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혁신안을 놓고 또 다시 계파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초선의원들 모임에서 계파 관련 메모가 나오면서 갈등의 골까지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1일 의원총회 직후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임현경 인턴기자 |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정치권의 핫이슈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참패로 인해 대대적인 당 쇄신안을 내놓은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해묵은 계파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고,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의 이름과 '목을 친다'는 내용이 담긴 이른바 '박성중 메모'가 공개되면서 당 내부가 대혼돈 상태입니다. 다른 야당들도 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워크숍을 다녀오며 화합을 꾀했습니다. 워크숍 자리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더팩트> 정치플러스팀과 사진기획부는 여의도 정가, 청와대를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의 속마음을 다루는 [TF주간 정담(政談)]코너를 진행합니다. [TF주간 정담(政談)]은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양평과 여의도서 각각 워크숍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이번 한 주에도 정치권에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당의 내홍 사태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선거 패배 이후 무릎을 꿇고 처절한 반성을 통해 뼈를 깎는 쇄신을 선언했던 한국당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먼저 한국당의 당내 분열 사태를 짚어보겠습니다.
한국당은 지난 21일 의원총회를 열고 당 쇄신과 관련해 총의를 모으려 했지만, '메모 논란'을 빚은 박성중 의원의 자유 발언을 김 대행이 막으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사진은 지난 21일 한국당 의원총회 당시. /임현경 인턴기자 |
◆ 소득 없이 끝난, 말 많았던 한국당 의총
-최근 한국당 내부가 몹시 소란스럽습니다. 계파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데요, 21일 한국당이 의원총회를 열었죠?
-네 그렇습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한국당이 당 쇄신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비상시국인 만큼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보자는 취지였는데요. 하지만 이번 의총은 친박과 복당파 감정의 골만 확인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장장 5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끝났습니다. 지난 19일 복당파 박성중 의원의 휴대전화에 쓰인 메모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계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 격론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의 메모에는 김진태 이장우 의원 등 친박 의원들이 이름이 쓰여 있었고, '적으로 간주' '목을 친다' 등의 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친박계 살생부 메모'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친박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박 의원이 당 윤리위에 회부됐지만 내홍 사태는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내용이네요. 무게감을 좀 덜어보도록 하죠. 의총장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의원 간 서먹서먹한 기류가 느껴졌습니다. 대부분 의원의 표정도 어두웠고요. 이러한 광경을 목격했을 때 '한국당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의원들이 자리를 잡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의원들은 앞 좌석을 최대한 비워두고 뒷자리에 앉았는데요, 늦은 의원들이 앉을 곳을 찾다가 앞으로 밀려났죠. 뒤편에 앉은 이은재 의원이 "감기에 걸렸으니 옮지 않도록 떨어져 앉으라"며 다른 의원들을 멀찍이 보내려고 했지만, 다들 뒤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앞 좌석을 피하는 건 학교나 국회나 비슷한 모양입니다.
-5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총회였다고 들었습니다. 보는 사람도 진이 빠지는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바람에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참 막막하게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교대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더라고요. 하지만 '머피의 법칙'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자리를 벗어나면 꼭 의원들이 밖으로 나와 중요한 언질을 줄 것만 같았습니다. 오후 2시 30분쯤엔 주먹밥, 샌드위치 등 각종 음식이 담긴 상자가 회의장으로 배달되는 걸 아련하게 바라만 봤죠.
한국당 의원총회에서는 김 대행 및 중진 의원들의 사퇴 촉구 발언 등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그릇이 문제였다. 빨리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고 내려오라"고 김 대행을 비판했다. 사진은 지난 21일 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 /임현경 인턴기자 |
-하지만 대부분 의원은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음식 상자는 그대로 의총이 끝난 뒤 자리를 정리하는 당직자들 손에 들려 나왔습니다. 김성원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만이 "아직 자리가 끝나지 않았다"며 잠시 회의장에 남아 대화를 나눴죠. 문을 여닫는 사이 얼핏 보였던 모습으로는, 빵을 두고 두런두런 모여 식사도 하고 논의도 하는 다과회 분위기였습니다. 대화 주제는 대충 짐작되지 않나요?(웃음)
-너무 음식 이야기에 빠진 것 같은데요. 또 다른 이야기는 없었나요?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의 발음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김 대행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당의 개혁과 쇄신을 강조하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자세를 강조했죠. 계파 갈등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김 대행의 발언을 옮겨 적는 데에 아주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김 대행은 'ㅑ, ㅕ, ㅛ, ㅠ, ㅒ, ㅖ, ㅘ, ㅙ, ㅝ, ㅞ, ㅢ' 등 이중모음 발음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최근 김 대행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혁신'과 '쇄신'이라는 것이죠. 한 당직자가 김 대행의 모두발언을 정리하면서 "자꾸 '혁신'이 '핵심'이나 '흑심'으로 들려서 받아적기가 어렵다"고 말하더군요. '내맡겨야 한다'는 내용을 적다가 "뭐? '매를 맞게' 한다고?"라며 혼란스러워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선거 참패와 당내 갈등 수습을 위해 지난 19일부터 1박 2일 워크숍을 진행했다. 사진은 19일 김동철(왼쪽에서 세 번째)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경기 양평군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 /양평=김소희 기자 |
◆ "안철수 정계 은퇴해야"…화기애애 속 침묵의 바른미래당 워크숍
-지난 19일 바른미래당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서 1박 2일로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의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 후 의원들이 모두 모인 '첫' 자리였습니다. 한 의원은 <더팩트> 취재진에 "이런 자리가 진적(진작) 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너무 늦어버렸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해당 야영장은 바른미래당과 취재진이 방문하기 며칠 전에야 세팅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완전히 새 공간인 거죠. 손때 묻지 않은. 취재진에는 19일 하루밖에 공개되지 않아서 숙박의 기분은 직접 체험할 수 없었지만,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심신이 지쳐있을 의원들은 이곳에서 리프레시(refresh) 하기 좋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난상토론'과 '분임토의'로 쉴 순 없었겠지만요.(웃음)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워크숍에서 당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이날 워크숍에서는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정계 은퇴가 거론됐다. 사진은 지난 19일 의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 /양평=김소희 기자 |
-워크숍에서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책임론이 불거졌다는 건 무슨 이야긴가요?
-워크숍에는 이종훈 평론가가 특별 강사로 초청됐습니다. 이날 이 평론가는 바른미래당과 안철수 위원장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 평론가는 "'안철수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 "안철수는 현재 정치력으로는 안 된다. 정계 은퇴를 해야 한다", "미숙하다는 이미지를 바꾸지 않으면 대선주자급으로 다시 대접받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또 "비극의 출발은 선거 때문에 급조한 꼼수 통합이었다. 안철수의 사심으로 모든 비극이 출발했다"는 분석까지 내놨습니다.
-상당히 강한 발언들 같은데, 의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 평론가의 발언이 이어질 때, 의원들의 표정을 살펴봤습니다. 의원들은 '침묵' 상태였습니다.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못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발언이긴 했지만, 한번쯤 생각해 볼만 한 분석이기도 했으니까요. 대신 취재진이 빠지고 비공개 '난상토론'이 진행됐을 때 주승용 의원이 "안 위원장에 의해 통합 일정이 빨리 당겨지거나 한 것이 아니다. 이념과 지역을 뛰어넘는 합당 정신을 지방선거 전에 구현하고자 했던 사정이 있었다"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안 위원장이 서울시장에 나간 것도 당의 요청에 따라 나간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비공개 토론 이후 의원들을 만나 당시 분위기를 전해 들었나요?
-유의동·신용현 수석대변인이 비공개 토론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해주면서 당시 분위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주 의원의 반박도 유 수석대변인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이후 취재진과 워크숍에 참석한 23명의 의원은 한 데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정병국 의원이 직접 배식을 해주는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으려던 기자에게 정병국 의원은 "꼬막무침이 맛있으니 고추장을 넣지 말고 꼬막무침을 더 많이 넣어 먹으라"는 '꿀팁'까지 전수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타사 한 기자는 "(정 의원이) 꼬막무침을 너무 많이 넣어주셔서 짜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요.(웃음)
워크숍에 참석한 23명의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취재진은 '꼬막비빔밥', '낙지탕탕이','오겹살' 등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양평=김소희 기자 |
-새 원내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김관영·이언주 의원도 워크숍에 참석했나요?
-네. 당시 자천타천으로 김관영·이언주 의원과 함께 김성식·이학재 의원도 원내대표 후보자로 거론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네 명의 의원들은 각각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취재진이 많아서 고루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정치인에게 관심은 곧 생명이지 않습니까. 따로 떨어진 곳에서 취재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 생각을 전달하려는 의지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의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습니까?
-그렇진 않았습니다. 바른정당 출신의 이혜훈 의원은 국민의당 출신인 권은희·김삼화 의원과 화기애애한 식사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의원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그간 못 나눈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분위기였습니다. 또 야영장에 도착하기 전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과 채이배·오신환·이혜훈·김수민·최도자 의원 등은 관광버스에서 내려 함께 장을 보기도 했습니다. 직접 채소를 고르고, 함께 짐을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민주평화당도 지난 20일 당의 미래와 관련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박지원 의원과 정동영 의원이 의견 차이를 보이며 대립했다. 사진은 지난 20일 민주평화당 소속 의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여의도=임현경 인턴기자 |
◆ 민주평화당, 정체성 흐릿해 고민…워크숍과 밍밍한 볶음밥
-민주평화당도 워크숍을 했죠. 한 중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고?
-네. 바른미래당이 1박 2일로 워크숍을 떠나 산을 올랐다고 해서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민주평화당은 다행스럽게도(?)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에 있는 중식당에서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둥글게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발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배숙 대표의 모두발언을 제외하곤 전부 비공개였기 때문에, 기자들은 워크숍이 끝날 때까지 옆 방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식당으로 취재를 갔으니 끼니를 굶진 않았겠네요.
-그럼요. 자장면, 짬뽕, 볶음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서 저는 볶음밥을 주문했습니다. 달걀과 당근 등을 볶은 일반 볶음밥이었는데, 먹다보니 뭔가 허전한 겁니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짜장 소스'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방이 너무 바빠서 그랬는지, 볶음밥을 주문한 기자들은 모두 소스 없이 맨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자장면을 주문한 기자들이 소스를 나눠주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서는 추가로 소스를 주문해 먹었습니다. 그제야 원래 알고 있던 볶음밥 맛이 나더군요.
정동영 의원은 중진들이 나서야 한다고 했지만, 박지원 의원이 반대하고 나서며 분위기가 한동한 좋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20일 민주평화당 워크숍이 열린 가운데 조배숙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는 모습. /여의도=임현경 인턴기자/여의도=임현경 인턴기자 |
-이날 행사의 정확한 명칭은 '민주평화당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국회의원·최고위원 워크숍'이었습니다. '왜 평화당이 필요한가', '평화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하는 국민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죠.
-하지만 박지원 의원과 정동영 의원이 당 대표 선출 건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명확한 결론이 나진 않았습니다. 박 의원은 당의 변화를 위해서 새 인물을 키우자는 입장이었고, 정 의원은 위기가 닥친 만큼 중진 의원이 나서야한다며 당 대표 출마 의지를 보였습니다. 8월 초쯤 조기 전당대회를 열자고 결정한 것외에는 미래를 위한 발전적 논의가 부족했던 셈입니다. 소스 없이 밍밍했던 볶음밥만큼 싱거운 워크숍이었습니다.
-당명과 관련해서 살짝 민망한 순간이 있었다던데요?
-한 기자가 이날 식사 도중 민주평화당을 무심코 '민평당'이라고 불렀는데요. 그 말을 들은 당 관계자 및 보좌진이 몹시 서운해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불리면 너무 속상하다. '평화당'으로 불러주지 않아 요즘 고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지난 21일에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선거 결과를 말하면서 민주평화당을 '평화민주당'과 섞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민주평화당의 존재감이 더욱 커져서 꼭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길 바랍니다. 줄일 땐 꼭 '평화당'으로 불러주시길(웃음).
-2018년 상반기가 일주일여 남았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라고 느끼실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정치권은 시간이 멈춘 듯 합니다. 국회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고, 또 언제 정상화될지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또다시 민생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일 하는 국회를 바라는 것이 무리인 것인지, 국민은 정치권을 향해 묻고 싶을 것 같습니다.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팀장, 오경희 기자, 신진환 기자, 김소희 기자, 이원석 기자, 임현경 인턴기자(이상 정치플러스팀) 이새롬 기자, 배정한 기자, 문병희 기자, 이선화 기자 (이상 사진기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