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靑.春'일기] '홍준표 사퇴 반대' 국민청원이 '웃픈' 이유
입력: 2018.06.17 00:05 / 수정: 2018.06.17 00:05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사퇴를 만류하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지난 14일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힌 뒤 당사를 떠나는 홍 전 대표. /문병희 기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사퇴를 만류하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사진은 지난 14일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힌 뒤 당사를 떠나는 홍 전 대표. /문병희 기자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인 A는 입버릇처럼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참 좋다"고 했다. 6·13 지방선거 전날에도 다음 날에도 그랬다. 그는 "문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홍 대표가 절대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바랐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홍 대표의 실정(失政) 탓에 문 대통령이 더 빛난다"는 게 A의 생각이었다. '하하하….' 그저 웃어 넘겼다. 정치적 성향과 생각은 자유이니까.

A와 같은 생각은 지난 13일 공론화됐다. 선거 당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사퇴를 만류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흘이 지난 16일 현재 5836명이 이 청원에 참여했다. 해당 청원 외에도 비슷한 성격의 글들이 잇따랐다.

청원인은 "그간 홍준표 대표의 업적을 보면 그 땀과 노력에 박수는 물론 존경의 찬사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진 자유한국당의 후보로 대선을 완주하며 욕받이를 한 것은 물론이요, 별다른 쇄신도 없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이제 친박은 없다'고 선언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며 홍 전 대표를 치켜세웠다.

6·13 지방선거 당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홍준표 사퇴 만류 글./청와대 홈페이지
6·13 지방선거 당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홍준표 사퇴 만류 글./청와대 홈페이지

하지만 다음 대목에서 '진의'가 드러난다. 그는 "홍 대표를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의 행보. 국정 지지율 70%를 넘나드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뚜렷한 근거도 없이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고서'는 하지 못할 행태였다.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며 '아, 이것이 국민의 대통령이구나'라고 느낀 국민들도 많았겠지만, 홍 대표의 행보를 지켜보며 그간 감겼던 눈이 떠지고 막혔던 귀가 열리며 깨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의 사퇴를 만류한 청원은 조롱에 가까웠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차에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홍 전 대표가 이끈 한국당은 '참패'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국광역단체장 17곳 가운데 14곳을 차지했고, 한국당은 대구·경북 단 두 곳만 수성한 '지역당'으로 전락했다. 기초단체장도 민주당이 226곳 중 151곳을 가져갔으며 한국당은 53곳에 그쳤다. 국회의원 재보선도 12곳 중 단 1곳만 한국당 몫이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홍 전 대표로선 '유구무언'의 결과였다. 선거 전 그는 광역단체장 기준 '9곳 수성'을 자신했었다. 무엇보다 줄곧 문 대통령의 60~70% 지지율은 "거짓"이라고 주장해왔다. 선거 국면에선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의 이름을 자주 입에 올렸다. 문재인 정권을 겨냥해 "대한민국은 가짜들이 판치는 괴벨스 공화국"이라고 '극언'을 했다. 그의 주장과 달리 민심은 문재인(대통령) 정부를 재신임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지막 막말을 하겠다며 당내 일부 의원들을 비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은 지난 14일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당사를 떠나는 모습./문병희 기자
홍준표 전 대표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지막 막말을 하겠다"며 당내 일부 의원들을 비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은 지난 14일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당사를 떠나는 모습./문병희 기자

결국, 홍 전 대표는 지난 14일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며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이 같은 결말은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홍 전 대표가 구사해온 정치력의 팔할은 '노이즈'다. 튀는 언행으로 이슈의 중심에 섰고, 문재인 정부의 반대편에 서서 강경 보수층에 소구했다.

홍 전 대표의 입이 거칠어질수록 대중은 뜨겁게 반응했다. 오히려 그가 괴벨스와 같은 전략을 폈다. 괴벨스는 "증오와 분노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이는 대선 때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추락한 한국당의 대선 후보로서 20%대 지지율을 얻으며 문 대통령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홍 전 대표의 전략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선전과 선동으로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민심은 보여줬다. 일방적 메시지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시대는 변했다. 문제는 이를 홍 전 대표만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측은지심마저 든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소통' '포용' '탈 권위'에서 나온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 압승에도 "자만하지 않겠다"며 "국민만 바라보며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압승을 거둔 민주당을 향한 메시지로도 읽혔다.

홍 전 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오늘 모두가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했으나 사퇴 하루만에 같은 당 의원들을 저격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문병희 기자
홍 전 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오늘 모두가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했으나 사퇴 하루만에 같은 당 의원들을 저격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문병희 기자

본디 '떠난 자'는 말이 없다. 대표 직에서 물러난 홍 전 대표는 뒷모습도 썩 아름답지 않다.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지막으로 막말 한 번 하겠다"고 운을 뗐다. 여태껏 자신의 발언이 막말이었다는 것을 인정한걸까. 그는 당내 일부 의원들을 "사이코패스" "친박 앞잡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끝까지 변치 않는(?) 모습이었다.

홍 전 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오늘 모두가 제 잘못이고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라고 말했다. '책임'이란 '자기 반성'과 성찰에서부터 시작된다. 비단 홍 전 대표뿐만 아니다. 한국당은 궤멸 위기에도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란 옛 속담이 떠오른다. 한국 정치의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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