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은 26일 예정됐던 검찰의 첫 구치소 조사를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조사 거부 모습이 먼저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묘하게 닮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공동취재단 |
'정치 보복' 전략…'법리적 다툼' 대신 '정치적 희생양'으로
[더팩트 | 김소희 기자] 뇌물수수와 다스 비자금 등으로 지난 23일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6일 예정됐던 검찰의 첫 구치소 방문 조사를 거부하며 사실상 옥중 투쟁에 돌입한 모양새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방문 조사 거부는 '정치 보복' '검찰 수사는 불공정하다'는 태도는 먼저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데칼코마니(Decalcomanie)'처럼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비유까지 나온다.
검찰은 이날 오후 2시 신봉수(48·사법연수원 29기)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을 이 전 대통령이 수용된 서울동부구치소로 보내 지난 14일 검찰 소환 때 다루지 않은 '다스' 관련 의혹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옥중 조사'는 이 전 대통령이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됐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강훈(64·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는 같은 날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조사 일체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강 변호사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지난번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한 것"이라며 "하지만 구속 뒤에도 검찰은 함께 일했던 비서진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러 조사하고 있고, 일방적인 피의사실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고, 검찰의 추가조사에 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거 같다"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의 '불만 표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열린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도 거부했었다. 검찰에 소환되던 14일에는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고 했고, 구속된 이후에도 측근을 통해 "같은 질문을 할 것이라면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의 옥중 검찰 조사 거부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상황이다. '부당 수사를 받고 있다'거나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선 '정치 보복'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수차례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던 지난 1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도 했다.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검사(왼쪽)가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았지만, 끝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옥중조사를 이루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사법 절차를 '보이콧'하는 행보는 박 전 대통령의 선례와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재판부가 구속 기간을 연장한 이후 "법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제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낭독한 뒤 이후 재판 출석을 모두 거부했다. 국선 변호인과 접견을 거부한 것은 물론, 세월호 보고 시각 조작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옥중 조사'도 거부했다.
법조계는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보이콧'은 박 전 대통령처럼 향후 재판을 '정치 재판'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법무법인 승민 조대진 변호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 당시 검찰에서 내놓은 증거를 보고 생각보다 탄탄하다고 판단해 법률적 쟁점으로 갈 경우 승리가 어렵다는 참모들의 조언을 들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 변호사는 "검찰 피신조서는 당사자가 부인해도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며 "피의자 입장에서 검찰이 자신을 어떻게 공격할지 견적이 나온 상황에서 더 말해봤자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투더라도 공판에서 다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23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논현동 자택에서 측근들 인사를 받으며 서울동부구치소로 압송되던 당시./남윤호 기자 |
법적 논리 다툼을 고려한 것 외에도 '보이콧'을 통해 이후 재판의 공정성을 다시 한 번 지적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조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은 금액이 크기 때문에 실형 선고를 받을 가능성도 큰 상황"이라며 "향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정치적 사면이 고려될 때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스탠스를 같이하는 게 편할 것이라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중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법리적으로 열심히 다퉜음에도 법리적 쟁점에서 졌다는 평가보다 정치적 희생양으로 태세를 취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희생양' 전략이 여론의 힘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당하는 입장에서 '정치 보복'이라 주장할 수 있으나 '최순실 국정농단'을 비롯한 이 전 대통령의 혐의들은 국가 원수로서 용서 받기 힘든 측면도 있다"며 "'정치 보복'이라고만 얘기할 뿐 구체적으로 항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유라', '최순실', '고영태'를 보면서 중도 보수 상당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며 "같은 진영조차 마음이 불편한 상황 속에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당사자들이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