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 시평] '명판관' 포청천이 그리운 세상
입력: 2018.06.02 00:00 / 수정: 2018.06.02 00:00
대법원의 대법정 출입문 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의 대법정 출입문 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대법원 홈페이지

[더팩트|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한 사회가 건강하게 운영되려면 국민 대다수의 이해를 반영한 법률의 정비와 공평무사한 법 집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법원의 대법정 출입문 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의 오른손에는 저울이, 왼손에는 법전이 들려있다.

저울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평무사한 법 집행을, 법전은 법률에 따른 엄정한 법 집행을 상징한다. 정의의 여신상의 저울과 법전이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한국 사회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불행한 현실이다. 제 아무리 그럴싸한 법률이 있다 하더라도 법 집행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거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한 없이 엄격하고, 유력층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워서는 사회가 건강할 수 없다.

박근혜 정권에서 대법원은 엄정한 사법의 주체가 아닌 권력의 시녀였으며 수많은 사법 농단을 자행했다. 5월 25일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동향 파악과 사찰을 주도하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사법거래를 추진했음에도 관련자들의 형사고발을 안 하기로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을 방지할 장치를 마련한다면서도 정작 사법 농단자들의 형사조치는 더 고민한 뒤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도 대법원은 개혁 의지가 빈약하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사실 법원 내부 인사들이 사법행정권 남용을 조사하고 사법 농단의 최정점에 있던 양승태가 조사 대상에서 배제될 때부터 이미 특조단의 한계는 드러나 있었다. 한 조직의 개혁은 처절한 반성과 자신의 뼈와 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감내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번 특조단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셀프 조사’로는 진정한 사법개혁을 이룰 수 없다.

'양승태의 사법농단'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법관의 성분을 분석하고 사찰을 자행한 점은 그 무엇보다도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죄악이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며 정권의 입맛에 맞는가의 여부에 따라 지원과 차별을 달리한 사실을 알고 있다.

양승태가 법관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관리하고 사찰한 점은 개인의 뇌를 스캔하여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무리와는 파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한다)’하려는 심산으로밖에 볼 수 없다. 개인 사상의 다름을 차별의 도구로 삼고, 다름을 틀림으로 등치시키는 조직이나 사회는 결국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려 획일적 가치 수용을 강요하여 역동성과 창의성을 말살시킨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단 한 사람의 다른 생각까지 인정하고 배척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엄정한 법 집행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이 법관의 성분을 분석하여 차별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번 기회에 대법원은 어정쩡하고 타협적인 개혁을 할 것이 아니라 환골탈태하여 공평무사한 명판관 포청천이 부지기수인 사법부로 거듭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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