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의 사사건건] 박근혜의 '침실 정치'가 왜 불쌍하다는 거죠?
입력: 2018.03.30 05:00 / 수정: 2018.03.31 00:48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 씨가 지난해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 씨가 지난해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더팩트 | 김소희 기자]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2014년 4월 16일 오후 5시 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게슴츠레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어떻게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는지 의아했다.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

이 발언은 대통령이 구조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을 야기했다. 4년 전 의문은 28일 검찰의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의 행적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풀렸다. '아, 정말 몰랐구나.'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관련 첫 보고를 오전 10시 20분 침실에서 받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구조 '골든타임'은 10시 17분이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씨가 관저에 도착한 오후 2시 15분까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 채, 침실에서 '오매불망' 최 씨만을 기다렸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관저 내실에서 최 씨 그리고 '문고리 3인방'과 오후 3시까지 회의한 끝에 중대본 방문을 결정한다. 미용사를 불러 화장과 머리 손질을 받고 오후 4시 33분 관저에서 출발해 5시 15분 중대본에 도착한다. 구명조끼 발언은 사고가 발생한 지 8시간이 지난 후 국가 통수권자 입에서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14년 4월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 방문을 방문해 질문에 답하던 당시. /더팩트DB
사진은 지난 2014년 4월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 방문을 방문해 질문에 답하던 당시. /더팩트DB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한 제1야당의 논평이 29일 나왔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며 "7시간을 두고 난무했던 주장들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런 광풍을 저지하지 못해 수모를 당하고 결국 국정농단이라는 죄목으로 자리에서 끌려 내려온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고 했다.

어제 그리고 오늘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4년 가까이 진실이 묻혀 있었고, 유족들은 고통 속에서 살았다. 박 전 대통령 호위무사들은 모든 내용을 감췄고, 조작했다. 인명 구조와 관련해 최고통수권자로서 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사후 대응은 최 씨가 주도한 후에야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늘상 그랬듯이 관저에 있고, 보고서는 탁자 위에서 부지세월 올려져 있었다. 관저하고 집무실의 구분이 없었다. 또 하나, 최 씨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다음 업무가 결정될 수 있었다.

아직도 최 씨가 등장할 때까지 3시간 45분 동안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국민은 모른다. 그런데 제1야당은 국민이 아닌 박 전 대통령이 불쌍하다고 한다. '침실 정치', 아니 최순실이 있어야 가능한 침실 정치로 304명의 꽃다운 생명이 조금이나마 살 수 있는 기회를 잃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수모'를 당했다고 말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박 전 대통령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최 씨를 기다린 '잘못'을 저지른 데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이날 제1야당의 논평을 통해 깨닫게 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일 오전 침실에 있어도 스스로 잘못된 줄 몰랐던 것도, '불쌍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임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박근혜'가 아닌 '최순실'이었는데도, 박 전 대통령이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발상이 있었기에 '비선실세'가 꽁꽁 숨겨질 수 있었다는 것을.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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