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애어른'이 바라본 '어른아이' 국회의원들
입력: 2018.05.22 05:00 / 수정: 2018.05.22 12:29
21일 국회는 추가경정예산안, 드루킹 특검,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의 체포 동의안 등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를 열었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견학온 학생들이 의원들의 본회의 진행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한 학생은 이곳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더 나은 일을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국회=이원석 기자
21일 국회는 추가경정예산안, 드루킹 특검,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의 체포 동의안 등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를 열었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견학온 학생들이 의원들의 본회의 진행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한 학생은 "이곳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더 나은 일을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국회=이원석 기자

국회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정치요? 멋진 것 같아요. 명예롭잖아요."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성빈이에게 정치란, 어렵지만 동시에 신기한 일입니다. 아이의 눈으로 본 국회의원은 커다란 회의장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멋지고도 명예로운 사람입니다.

그 멋진 의원님은 정치를 뭐라고 생각할까요? 21일 국회에서 제3차 본회의가 열렸습니다. 국회의사당은 며칠 전 자유한국당의 본회의 반대 농성이 있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복작거렸고 그들의 생기 가득한 목소리가 높은 천장에 닿았습니다.

21일 국회 본회의장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이 견학 와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참관했다. 인턴기자는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를 보면서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본회의를 지켜보지 않은 것이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은 자유한국당 홍문종(오른쪽)·염동열(가운데) 의원이 자신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지켜보는 모습. /국회=이새롬 기자
21일 국회 본회의장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이 견학 와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참관했다. 인턴기자는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를 보면서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본회의를 지켜보지 않은 것이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은 자유한국당 홍문종(오른쪽)·염동열(가운데) 의원이 자신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지켜보는 모습. /국회=이새롬 기자

인턴기자도 첫 본회의 참석이니만큼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회의장에 들어섰습니다. 성빈이의 말대로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설레는 마음은 바람 앞 등불처럼 훅 꺼져버렸습니다.

본회의 시작 시각인 오전 10시, 의원석은 절반도 차지 않았습니다. 10시에 회의한다는 게 아니라 집무실에서 출발한다는 뜻이었을까요. 제시간에 도착한 의원들은 20분이 넘도록 의자를 돌려 다른 의원과 잡담을 나누거나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인사를 건넸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신중히 자료를 검토했습니다. 사실은 당연한 그 모습이 상대적으로 멋있어 보이더군요.

10시 30분이 다 돼서야 시작된 본회의는 '드루킹' 불법 댓글 조작 특검 관련 법률안, 추가경정예산안을 포함 18개의 안건을 다뤘습니다. 하나하나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들입니다.

여야는 본회의 개의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것과 달리 21일 열린 본회의에서 상정된 안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물과 기름으로 절대 섞일 것 같지 않았던 여야는 동료를 위하는 순간에 누구보다 끈끈한 모습을 보였다. /이새롬 기자
여야는 본회의 개의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것과 달리 21일 열린 본회의에서 상정된 안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물과 기름으로 절대 섞일 것 같지 않았던 여야는 동료를 위하는 순간에 누구보다 끈끈한 모습을 보였다. /이새롬 기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의장님…."

연단에 오른 모두가 국민을 존경한다고 말했지만, 국민은 나중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다른 일을 하다가 정세균 국회의장이 '투표는 다 마치셨냐' 묻자 다급히 버튼을 누른 이도, 기권표를 던진 이도 더러 있었습니다.

장내가 분주해진 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표결이 끝난 뒤,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과 염동열 의원 체포동의안을 표결할 차례가 왔을 때였습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제외한 모든 국무위원이 자리를 빠져나갔고, 국회 관계자들은 서둘러 아이들을 비롯한 일반 관람객을 퇴장시켰습니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정유섭 한국당 의원이 홍 의원 체포 반대를 주장하는 의사진행발언을, 신상진 한국당 의원이 염 의원 체포 반대 발언을, 홍 의원과 염 의원이 각각 신상 발언을 진행했습니다.

'독실한 신앙인'부터 '어린 아들의 풀죽은 목소리', '늙은 어머니', '선후배님들의 동료애'까지 줄곧 감정에 호소하는 표현들이 등장했습니다.

멋진 국회의원을 상상했던 아이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 게 참 다행이었습니다. 불체포 특권을 향한 국민들의 불만을 언급하면서도 비이성적(?)인 논거에 기대는 모습은 어른답지 않았습니다.

체포동의안 무기명 투표가 시작되자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줄을 섰고, 홍 의원과 염 의원을 포함한 많은 의원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박 장관이 두 의원의 체포 사유를 설명했을 때엔 의자를 돌려 앉거나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했던 의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 웃었습니다.

여야는 서로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싸웠지만, 실상은 연인간 밀당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진은 21일 염동열 의원이 체포 동의안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 동료 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악수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여야는 서로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싸웠지만, 실상은 연인간 '밀당'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진은 21일 염동열 의원이 체포 동의안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 동료 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악수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내내 같은 공간 안에 있던 그들이 새삼 악수를 주고받을 때마다 박 장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면 기분 탓이겠지요. 결국, 이날 두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모두 '부결'됐습니다.

"국회는 위엄있는 곳인 것 같아요. 이곳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더 나은 일을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열다섯 살 상은이는 국회에 온 소감을 말하기 위해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뗐습니다. 조심스럽게 고르고 또 고른 단어들이었습니다.

인턴기자는 어쩌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정치에 대해 고민하고 또, 정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젓함을 따지자면 본회의장의 의원들 보다 아이들이 훨씬 어른 같아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국회의사당의 시간이 얼른 정방향으로 흐르길 바라면서, 상은이가 어른들에게 전하는 말을 그대로 전해봅니다.

"요새 너무 많이 시끄럽고 여러 일도 터지고 그래서요. 국민들이 고민하는 그런 일이 더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의원님들 파이팅."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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