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5·18 유족부터 일면식 없는 후배까지…"자랑스럽다"
입력: 2018.05.18 13:39 / 수정: 2018.05.18 16:52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헌화하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헌화하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李 총리, 文 대통령 대신 묘역 참배…'임행곡' 2년 연속 '제창'

[더팩트ㅣ광주=신진환 기자] "여전히 고통스럽다."

부슬비와 굵은 비가 반복했던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소복을 입은 노모와 검은 옷차림의 중년 여성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참석자 5000여 명이 자리한 행사장을 뒤로하고 희생자와 위패가 있는 유영봉안소 쪽으로 향했다. 유독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이날 만난 이들은 광주 문흥동에 사는 유가족 양매자(70)·손미순(49) 씨다. 1980년 5월 18일 민주항쟁에 나섰다가 군인에게 머리를 구타당한 뒤 10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 숨진 남편이자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참석했다고 한다. 손 씨는 "아버지는 '상이 후 사망'하셨다. 민주화운동을 하신 뒤 머리를 심하게 다쳐 10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셨다. 정신병원에도 계셨다. 꼭 10년 뒤인 1990년 5월 17일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고통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여전히 고통스럽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유가족 양매자(70) 씨와 손미순(49) 씨가 묘역 내 유영봉안소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광주=신진환 기자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유가족 양매자(70) 씨와 손미순(49) 씨가 묘역 내 유영봉안소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광주=신진환 기자

이를 옆에서 바라보던 양 씨는 참담한 표정이었다. 눈물이 말라 더는 나오지 않는 듯 보였다. 그의 표정에서 통한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없으시냐"는 물음에도 말문을 열지 못했다. 대신 손 씨는 "어머니는 지금도 잠을 잘 못 주무신다. 평소 지금이라도 전두환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이어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며 "이제라도 그 당시 군인들이 진실을 말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점점 충혈되는 양 씨의 눈을 본 뒤, 차마 더 질문하지 못했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고 이창현 씨의 부친 이귀복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고 이창현 씨의 부친 이귀복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일면식 없는 전남대 후배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38년 전 5·18 당시 국가 권력을 강점한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전남대 정문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했고, 계엄군의 유혈 진압이 시작되면서 많은 전남대생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대생 김민영(22·여) 씨는 "죽음을 불사하고 군부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선배님들의 희생이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온라인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왜곡·폄훼한 이들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께 온 이혜영(22·여) 씨는 "우리 선배님들은 6월 민주항쟁에 앞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투사였다"며 "불의에 맞서 싸운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분향하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분향하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 정치권 묘역에 집결…李 총리 "진실 규명하겠다"

이번 5·18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홍영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 등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들도 묘역을 찾았다. 자유한국당에선 김성태 원내대표만 참석했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정치권 지도부들이 자리했다.

호남 시민들은 문 대통령의 불참을 이해했다. 순천에서 온 변재현(73) 씨는 "문 대통령은 지난해 직접 와서 추모했고, 지금 북한 문제로 바쁠 테니 총리가 대신 오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조민서(20·여) 씨는 "이 총리가 와서 유가족을 위로했고, 충분히 마음이 전달됐다"며 문 대통령의 불참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총리는 기념사에서 진실 규명을 약속했다. "요즘 들어 5·18의 숨겨졌던 진실들이 새로운 증거와 증언으로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제정된 5·18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가 9월부터 가동되면 진실을 완전히 밝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옛 전남도청이 5·18의 상징적 장소로 복원되고 보존되도록 광주시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자료를 더 보완하도록 광주시 및 유관단체들과 협력하겠다"며 역사 복원·보존을 다짐했다.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앞줄 왼쪽부터),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가운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앞줄 왼쪽부터),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광주=문병희 기자

이 총리를 비롯한 여야 지도부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임행곡)'을 '제창'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함께 따라 불렀다. 지난해 5·18 기념식에 참석한 당시 정우택 원내대표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제창을 거부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제창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이후 '임행곡'을 제창하도록 하라고 5·18 기념식을 주관하는 국가보훈처에 지시했다.

5·18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는 '임행곡'을 제창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 진영의 반발로 국민 분열이 우려된다며 2009년부터는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다.

사전적으로 제창은 '여러 사람이 큰소리로 외침'을, 합창은 '여러 사람이 서로 화성을 이루며 다른 선율로 노래를 부름'이라는 뜻을 가졌다. 제창과 합창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애국가 제창'처럼 제창은 참석자들이 대한 의무가 있지만, 합창은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면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른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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