아산병원=이동률 기자 |
조문 여부와 별도로 'JP 훈장 추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훈법 상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도록 돼 있다. 무궁화장,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 등 5등급으로 분류된다. 무궁화장은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이다.
범여권과 보수야권은 훈장 추서에 동의하는 분위기지만 정의당 등 진보 진영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역사적 공과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총리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3(金)'으로 한국 현대 정치를 이끌며 민주화 과정의 역할을 한 공(公)도 있지만, 박정희 정권의 5·16 쿠데타에 가담한 '역사적 과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반대 쪽의 주장이다.
청와대는 일단 김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추서 이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관례적 성격으로 설명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영덕, 남덕우 전 총리는 별세 당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 받았고, 박태준 전 총리는 창조근조훈장을 받았다. 강영훈 전 총리에겐 훈장을 추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태준·강영훈 전 총리는 생전에 무궁화장을 받았다는 게 해당 관계자의 말이다.
문 대통령의 추서 지시를 받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25일 김 전 총리의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추서를 반대하는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그러나 정부는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의전 절차가 있고 그렇고요. 관례에 따라서 역대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들은 국민훈장 문화장을 추서했었다. 관례라는 것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전 총리의 장례식은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며 발인은 오는 27일이다. 고인은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가 묻혀 있는 충남 부여의 가족묘에 함께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