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어프로치] '호텔 갔던' 정봉주, 성추행 여부는 왜 말이 없나
입력: 2018.03.29 00:03 / 수정: 2018.03.29 00:03
성추행 의혹에 거짓 해명 논란까지 낳은 정봉주 전 의원이 28일 서울시장 선거 출마 의사를 철회했다. 사진은 정 전 의원이 18일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이효균 기자
성추행 의혹에 거짓 해명 논란까지 낳은 정봉주 전 의원이 28일 서울시장 선거 출마 의사를 철회했다. 사진은 정 전 의원이 18일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이효균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정봉주 전 의원은 28일 성추행이 있었다는 문제의 그 날 렉싱턴 호텔에 가지 않았다는 그동안 주장을 뒤집었다. 그것도 정봉주 전 의원 스스로 호텔 영수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며 정계 은퇴도 시사했다.

정 전 의원은 그동안 누명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며 피해자 A 씨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최소한 27일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했고, 그는 "자숙하고 또 자숙하겠다"고 말했다.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10년, 통한의 겨울을 뚫고 찾아온 짧은 봄날이었지만 믿고 지지해주신 분들께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정 전 의원은 사과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사과는 이번 논란의 발단인 성추행과 관련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정 전 의원이 성추행 문제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자연인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도, 자숙하겠다는 결정도 모든 것의 시작은 A 씨의 성추행 주장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이 성추행 문제에 관해 명확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실제 정 전 의원이 성추행했다는 '미투' 폭로가 나온 이후 곤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주변에선 미투 고발자와 최초 보도한 서 모 기자의 신상에 관해 물어왔다. 실제 아는 게 없으니 모른다고 했다. 설령 이들의 신상에 대해 알았더라도 시치미를 뗐을 것이다. 뭐 좋은 일이라고…. 어쨌든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투' 운동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일부 피해자들의 외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은 지난 12일 정봉주 전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의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당시. /문병희 기자
사진은 지난 12일 정봉주 전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의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당시. /문병희 기자

그런 와중에 정 전 의원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A 씨를 직접 보게 됐다. A 씨는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A 씨는 많은 사람이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얼굴과 신원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호소를 의심했다며 주위를 성토했다. 아울러 정 전 의원은 세간의 편견과 의심을 악용해 피해자를 유령 취급해 왔다고 주장했다. 앞선 사례를 통해 A 씨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이에 더해 A 씨는 사건 당일(2011년 12월 23일) 오후 5시쯤 자신이 렉싱턴 호텔 내 카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라며 위치기반 서비스 기록과 셀카 사진을 공개했다. 오후 5시 5분과 37분에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뉴욕뉴욕'(카페 겸 레스토랑) 룸 안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속 배경도 뉴욕뉴욕의 인테리어와 같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증거가 '결정적 한 방'이었다. 렉싱턴 호텔에 간 적 없다던 정 전 의원이 28일 호텔행(行)을 인정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내고 A 씨 기자회견 이후 직접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해보니 사건 당일 오후 6시 43분께 렉싱턴 호텔에서 결제한 내역을 찾아냈다며 스스로 밝혔다.

"피해 여성이 5시 40분(정확히는 오후 5시37분) SNS 사진을 언론에 안 올렸으면 너는 끝까지 우겼을 놈이야"(네이트ID lged****). 카드 내역을 확인한 시점도 석연찮다는 게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왜 A 씨가 당일 사진을 공개한 뒤에서야 카드 내역을 조회했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정 전 의원의 주장대로 5시 이후의 현장 부재를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번엔 반대로 생각해보자. 'A 씨가 추가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 이라는 가정을 세운다면 정 전 의원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사건 당일 오후 5시 7분까지 기록된 사진 780장을 믿고 A 씨가 특정한 시각의 행적을 찾아봤을까. 부정적인 궁금증이 남는다.

A 씨와 변호인단은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 12월 23일 사건 당시 모바일 위치기반 인증게임 포스퀘어 캡처본을 공개했다. /A 씨 측 변호인단 제공
A 씨와 변호인단은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1년 12월 23일 사건 당시 모바일 위치기반 인증게임 '포스퀘어' 캡처본을 공개했다. /A 씨 측 변호인단 제공

무엇보다 '알맹이'가 빠졌다. 정 전 의원은 A 씨를 거론하면서 사과하지 않았다. "여전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며 에둘러 의혹을 부인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성폭력 행위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툼의 여지가 남았다는 것으로 읽힌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판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그날' 지목된 장소에 없었으니 자신의 의혹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방어해왔다. 수차례 기자회견과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자신의 행적을 밝히며 결백을 호소했다. 그런데 사건 당일 렉싱턴 호텔에서 카드를 사용했다? 이 대목이 시사하는 바는 그동안 펼쳤던 자신의 논리가 틀렸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A 씨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빗나간 것이다.

그동안 온라인상에는 되레 A 씨를 의심하는 여론이 꽤 형성됐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고 A 씨를 향해 비난과 공격이 가해졌다. 일부는 A 씨의 '신상털기'에 나서기도 했다. A 씨는 기자회견에서 2차 가해의 두려움을 표했다. 그가 그동안 받았을 심적 고통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A 씨는 공개적인 성추행 인정과 진실한 사과를 정 전 의원에게 요구하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여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정계에 몸담았던 정치인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예전부터 당당하게 말하고 쫄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그동안 충만했던 자신감은 어디갔나 싶다. 그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그날 성추행은 사실인 거냐고.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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