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턴수첩] 책에서만 보던 '쇼 비즈니스' 정치가 눈앞에 (영상)
입력: 2018.05.16 05:00 / 수정: 2018.05.16 08:21

정치는 쇼(Show)?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국회 본회의를 거부하며 로텐더홀에서 피켓을 들고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한국당 의원들의 농성은 잠시였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휴대전화를 보거나 휴식을 취했다. 사진은 14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입구를 막은 채 농성 중인 한국당 의원들. /문병희 기자
'정치는 쇼(Show)?'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국회 본회의를 거부하며 로텐더홀에서 피켓을 들고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한국당 의원들의 농성은 잠시였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휴대전화를 보거나 휴식을 취했다. 사진은 14일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입구를 막은 채 농성 중인 한국당 의원들. /문병희 기자

첫 국회 체험, 이게 바로 진짜 정치?

[더팩트ㅣ국회=임현경 인턴기자] "정치는 쇼(Show) 비즈니스와 같다."

로널드 레이건이 남긴 말입니다. 미국 제 40대 대통령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배우로 활동하며 익힌 연기력이 정치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로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죠.

대통령 직위를 가졌던 인물이 정치를 설명하면서 '쇼(show)'를 언급한 것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그만큼 정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정치부에 오게 될 줄 까마득하게 몰랐던 인턴기자는 책으로만 정치를 배운 '정알못(정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인턴기자가 14일 오후부터 저녁 9시께까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자유한국당의 본회의 개회 반대 농성과 여야 극적 타결의 순간을 코앞에서 목격했습니다.

여의도 도착 직전까지 기사와 TV 뉴스로 지켜봤던 국회에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욕적인 표정과 목소리로 '드루킹' 특검법안 상정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농성장에는 의원들과 보좌진을 포함해 약 100여 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한국당 의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의원들의 농성은 TV에서와 달리 강경하지도 그렇다고 열정적이지도 않았고,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문병희 기자
한국당 의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의원들의 농성은 TV에서와 달리 강경하지도 그렇다고 열정적이지도 않았고,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문병희 기자

막상 국회에 들어서니 현장은 예상보다 훨씬 차분 ,아니 무기력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겁니다.

두 다리를 쭉 펴고 있거나, 둥글게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의원은 SNS에 게시된 유리공예 동영상에 몰입하느라 취재진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까맣게 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정됐던 본회의 시간 4시가 임박하자 갑자기 분주해졌습니다. 기자들은 일제히 본회의장 앞으로 달려가 반원을 이뤘고, 의원들은 정자세로 고쳐 앉은 뒤 농성을 재개했습니다. 수많은 카메라에 둘러싸인 의원들의 행동은 흡사 영화감독의 '큐' 사인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보여주기'에 충실한 의원들은 배우와 똑 닮아있었습니다.

10분쯤 지났을까요. 본회의는 1시간 미뤄졌고, 의원들은 다시 '쉬는 시간'에 돌입했습니다.

"물리치료 받고 왔어? 그 병원 다녀왔구먼? 우리 나이엔 무릎이 문제야."

몇몇 의원들은 관절 치료에 좋은 병원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보좌진은 지친 의원들을 위해 물을 가져다주고, 립싱크로 요령을 부리는 그들 대신 목청껏 구호를 외쳤습니다.

진행자가 "오전에 발언했던 분들 제외하고 다른 분들이 말씀 좀 많이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의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마이크를 잡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서로 발표를 미루며 누구 하나 나서주길 바랐던 학교 조별과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국당 의원들도 지쳤고, 보좌진도 지쳐있었다. 사진은 이은재 의원이 농성 중 휴식을 취하며 휴대전화를 보는 모습. /문병희 기자
한국당 의원들도 지쳤고, 보좌진도 지쳐있었다. 사진은 이은재 의원이 농성 중 휴식을 취하며 휴대전화를 보는 모습. /문병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가고 장 밖의 모두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한 의원의 목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타고 울려 퍼졌습니다.

"18대 때가 그립다. 멱살을 얼마나 잡았던지. 그날 전쟁 났으면 아마 북한이 이겼을걸?"

국회선진화법의 다른 이름은 '몸싸움 방지법'입니다. 2012년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으로, 권력 남용·소수의견 배제를 막는 동시에 '타협의 미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또한 책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하지만 책 밖 세상에서 현직 의원들이 생각하는 정치의 미학은 전혀 달랐던 모양입니다. 90여 건의 직권상정이 처리되고 여야 간 몸싸움이 끊이지 않던 그때를 아름답게 추억할 줄이야.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여야 합의로 마무리됐다. 사진은 14일 의원 사직 처리, 추경, 드루킹 특검 처리 등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노회찬 평화와정의 원내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문병희 기자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여야 합의로 마무리됐다. 사진은 14일 의원 사직 처리, 추경, 드루킹 특검 처리 등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노회찬 평화와정의 원내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문병희 기자

입구 쪽에서 누군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자, 방송 카메라엔 녹화 시작을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큐 사인인 것처럼 다시 규탄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죠. 반복되는 패턴이 슬슬 지겨우시죠? 네. 인턴기자도 참 지루했습니다.

레이건이 옳았습니다. 몇 번의 '쇼'가 더 반복되고 나서야, 여야 관계자가 손을 잡고 나와 합의 성사를 알렸습니다.

내내 묵묵히 의원들을 보살폈던 보좌관 중 하나가 한숨과 함께 뱉어낸 푸념이 인턴기자의 귀에 흘러들어왔습니다. "누굴 위해 하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처음으로 국회에 발을 디뎠던 그 날의 경험을 여러모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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