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靑.春'일기] 文 싱가포르행 가능성에 靑 '김칫국 주의보'
입력: 2018.06.06 00:05 / 수정: 2018.06.06 00:05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포르행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청와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27일 춘추관에서 전날 열렸던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결과 브리핑을 마친 모습./청와대 제공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포르행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청와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27일 춘추관에서 전날 열렸던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결과 브리핑을 마친 모습./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 출근길 우편함이 손짓한다. 배 부르다고 아우성이다. 평소라면 텅 비었을 속이 꽉 들어찼다. 두툼한 서류뭉치가 자리를 차지했다.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안내문과 공보물이다. 그렇다. 이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취재기자들에겐 다음 주 시쳇말로 '헬 게이트(지옥 문, 힘든 상황을 비유)'가 열린다. '빅 이벤트'가 연일 붙어 있다. 선거 전날 싱가포르에서 '6·12 북미정상회담'의 막이 오른다.

이른 더위 탓인지 벌써부터 체력이 달린다. 롤러코스터를 탄 북미정상회담에 요 며칠 새 밤낮이 바뀌기 일쑤다. 럭비공 같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개 트위터에 관련 소식을 띄웠다. 그것도 한국시간(시차 13시간)으로 밤 11시께다. 백악관 기자회견 시간도 비슷하다. 지난달 24일 트럼프 대통령 '회담 취소'→26일 '깜짝' 2차 남북정상회담→ 27일 문재인 대통령 회담 결과 발표 및 당일 트럼프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재개최 시사 등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도 언론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겨우 한숨을 돌리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새 나온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관계자도 "24시간 근무체제가 돼서 언론인도 힘들고 공보라인도 힘들다"며 "한국시간 일몰이, 일몰이 아니더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전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한반도 비핵화 외교전'이란 헤비급 격무에 힘들었는지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였다. '해가 지지 않는' 청와대인 셈이다.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 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합류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청와대 제공, 더팩트DB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 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합류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청와대 제공, 더팩트DB

하지만 지칠 겨를이 없다. 최근 '북미→남북미 정상회담'으로 '판'이 더 커질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공식화하면서 '종전선언 논의'를 언급했다. '후속 회담' 가능성도 입에 올렸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북미 정상회담 성공에 이은 '종전선언을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직접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일 기자들에게 문자 공지를 보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음으로써 북·미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길이 더 넓어지고 탄탄해진 듯하다"고 환영하면서도 "싱가포르에서 열릴 세기적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그러나 차분히 지켜보겠다"고 신중을 기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행에 무게가 실렸다. 북미정상회담에 문 대통령 합류 여부가 최대 관건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청와대의 입'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 초반 "남북미 회담은 북미정상회담 성과와 연동돼 있다"는 기조 아래 최근 몸을 최대한 낮추며 여러 날째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일'이 성사되기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는 기류가 읽힌다.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행 여부'와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 및 진행 상황' 등 기자들의 매일 '같은 질문'에도 청와대는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5일 백악관이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오는 12일 오전 10시(한국시간)'로 확정해 발표한 데 대해 "저희가 따로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관련 질문에 대해 함구했다.

청와대는 남북미 회담과 관련해 지켜보자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청와대 제공
청와대는 남북미 회담과 관련해 '지켜보자'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청와대 제공

청와대가 '남북미 회담'과 관련한 질문에 '자물쇠'를 채운 것은 '돌발 변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정상회담도 무산 위기를 겪은 데다 실제 북·미 정상 간 회담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도 막판까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회담 당사국이 아닌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공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란 게 일각의 관측이다. 또, 6·13 지방선거 등 국내 정치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선도 간과할 수 없다.

다만 물밑에선 청와대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5일) 종전선언 이슈와 관련해 "북·미 회담 진행 상황을 지켜 보며 남북미와 국제사회와의 협의로 추진할 예정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문 대통령은 오는 8일 지방선거 사전 투표를 하기로 4일 결정했다. 김 대변인은 '싱가포르행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북·미 회담에 임박해 남북미 3자 회동이 결정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됐다. 더위에도 밥은 제대로 뜸을 들여야 제맛이다. 밥만 제대로 된다면 식전 시원한 '김칫국'은 더할 나위 없는 감칠맛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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