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의 사사건건] 박근혜 주연, 2018년판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18.04.07 00:00 / 수정: 2018.04.07 04:48
박근혜 전 대통령은 6일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삶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인 10·26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캡처
박근혜 전 대통령은 6일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삶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인 '10·26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캡처

[더팩트 | 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1979년 10월 26일, 1972년부터 유지되던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다. 대한민국 5대 대통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측근 중 한 명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암살 당했다. 사람들은 권력의 정점에 섰던 박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를 기억한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2005년)'은 이를 그린다.

39년 후, 이 영화를 다시금 떠올렸다. 2018년 4월 6일, 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듯, 그의 '말로'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 개입 의혹을 부인하며, 온 국민을 기만한 박 전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무대는 교도소다. 징역 24년형, 사실상 종신형이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시작은 "세부사항과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연출과 출연을 자처한 2018년판 '그때 그 사람들'은 픽션이 아닌 실화다.

#. 촬영 장소 : 안가·청와대·서울구치소

아버지 박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뒤 '밀실 정치'의 상징이 됐던 안가(安家·안전가옥)가 딸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부활했다. 검찰 수사 결과 774억 원을 강제 모금해 만들었다는 미르·K 스포츠재단의 탄생지도 청와대 근처 '삼청동 안가'였다.

청와대 출입에는 상세한 기록이 남는다. 박 전 대통령은 은밀한 장소인 안가를 적극 활용했다. 지난해 7월 삼청동 금융연수원 맞은편의 한 주택에 대기업 총수들이 총출동한 것도 안가 독대를 위해서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세월호 사건 당일인 지난 2014년 4월 16일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과 논의를 마친 오후 늦게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았다. /청와대 제공
검찰 수사 결과, 세월호 사건 당일인 지난 2014년 4월 16일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과 논의를 마친 오후 늦게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았다. /청와대 제공

'안가 독대 정치'는 '침실 정치'로 이어진다.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 내실은 박 전 대통령의 집무실이기도 했다. 탄핵으로 청와대에서 쫓겨날 때까지 1475일 동안 청와대 본관 공식 회의나 외부 행사가 없으면 늘 관저에서 머물렀던 박 전 대통령.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관저에 들어간 최순실과 함께 '침실 정치'를 꾸려나갔다.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청와대 밖으로 쫓겨난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3일 18개 혐의로 구속됐다.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은 왼쪽 가슴에 브로치 대신 '수인번호 503'이라고 적힌 수용배지를 달았다.

구치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박 전 대통령은 운동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시간을 독서를 하며 보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 '객주'를 읽었고, 일본 천하통일의 과정을 담은 역사소설 '대망'도 봤다. 허리가 좋지 않아 지난 2월 영치품으로 받은 '통증 잡는 스트레칭', '궁극의 스트레칭'도 열심히 읽고 있다. 만화인 방학기 작가의 '바람의 파이터', 허영만 작가의 '꼴' 등도 박 전 대통령의 '독서 리스트'에 포함됐다.

#. 명대사 : 자괴감·윈윈(Win-Win)·속았다·정치보복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2016년 11월 4일,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갖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저 역시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있다"며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참담한 심정"이라며, 아무 것도 몰랐으나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듯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 안가에서 정경유착(政經癒着)이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재벌과 유착하면서 기업 총수에게 경영권과 직결되는 현안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서로 윈윈(Win-Win)'하는 자리였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53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3일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53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전 대통령은 '타이틀 롤(Title role)'이기를 거부하며 급기야 모든 책임을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 26일 인터넷 매체인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몰랐다고 발뺌했다. 같은 해 4월 구속 후 첫 조사에서도 '최순실에게 속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 설정도 빼놓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 16일, 구속 연장 후 처음 열린 재판에서 "정치 보복"이라고 말했다. '재판 보이콧'이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은 물론 저 역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 뜻에 맡기겠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정치 보복'은 서울동부구치소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의해 패러디된다.

#. 러닝타임·촬영 거부·크랭크업…'내멋대로 주인공'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모두 18가지다. 삼성전자 뇌물수수, 롯데그룹 제3자 뇌물수수, SK그룹 제3자 뇌물요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직권남용·강요), 문화예술계 직권남용·강요, 청와대·정부문서 유출(공무상 비밀누설) 등…. 5년간의 임기 동안 참 많은 것을 남겼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상당한 길이의 러닝타임도 가능하다. 시리즈로 진행돼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 검찰 수사 결과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동정범'으로 묶였다. 박 전 대통령 혐의 18개 중 13개를 최순실과 공모한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 역시 최순실의 1심 선고에서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13개 혐의 중 11개를 유죄 또는 일부 유죄로 인정했다. 단독 주인공 자리를 위협 받는(?)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통으로 받는 13개 혐의 중 11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더팩트DB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통으로 받는 13개 혐의 중 11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더팩트DB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6일을 끝으로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모든 재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모든 재판은 궐석재판으로 진행됐다. 주인공이 불참한 상태에서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선변호인 5인과의 소통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불통' 주인공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검찰은 지난 2월 27일 결심공판에서 '헌법 가치 훼손', '정경유착', '민간 기업의 사유화', '문화·예술계 양극화', '무책임한 자세'를 이유로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 새드엔딩 그리고 후속편 제작 여부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

2018년판 '그때 그 사람들'은 2018년 4월 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크랭크업(Crank up)' 했다. 본인에게도 국민에게도 '새드 엔딩(Sad ending)'임은 틀림 없다. 항소심 과정이 담기는 후속편 제작 여부는 다음 주 결정된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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