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金 "우리 때문에 새벽잠 많이 설쳤다는데…" 文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
[더팩트ㅣ판문점 공동취재단·이원석 기자] 27일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역사적 만남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눈 대화들이 화제다. 얼마 전까지 전쟁까지 언급했던 남북이었지만 두 정상은 마치 친구처럼, 가족처럼 다정한 대화를 나눴다. 국가 정세에 대해서도 서로 마음을 모았다.
이날 한반도와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군사분계선(MDL)에서의 첫 만남부터 정상회담, 환영만찬, 작별까지 이어진 두 정상의 인상적인 발언들을 모아봤다. 두 정상은 돌발상황을 만들기도 했고, 화통한 어록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연출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북측으로 안내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오전 9시 30분 -군사분계선 위에서 '첫 만남'
문재인 대통령 : (김 위원장이) 남측으로 오셨는데 저는 언제쯤 (북쪽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 위원장 : 그럼 지금 넘어가 보시겠습니까?
군사분계선 위에서 만난 두 정상은 다소 어색해 보였지만,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먼저 군사분계선까지 나와 기다리던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다가오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나눈 뒤 사진 촬영을 위해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향해 "저는 언제쯤 (북쪽으로) 넘어갈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 보시겠나"라고 말하며 문 대통령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넘어갔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제안에 다소 당황한 듯했지만 함께 북측으로 넘어갔다.
'깜짝' 월북이었다. 북측에서 김 위원장은 남측에서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김 위원장은 다정하게 문 대통령을 마주 보더니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계획되지 않은 '돌발상황'이었다. 그러나 먼저 문 대통령에게 제안한 뒤 잡아 이끄는 김 위원장의 발언과 모습은 화끈하고 결단력 있는 그의 성격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국군 의장대의 사열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오전 9시 40분 -의장대 사열 직후
문재인 대통령 : 오늘 보여준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습니다. 청와대로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첫 만남 이후 우리 군 의장대의 사열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청와대로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했고 김 위원장은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가겠다"고 화답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볼 수도 있겠으나 김 위원장의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고도 풀이 가능했다. 두 정상은 이후 서로의 수행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예정에 없던 단체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사전환담을 갖고 있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오전 9시 50분 -평화의 집 사전 환담에서
김정은 위원장 :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하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습니다.(웃음)
문재인 대통령 : 김 위원장께서 우리 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습니다.
회담장인 평화의 집에서 두 정상은 사전환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던진 건 섬뜩한 농담이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수차례 미사일 발사 및 핵 실험을 강행했다. 대부분이 새벽에 벌어졌고 문 대통령은 갑작스럽게 NSC를 열어야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섬뜩한 말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평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를 분명히 밝힌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도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제가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또, 자리에 배석한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향해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 아주 스타가 됐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 부부장의 얼굴이 붉어졌고 분위기 또한 화기애애해졌다.
오전 회담을 갖고 있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오전 10시 15분 -정상회담장에서 모두발언
김정은 위원장 :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통령께서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 (웃음)
문재인 대통령 : 10년 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김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유머 감각'을 뽐냈다. '멀리서 온 평양냉면'을 말하려던 김 위원장은 갑작스럽게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라며 당황스러워했다. 뉴스를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 최고지도자의 '허술함'에 좌중은 폭소했다.
하지만 이날 내내 김 위원장이 보인 모습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계속해서 농담을 건네려는 듯했다. 이전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하는 김정일 전 위원장의 모습이 겹쳤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진지한 소망을 밝혔다. "10년 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문 대통령의 표정에선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정상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김 위원장.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오전 11시 50분 -오전 회담 종료
김정은 위원장 : 비행기로 (평양에) 오시면 제일 편안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 그 정도는 남겨놓고 그때 닥쳐서 논의하는 맛도 있어야죠. (웃음)
오전 회담이 끝난 뒤 마무리 발언에서 김 위원장은 벌써부터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걱정했다. 그는 문 대통려에게 비행기로 오라고 권유했고 문 대통령은 "남겨놓자"고 했다.
김 위원장도 웃으며 "여기서 다음 계획까지 다 할 필요는 없지요"라고 답했다. 이번 대화가 끝이 아님을 예고하는 두 정상의 속뜻을 내비친 발언으로 풀이됐다.
판문점 선언을 발표 중인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오후 6시 -'판문점 선언' 발표
문재인 대통령 :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 북과 남은 갈라설 수 없는 혈육 동족이란 걸 절감하게 됐습니다.
식수 행사와 오직 두 정상만의 은밀한 산책 대화가 끝난 뒤 오전 회담을 바탕으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됐다.
▲올해 종전 선언 ▲회담 정례화 ▲8·15 남북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 가을 평양 방문 등의 내용이 담겼다. '파격적'이란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평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도 "결코 갈라설 수 없는 혈육 동족이란 것을 절감했다"며 선언문에 담긴 내용들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이룩해 나갈 것이란 뜻을 재차 강조했다.
환영만찬에서 건배를 나누는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오후 6시 40분 -환영 만찬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 김 위원장과 나는 진심을 다해 대화했습니다. 마음이 통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평화와 번영, 공존하는 새길을 열었습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래킹하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그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웃음)
김정은 위원장 : 온 겨레의 공통된 염원과 의사를 숨기지 말고 불신과 대결의 북남 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함께 손잡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나가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정상의 발언엔 더욱더 간절함이 담겼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마음이 통했다"며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평화와 번영, 공존하는 새길을 열었다"고 선언했다. 그는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래킹하는 것이 꿈"이라며 "그 소원을 김 위원장이 꼭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웃음 섞인 진담을 전했다.
김 위원장도 진중했다. 그는 "불신과 대결의 북남 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함께 손잡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나가자"며 건배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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