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달콤하지만 씁쓸했던, 이재명과 '바나나맛 뻥튀기'
입력: 2018.06.17 00:05 / 수정: 2018.06.17 21:02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당선 현장은 바나나맛 뻥튀기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은 이 당선인이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시 선거사무소에서 6.13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기뻐하고 있는 모습. /수원=문병희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당선 현장은 '바나나맛 뻥튀기'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인상을 남겼다. 사진은 이 당선인이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시 선거사무소에서 6.13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기뻐하고 있는 모습. /수원=문병희 기자

지지자에게 뜨겁고 언론에 차가웠던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인

[더팩트ㅣ수원=임현경 인턴기자] "맛있는데, 묘하게 입이 쓰네." 다들 바나나 맛 뻥튀기를 먹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쌀 튀밥을 강정처럼 만들어놓은 원통형 과자는 본 적 있을 겁니다. 그 과자가 개나리색으로 물들어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입 베어 물면 아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달큼한 바나나 향이 입안에 감도는 뻥튀기입니다.

인턴기자는 이 과자를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당일, 지금은 당선인이 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의 수원시청 근처 캠프에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내내 캠프 측에서 제공한 뻥튀기를 먹으며 허기를 채워야 했죠.

인공적인 바나나 향과 다디단 시럽은 맛있었지만, 동시에 입과 목을 끈적하게 만들어 갈증을 유발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뻥튀기를 집어 드는 제 손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배고픔을 해소할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요.

앞선 모든 이야기는 이 당선인에 대한 인상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스포츠팀의 성적이 좋고, 선수들도 팬서비스를 열심히 하면 팬들은 '팬질할 맛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당선인의 지지자 역시 그런 달콤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듯했습니다.

뻥튀기의 인공적인 바나나 향과 다디단 시럽은 맛이 있었지만, 동시에 입과 목을 끈적하게 만들어 갈증을 유발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이재명 캠프 측에서 제공한 과자. /수원=임현경 인턴기자
뻥튀기의 인공적인 바나나 향과 다디단 시럽은 맛이 있었지만, 동시에 입과 목을 끈적하게 만들어 갈증을 유발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이재명 캠프 측에서 제공한 과자. /수원=임현경 인턴기자

13일 오후 4시 이 당선인의 캠프에는 취재진이 몰려들었습니다. 기존에 마련된 기자석으로도 자리가 부족하자, 의자와 책상을 2배로 늘릴 정도였죠. 한 관계자는 "와, 오늘 많이 오긴 많이 오는구나"라고 감탄하며 의자를 날랐습니다.

"출구 조사가 발표되기 5분 전입니다. 여러분들 좋은 꿈 꾸셨죠? 제가 볼 땐 두 자릿수 차이로 승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틀리면 오늘 이 자리에서 춤을 추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음악 축제만큼이나 흥겨운 현장이었습니다. 사회자가 바람을 잡자 박수와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고, 입구 쪽에서 약간의 움직임만 있어도 혹시 이 당선인이 등장하는 게 아닐까 장내가 술렁였습니다. 사회자는 "후보님이 오셔도 움직이지 말고 자리를 지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이 당선인은 이날 오후 6시 2분쯤 도착했습니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로 소감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지지자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자 김효은 선대위 대변인이 나와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라며 그들을 달랬습니다.

20분 정도 상황을 지켜보다 캠프를 떠난 이 당선인은 당선이 확실해진 오후 10시 40분께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당선인은 부인 김혜경 씨와 함께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서, 손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그를 향해 플래시를 터트렸습니다. 지지자들은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는 이 당선인에게 다양한 각도를 요구했고, 이 당선인은 이에 부응해 '앙코르' 포토타임을 선사했습니다.

이 당선인이 당선 소감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지만, 환호성 탓에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뒤를 돌아 지휘를 하듯 두 손으로 '워워', 검지를 입에 대며 '쉿'하는 동작을 보이고 나서야 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이재명 당선인의 지지자들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장내가 떠나갈듯한 환호성을 질렀다. 사진은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 이 당선인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이 당선 유력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수원=문병희 기자
이재명 당선인의 지지자들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장내가 떠나갈듯한 환호성을 질렀다. 사진은 13일 오후 경기도 수원 이 당선인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이 당선 유력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수원=문병희 기자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많이들 보셨을 테지요. 이 당선인은 경기도민의 압도적인 지지에 감사를 표하며 경기도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어가겠다 약속했습니다. 지지자들 앞에서 한없이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이 당선인은 직후 이어진 방송사별 인터뷰에서 급격히 싸늘해졌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이 당선인의 굳은 표정, 다소 신경질적으로 인이어를 빼는 모습이 전부였습니다. 이 당선인은 '책임', '어려움' 등의 단어에 유독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러 논란으로 맘고생을 한 그였기에 어느 정도는 예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듣기 싫다'고 질문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대신 "그 질문엔 답변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대답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경기도지사라는 지위, 큰 권력을 얻은 직후에 '안 들린다'며 인터뷰를 중단하는 강압적인 모습이 연출되고 말았으니까요.

지지자들은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이 당선인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와중 몇 명의 무리가 '대통령'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김 대변인은 "아직 당선인께서 숙제(인터뷰)가 남았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그들을 진정시켰습니다.

인턴기자가 이 당선인을 직접 목격한 건 이날이 처음이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의 '특정 대학 비하 발언'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이 당선인은 지난 2014년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려 해당 대학의 석사 학위를 반납한 바 있습니다.

"저는 중앙대를 졸업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변호사인데, 제가 어디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의 석사 학위가 필요하겠습니까."

일각에서 그의 발언을 '사이다'라며 통쾌하게 여겼던 기억이 납니다. 맞는 말을 했다면서요. 그러나 '간판'을 강조하는 그의 말은 입시지옥에서 밤낮없이 공부하는 많은 이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이다도 한꺼번에 벌컥 들이키면 탄산이 목구멍을 아프게 찌르기 마련입니다. 이 당선인은 분명 호탕하고 대범한 정치인이었지만, 동시에 어떤 국민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과격함을 지니기도 했습니다.

이 당선인은 당선 다음 날 페이스북 생중계 방송을 통해 국민들과 인사를 나눴고, 인터뷰 태도 지적에 지나쳤다고 사과했다. 사진은 방송 중인 이 당선인과 부인 김혜경 씨 모습.  /이재명 페이스북 갈무리
이 당선인은 당선 다음 날 페이스북 생중계 방송을 통해 국민들과 인사를 나눴고, 인터뷰 태도 지적에 "지나쳤다"고 사과했다. 사진은 방송 중인 이 당선인과 부인 김혜경 씨 모습. /이재명 페이스북 갈무리

다음 날인 14일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난 이 당선인은 인터뷰 전과 같이 친근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기도지사 당선 후 첫 일정으로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인사', 즉 SNS 생중계 방송을 진행했죠.

낯이 익은 듯 몇몇 시청자에게 인사를 건넨 그는 성남시장 당시 비리를 차단했던 무용담과 함께 어떤 경기도를 만들어 갈 것인지, 악덕 업체 소탕을 위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등을 신이 나서 설명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상당한 권력과 인력을 가지고, 제 사인 한 개만으로 시민들에게 큰돈을 돌려드릴 수 있다니 사실 재미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해코지하면서 돈을 버는 것을 못 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작지만 큰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날 먹었던 뻥튀기의 달콤한 바나나 향이 아직도 입가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찾아온 목마름 역시 잊을 수 없습니다. 과자는 분명 맛있었지만, 주식으로 먹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큰 정의만큼 작은 정의도 중히 여긴다는 이 당선인의 말을 믿고 싶습니다. 자극적이지만 속은 텅 빈 뻥튀기 대신, 따뜻하고 든든한 쌀밥 같은 경기도지사님을 기대해봐도 되겠습니까?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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