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탈북 교수' 주승현 "北, 백지영 인기? 많이 달라졌네요" <상>
입력: 2018.04.02 00:00 / 수정: 2018.04.02 00:00
탈북민 출신의 통일학 박사 주승현 교수는 총 맞은 것처럼을 즐겨 듣는다면 개인적인 영역까지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모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대문=남윤호 기자
탈북민 출신의 통일학 박사 주승현 교수는 "'총 맞은 것처럼'을 즐겨 듣는다면 개인적인 영역까지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모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대문=남윤호 기자

주 교수 "정치 물꼬 트고 문화·예술 공연…순서대로 가고 있다"

[더팩트 | 서대문구=김소희 기자] "북한에서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 인기 많다고요? 처음 들었지만, 인기 있는 이유는 알 것 같아요."

3월 31일부터 오는 4일까지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우리 예술단 공연이 열린다. 3일에는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합동 공연도 펼쳐진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맞아 북한 예술단이 서울과 강원도에서 두 차례 공연을 선보인 데 대한 화답 차원이자, 오는 27일 진행될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행사이다.

16년 만에 이뤄지는 남한 예술단의 평양 공연은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조용필, 이선희, 레드벨벳, 백지영, 서현, 알리, 정인, 윤도현밴드 등 우리나라 가수들의 방북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최악으로 치닫던 남북 관계의 개선 여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됐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더팩트>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모처에서 '탈북민 1호 통일학 박사'인 주승현(37) 전주기전대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평양 공연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대답을 끌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회의적'인 시각은 아니었다. 다만 '톤 다운(Tone down)'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그의 '통일에 대한 인식'에 기저 했다.

주 교수는 "문화 교류로 남과 북이 접근해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시도됐고, 앞서 전두환 정부 때도 이뤄졌던 일"이라며 "아직 많은 영역에서 분단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일 하나만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다소 원론적인 해석으로 다가왔지만, 이 말을 뱉는 그의 표정은 신중했다.

주 교수는 2002년 북한군 DMZ 내 북측 심리전 제압 방송 요원으로 군 생활을 하던 스물두 살 때 휴전선을 넘어 탈북했다. 이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통일학 박사로 남·북 교류에 대해 수도 없이 연구하고 성찰했다. <더팩트>는 주 교수와 최근 남북관계 상황, 문화 공연, 정상회담 등에 대해 약 1시간 동안 들어보았다.

주 교수는 남한 예술단의 방북 공연에 대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남윤호 기자
주 교수는 남한 예술단의 방북 공연에 대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남윤호 기자

◆"싸이 공연 불발, 놀랍지 않아…문화적 공감 우선돼야"

최근 대북 소식에 따르면 북한에서 가수 백지영의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이 큰 인기라고 한다. '백지영의 노래가 북한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자 주 교수는 "그래요?"라고 반문했다. 백지영의 대표곡 '총 맞은 것처럼'이 2008년 발매됐기 때문에 주 교수는 남한에서 해당 곡을 접했다. "처음 듣는 얘기"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주 교수는 이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며 백지영의 노래가 담고 있는 정서에 대해 공감했다.

'사랑 가요'는 북한에서도 인기다. 주 교수는 북한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가르친다고 전했다. 다만 우리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하는 사랑과는 차이가 있다. 주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북한의 사랑 교육은 '국가적'이고 '집단적'인 사랑이다. 주 교수는 "접근법이 다르긴 하지만 북한도 사랑을 많이 얘기한다"면서도 "집단적 사랑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총 맞은 것처럼'을 즐겨 듣는다면 개인적인 영역까지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백지영 씨의 노래는 멜로디가 있잖아요. 그 멜로디는 북한 주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멜로디예요. 북한 주민 중 '총 맞은 것처럼' 가사를 이해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 곡을 좋아하는 데 더 큰 상승작용이 됐겠죠. 사랑 얘기니까요. 정말 많이 변화한 거죠."

우리 측 예술단 명단에 가수 싸이가 제외된 것에 대해서는 "그럴 만도 하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싸이의 음악 스타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절대 익숙하지 않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신기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자극적일 것이라 우려했을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이 맞았다. 주 교수는 "문화란 오랜 시간을 통해 천천히 다져지는 '체화 과정'이 필요한데, 싸이 음악에 대한 문화적 이해는 지나치게 차이를 보인다"고 부연했다.

주 교수는 "정치적 영역에서 물꼬를 트면 나머지 제반인 문화·예술 측면에서 협력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가자는 접근이 나온다"며 "통일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제가 보기에 하나의 순서대로 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주 교수가 비무장지대를 넘어 탈북을 하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주 교수가 비무장지대를 넘어 탈북을 하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22살·25분이 바꾼 인생…"우리 모두가 조난자"

22살이던 2002년, 주 교수는 최전방 대남선전방송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직업군인'을 꿈꾸는 꿈많은 청년이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군관학교 입학이 수차례 거절되는 상황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DMZ를 넘어가자'. 그가 근무하던 곳은 남한 초소까지 불과 700미터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뜀박질로 5분도 안 되는 거리다. 철책을 넘고 지뢰를 피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1만 볼트의 고압전류와 4중 철조망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25분 걸렸다. 대한민국 땅에서의 삶이 그렇게 시작됐다.

주 교수는 "20대여서 가능했다. 30대였으면 죽어도 안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위험하고, 비무장지대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수식어인 '탈북민 통일학 1호 박사'도 그의 오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주 교수는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게 첫 번째 목표이기 때문에 탈북민이 돈이 많이 드는 대학원 진학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가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도 절대 녹록지 않았다. 20살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영어를 접하지 못한 그에게 대학 수업은 '제2의 고난 행군'과 다를 바 없었다. '탈북민'이라고 기재한 이력서는 번번이 퇴짜를 맞아야 했다.

이러한 경험 때문일까. 주 교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의미' '됐다'라는 식의 단언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됐다'라고 안도하기엔 그가 보고 겪은 '남·북 갈등'은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탈북민 3만 명 시대'다. 2017년 말 기준 국내 탈북민 수는 3만1339명으로 나타났다. 주 교수는 자신을 '조난자'로 지칭했다. 나아가 탈북민을 비롯한 분단국가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조난자'라고 말했다.

"우리는 분단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요. 전쟁 위협이 있거나 이산가족이 TV에 나올 때,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북한을 통해 대륙으로 가지 못하고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할 때 비로소 분단을 인식하죠. 탈북민만 '조난자'는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조난자입니다. 내가 아니어도 우리 후대가 조난자일 수 있어요. '현재진행형'인 이야기입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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