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오른쪽)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5월 내 만나겠다"고 밝혔다./청와대 제공, 더팩트DB |
트럼프 "항구적 비핵화" 김정은 "대화 국면에서 핵도발 중단"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의 국면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조속한 만남' 제안에 '5월 내 만나겠다"고 수락했다. 예상을 넘어선 파격적 결정이었다. 실제 성사되면, '4월 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 북미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게 된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북·미 양 정상은 북핵 및 미사일 도발로 강대강 대치를 벌이며 '말폭탄'을 주고받았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북미 대화를 중재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다. 남·북·미 대화로 평화의 꽃을 피울 수 있을지, '한반도의 봄'이 기대되고 있다.
◆ 文대통령, 대미·대북 끈질긴 '설득'
남북과 북미 회담을 이끌어낸 데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전략'이 주효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제재 압박'에 동참하면서도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란 '투 트랙' 전략을 폈다. 지난 5월 취임 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도 대북·대미 설득에 주력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신(新)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하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혔다. 또,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를 쌓아왔다. 그간 정상회담 3번, 정상통화 11번을 하며 한미동맹을 다졌다. 지난 1월 4일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30분간 전화 통화를 갖고, "남북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며 우리는 남북대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며 힘을 실었다.
북한과의 관계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참가를 발판 삼아 신중하게 접근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북측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지난 9일 평창 올림픽 개막식 참석 차 북측 고위급 대표단으로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특사 자격으로 문 대통령을 만나 방북을 요청했다. 폐막 때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이끄는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해 북측이 "북미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 김정은 "트럼프 만나고 싶다" 한 이유
김정은(오른쪽) 위원장은 지난 5일 평양에서 정의용 실장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대화를 하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당일 김 위원장과 정 실장이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청와대 제공 |
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 대화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을 북한에 보냈다. 김 위원장은 방남 첫날 특사단과 접견 및 만찬을 가졌고,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한 동시에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대화 국면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곧바로 문 대통령은 미국 설득에 나섰다.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김정은의 메시지'를 들고, 8일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6일 북한에서 귀환한 정 실장은 "미국에 전달할 북한 입장을 저희가 별도로 추가로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방미 첫날, 두 사람을 만났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조기에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알고 보니, 정 실장이 말한 '히든 카드'가 바로 이 발언이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좋다. 만나겠다"고 제의를 받아들였다. 당초 '4월 북미 회담'을 말했다가, 남북 회담을 염두에 둔 정 실장 등의 건의로 '5월'로 늦춘 것으로 전해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9일 <더팩트>에 "이 같은 합의가 나오게 된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이고 끈질긴 대북 및 대미 설득,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으로 인한 북한의 국제적 고립 심화, 중국의 적극적 대북 제재 협조, 국제사회의 초고강도 제재로 인한 경제파탄을 피하기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정전 후 첫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는 어디?
정의용(왼쪽) 실장이 9일 백악관 내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그렇다면, 정전(1953년 7월) 후 첫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지는 어딜까. 남북 정상회담은 4월 말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열릴 예정이다. 백악관은 8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김 위원장 만남 제안 수락 사실을 밝히면서,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는 추후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유력 장소로는 평양이 꼽힌다. 김 위원장이 만남을 제안해서다. 지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도 모두 평양에서 열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할 가능성과 함께 판문점 북측지역인 통일각도 거론된다. 일각에선 북미회담을 중재한 한국에서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9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어떤 식으로 대화가 이뤄질지, 장소가 어디일지, 시간은 어떻게 될지, 과제가 많다. 그건 이제 시작"이라며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 북미 회담 관건은 '비핵화'…선회 가능성도
북미 회담의 관건은 '비핵화'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회담 성패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입장 표명에서 드러난 '미묘한 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과 면담에서 "항구적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했다. 이는 미국이 요구해온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정 실장 등 우리 특사단에게 '대화 국면에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란 전제조건을 달았다.
'조건 없이'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북한은 대북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거나 미국의 대 한국 핵우산 공약 철회, 주한 미군 철수 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 경우, 북미 관계는 급격히 돌아설 수 있다.
정의용(가운데) 실장이 9일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뒤 백악관에서 직접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를 수용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 북미 관계 정상화 및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북한의 이 같은 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다면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의 중요 의제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는 관측이다. 정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파탄을 막기 위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서로 빅딜을 추구할 만한 이해관계가 있다"면서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 역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