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靑.春'일기] "남북단일팀, 어떻게?" 靑 찾은 중학생의 질문
입력: 2018.01.23 05:00 / 수정: 2018.01.23 12:24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진천체육관 선수촌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던 당시./청와대 제공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충북 진천체육관 선수촌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던 당시./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기자님들 양해의 말을 구할게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예고 없이 2층 브리핑룸을 찾았다. 지난 18일 오후 2시 30분께였다. 이날 오전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한 문재인 대통령의 '분노' 발언으로 한차례 태풍이 지난 뒤였다. '뭐지?' 싶었다. 사전 공지된 일정은 없었다. 박 대변인은 "초등학교, 중학교 등 학생 기자단이 청와대를 견학하러 왔다"고 말했다. 긴장은 흥미로 바뀌었다.

몇 분 후, 1층에서 박 대변인의 모의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책상 위에 수첩을 올려놓고, 똘똘한 눈빛으로 박 대변인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저 귀여웠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어릴 적 생각도 났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러 기자들도 기사 작성을 잠시 멈추고, 이를 지켜봤다.

"소속사와 이름을 밝히고 질문해 주세요."(박수현 대변인)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공주중 1학년, 박모군)

지난 18일 청소년 기자단이 춘추관을 찾아 박수현 대변인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오경희 기자
지난 18일 청소년 기자단이 춘추관을 찾아 박수현 대변인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오경희 기자

순간, 기자들 사이에서 '와~' 탄성이 나왔다. 청와대로선 최근 가장 '민감한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박 대변인도 "형님 기자분들보다 질문이 세다"며 넉살을 떨었다. 그러나 곧 "선수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이 결코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며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답했다.

박 군의 질문은 송곳처럼 와닿았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을 피부로 느꼈다고 해야 할까. "중학생도 알 정도로 기사를 써야 한다"는 얘기를 귀에 못 박힐 정도로 들었던 기억도 불현듯 떠올랐다.

실제 여론은 심상치 않다. 우리 대표팀 등은 그동안 쌓아온 팀워크와 전술, 출전 기회 박탈 등을 우려하며 남북 단일팀 구성을 반대해 왔다. 이미 청와대 홈페이지와 국민청원 게시판엔 관련 글이 1000건을 넘어섰다. 국회의장실·SBS가 지난 9~1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평창올림픽 및 남북관계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2%가 "무리해서 단일팀을 구성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반면 "가급적 단일팀 구성이 옳다"는 답변은 27%였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남북 단일팀 구성 관련 게시글./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남북 단일팀 구성 관련 게시글./청와대 홈페이지

특히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2030세대가 가장 크게 반발했다. 19~29세 응답자 중 82.2%, 30~39세 응답자 중 82.6%가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정유라에 대한 각종 특혜에 반발하며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게 이들 세대다. 젊은 층에게 남북 단일팀 구성은 한반도 평화란 큰 틀보다 '반칙과 특권'이란 점을 주목한 것으로 해석됐다.

상황이 이러하자, 주말인 21일 청와대는 진화에 나섰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구구절절 '장문'의 입장문을 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언론과 야당에 "도와달라"고 했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근거로 '구글 트렌드' 지표까지 제시했다. '위기감'이 느껴졌다.

방남 이틀째인 현송월 단장을 비롯한 북한 예술단 점검단이 22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을 방문, 환영하는 시민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방남 이틀째인 현송월 단장을 비롯한 북한 예술단 점검단이 22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을 방문, 환영하는 시민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논란 속에서도 평창 올림픽 시계는 돌아간다. 같은 날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측 예술단 파견 사전점검단이 방남하는 등 개회는 22일 기준 18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와중에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이날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사진과 한반도기, 인공기 등을 불태우는 '화형식'을 벌였다.

이 모든 게 씁쓸하다.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에도 통일의 꽃은 필까.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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