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웅의 해시태그] #나경원 #배현진 #얼굴마담 #선거 #여성정치인
입력: 2018.04.16 05:00 / 수정: 2018.04.16 05:00

배현진(오른쪽) 전 MBC 앵커가 10일 자유한국당 당사의 한 행사에서 만난 나경원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새롬 기자
배현진(오른쪽) 전 MBC 앵커가 10일 자유한국당 당사의 한 행사에서 만난 나경원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한국 여성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인상적이다."

10년 전이던 2008년 4월, 당시 학부생이던 필자에게 불가리아에서 온 교환학생 소피아(여)가 했던 말이다. 한국과 한국 민주주의 원동력을 알고 싶다던 소피아는 한국 땅을 밟은 첫 해 민주주의 꽃이라는 한국의 선거문화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언빌리버블(unbelievable)."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그의 푸른 눈을 사로잡은 건 트로트 음악에 맞춰 거리에서 춤을 추며 선거운동을 하는 '아줌마 부대'다. 소피아는 "한국 여성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와 적극적으로 후보자를 지지하는 모습이 놀랍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서 두 해를 더 머물던 소피아는 그 때 그 아줌마 부대의 실체를 알고 "좋은 알바"라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 정치의 특이한 모습으로 이른바 아줌마 부대로 불리는 중년 여성들이 선거 시즌이면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한다. 이는 영화 검사외전에서도 소재로 활용됐다. /검사외전 영상 캡처
한국 정치의 특이한 모습으로 이른바 '아줌마 부대'로 불리는 중년 여성들이 선거 시즌이면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한다. 이는 영화 '검사외전'에서도 소재로 활용됐다. /'검사외전' 영상 캡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소피아와 '아줌마 부대'의 기억이 잊히지 않은 건 당시 민망함과 창피함 못지 않게 이 기간동안 변하지 않은 정치와 여성, 그리고 선거의 상관관계다. 여전히 여성정치인들은 능력과 노력보다 다른 부분으로 이슈와 토픽을 양산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시곗바늘을 10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서울시장·세종시장 추대 결의식으로 돌려 보자.

배현진(오른쪽) 전 MBC 앵커가 나경원 의원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배현진(오른쪽) 전 MBC 앵커가 나경원 의원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이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배현진(한국당 송파을 재보궐선거 예비후보) 전 MBC 앵커가 참석했다. 배현진 전 앵커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지만, 나경원 의원은 무표정으로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나경원 의원과 배현진 전 앵커의 '투 샷'은 <더팩트> 렌즈를 타고 퍼졌고,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언니_저_마음에_안들죠?'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큰 관심을 모았다. 무덤덤한 나경원 의원과 밝게 웃는 배현진 전 앵커의 모습이 대비를 이뤘다.

과거와 현재 '얼굴'의 충돌같은 나경원 의원과 배현진 전 앵커의 투 샷에 대한 반응과 평가는 여전히 '얼굴마담'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 여성 정치인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가야 엇갈릴 수 있지만 나경원 의원과 배현진 전 앵커 모두 법조계와 방송계에서 탁월한 지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가를 이뤘다. 하지만 '여성 정치인'으로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배현진(가운데) 전 MBC 앵커를 사이에 두고 나경원(왼쪽)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배현진(가운데) 전 MBC 앵커를 사이에 두고 나경원(왼쪽)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누리꾼들은 "나경원이 배현진에게 밀렸다", "나경원 배현진 경계하는 거 보소", "자유한국당이 간판을 나경원에서 배현진으로 교체했다" 등 다분히 남성중심적이고 권위적인 반응을 내놨다.

'얼굴마담'이라는 여성 정치인을 향한 이런 굴레가 생긴 건 언론 책임도 크다. 나경원 의원 데뷔 초창기에도 그랬고, 지금 배현진 전 아나운서도 그렇고 이들 여성 정치인에 대한 미디어 기사는 '미모'와 '패션'에 관한 게 많다. 정치권 역시 여성 정치인 영입에 있어 수지타산부터 따져 외모로 소비했다. 여성 정치인은 남성 독점적 정당 정치판에서 남성 중심적 권력관계를 희석하는 제스처로 사용됐다.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정당의 꽃'이라는 미명 아래 대변인 내지는 '부'대변인 직을 거쳤다. 그러다 보니 여성 정치인의 개별성은 사라졌고, 패션과 미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럼에도 원내에 여성 정치인의 비중이 늘어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소피아가 '아줌마 부대'와 특별한 경험을 했던 18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단 여성 국회의원은 모두 46명(지역구 14·비례대표 32)이다. 이어 4년 뒤인 19대 국회엔 모두 53명(지역구 22·비례대표 31)이 입성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모두 51명(지역구 26·비례대표 25)이 국회의원이 됐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선거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정치인의 등용 여부가 주목 받고 있다. /더팩트DB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선거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정치인의 등용 여부가 주목 받고 있다. /더팩트DB

여성 국회의원의 수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남성 독점적, 위계적 정당정치는 국민들에게 피곤함을 주고 있다. 여기에 현재진행형인 정치권의 '미투(MeToo)'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어느 때보다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일과 가정, 생산과 노동, 돌봄의 가치에서 여성은 매우 중요한 존재다. 이들 가치는 현재는 물론 다음 세대를 살아갈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할 선결 과제다. 이제 더이상 여성을 '얼굴마담'이나 남성중심적 권력구조를 가리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써서는 안된다. 한국 정당정치와 선거에서 여성은 보다 공정하고 더 가치있게 대우 받아야 한다.

bd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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