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종철 선배' 박종운, 열사 31주기 참배 "결국 우리의 승리?" (영상)
입력: 2018.01.15 00:00 / 수정: 2018.01.15 09:35

고 박종철 열사가 죽음으로 지켰던 학교 선배 박종운 씨가 최근 논란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 14일 박 열사의 31주기 추도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종운 씨는 추모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후배의 추도식을 지켜봤다. /남양주=이철영 기자
고 박종철 열사가 죽음으로 지켰던 학교 선배 박종운 씨가 최근 논란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 14일 박 열사의 31주기 추도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종운 씨는 추모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후배의 추도식을 지켜봤다. /남양주=이철영 기자

고 박종철 열사 선후배 "박종운이 더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팩트ㅣ남양주=이철영 기자] 고 박종철 열사가 죽으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선배 박종운(57) 씨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1987'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이목이 쏠리고 있는 박종운 씨의 모습을 <더팩트>가 확인했다.

박 열사의 선배 박종운 씨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었다. 박 씨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14일 박 열사의 31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묘소였다.

그는 '1987'의 흥행 돌풍으로 세간의 이목이 쏠렸지만, 단 한 번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화를 본 관객들로부터 '변절자'라는 거센 비난이 일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팩트> 취재진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박 씨를 박 열사 31주기 추도식 현장에서 추모객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해마다 박 열사 묘소를 찾았지만, 최근 상황으로 오지 않거나 조용히 홀로 조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였다.

박 열사의 추도식은 이날 오전 11시 시작해 약 1시간 30분 가까이 진행됐다. 박 열사의 가족, 친구, 후배 등 100여 명이 넘는 추모객들이 모였다. 박 씨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추도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 씨는 추모객들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박 씨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걸지도 않았다. <더팩트> 취재진은 추모객들 사이에 있던 그를 보고 박 열사의 친형 박종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박 열사의 누나 은숙 씨를 통해 박종운 씨를 확인했다.

그는 추도식 내내 자리를 지켰다. 가끔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을 뿐이었다. 특히 박 씨는 추도사 중 "박종철 열사는 자신의 선배를 지키기 위해 고문을 받다 숨을 거두었다"는 말이 나오자 고개를 숙였다. 박 열사가 본인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하다 끝내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된 추도식이 끝날 무렵 박 씨는 후배 종철에게 술을 올렸다. 박 열사 묘소에 함께 온 아내와 절을 했다. 박 씨는 자리를 뜨기 전 박 열사의 누나 은숙 씨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박 씨는 박 열사 추도식 내내 추모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었다. 추도식이 끝나고 박 씨는 박 열사의 누나 은숙 씨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박 씨는 박 열사 추도식 내내 추모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있었다. 추도식이 끝나고 박 씨는 박 열사의 누나 은숙 씨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묘소를 떠나던 박 씨에게 '영화 '1987'은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영화는 봤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어 '영화를 본 소감이 어땠냐?'는 물음에 "(종철이가 사망한 것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데 결국, 승리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박종운 씨에 대한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정치적 변절에 대해 그런 것 같다'는 질문에 "정치적으로 무슨 문제…"라고 답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만류로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박 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박 열사의 누나에게 '박종운 씨가 온 것 같다'고 묻자 "해마다 조용히 다녀갔다. 늘 아내와 함께 왔다"고 했다. 그러나 박 열사의 형 박 이사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 이사는 추도식 전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아직도 종운이나 종운이 가족을 미워하지 않는다.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서먹서먹할 수밖에 없다.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씨를 본 다른 추모식 참가자는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종운이가)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며 "본인이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갈 수는 있다. 그런데 종철이의 말을 곡해해서는 안 된다"고 불쾌해했다.

박 씨가 자신을 끝까지 지키다 고문으로 사망한 박 열사에게 술을 바치고 있다.
박 씨가 자신을 끝까지 지키다 고문으로 사망한 박 열사에게 술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 "어제 남영동에서도 봤었지만, 서로 인사하는 것도 좀 그렇다. 다들 불편해하니까 이제 더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열사의 형 박 이사나 친구, 선후배들이 박 씨를 불편해 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이유는 아니다. 박 열사의 주장이나 이런 것들을 곡해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박 씨는 2000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 후 '이명박과 함께! 뉴 타운+지하철!'을 내세우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특히 그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당시 홈페이지에 "종철이가 살아 있었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현재의 민주화 투쟁이다"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박 열사를 추모하는 이들이 박 씨를 비난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발언들 때문이다.

1987년 1월 14일 선배 박종운의 거처를 끝까지 밝히지 않아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박 열사의 비석에 국화가 놓여있다.
1987년 1월 14일 선배 박종운의 거처를 끝까지 밝히지 않아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박 열사의 비석에 국화가 놓여있다.

또, 박 씨는 지난 2003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 코드는 수구 논리로 변질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개혁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수구 우익도 문제지만 수구 좌익도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대 출신인 박 씨는 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386'이다. 1985년 서울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 학생운동본부 위원장, 민주화추진위 학생운동담당 지도위원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박 씨를 쫓던 공안 경찰이 1986년 1월 13일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 열사를 불법연행해 강압적으로 수사를 하다가 다음 날 발생했다.

박 열사는 선배의 거처를 끝내 말하지 않았고, 죽음으로 선배를 지켰다. 특히 박 열사는 쫓기던 박 씨의 목에 털목도리를 둘러주며 지갑에 달랑 남은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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