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靑.春'일기] 文대통령 MB에 '분노', 기자도 화들짝
입력: 2018.01.19 05:00 / 수정: 2018.01.19 05:00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 발언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인천 영흥도 낚시배 침몰 사고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 발언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인천 영흥도 낚시배 침몰 사고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잠잠했던 공기는 일순간 달아올랐다. 18일 오전, 기사 발제 거리를 고민 중이었다. MB? 전날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이슈였다. 당일 청와대의 반응은 '노코멘트'였다. 이날 오전 10시께까지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MB, 정치보복 회견에 靑 침묵'으로 가제를 잡았다.

그러나 곧 뒤엎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일정이 공지됐다. 이 전 대통령의 회견 내용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가제는 날려야했다. 동료기자들도 "비슷한 '야마(주제)'로 기사를 작성 중이었다"며 넋두리를 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관심은 브리핑 내용과 수위로 쏠렸다.

오전 10시 40분께 박 대변인의 마이크가 켜졌다. 기자들의 노트북 타이핑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신문 지면인 경우 '1면 판갈이'를 예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운운한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에 대해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선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자신과 측근들을 향한 수사 등과 관련한 입장 발표 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이동률 인턴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자신과 측근들을 향한 수사 등과 관련한 입장 발표 후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이동률 인턴기자

'분노' '모욕'…. 문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강했다.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문 대통령을 보좌해온 박 대변인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분노'를 말했습니다. 제가 대변인을 하면서 처음 듣는 말입니다"라며 "대통령의 '분노'를 이해하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기자들의 질문도 같은 포인트에 집중됐다. "문 대통령의 분노란 표현은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언급한 부분인지, 새 정부의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과 상관짓는 데 대한 것인지" "발언 수위가 너무 센데 참모진들의 반대는 없었는지" "격한 반응이라고 생각되지 않는지" 등등.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답은 단호했다. "센 발언(또는 격한 반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인내할 순 없다" "국민통합은 무조건적인 인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금도를 넘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취지로 들렸다.

브리핑 직후, 예상대로 기자들은 '분노'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대한 해석은 '이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였다. 국회의원과 대선 전후 문 대통령을 취재해온 기자라면 직감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노 전 대통령을 '운명적 동지'라고 밝혔고, 정치적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노무현 정부의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 초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단초가 됐던 검찰 수사(태광실업 세무조사) 당시 변호인으로서 입회했다. '각별한 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대통령(당시 변호사)이 2009년 4월30일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더팩트DB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대통령(당시 변호사)이 2009년 4월30일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더팩트DB

참모진들도 입장 발표를 놓고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정권과 각을 세우면, 모든 이슈가 자칫 전 정권과 정치적 대결 구도로 함몰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문 대통령은 집권 2년차를 맞아 '국민 삶의 질' 개선을 국정 목표로 삼아 경제 정책 행보에 속도를 내던 중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밝혀온 문재인 정부로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게 일각의 시선이다.

어찌 됐든, 이제 현 정부와 MB 정부 간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ari@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