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종철 열사의 친형 박종부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가 13일 동생 묘소 옆 의자에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박 열사의 사진을 보며 웃고 있다. /남양주=이철영 기자 |
박종부 "가해자들 역사가 판단할 것"
[더팩트ㅣ남양주=이철영 기자] "종철이가 떠난 날은 늘 춥다. 혹한이 오면 종철이 기일이 됐구나 생각한다."
31년 전 경찰의 모진 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박종철 열사의 친형 박종부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가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박 열사 묘소에서 기자에서 건넨 첫 마디다.
박 이사는 박 열사 묘소 옆 의자에 앉아 31년 전 떠난 동생을 떠올렸다. 3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박 이사의 눈가엔 동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이 보였다. 박 이사는 동생 종철에 대해 "나이는 7살이나 어렸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었다. 종철이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매해 1월 14일은 박 열사가 경찰의 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두 살에 불과했다. <더팩트>는 박 열사의 31주기 전날인 13일 오전 친형 박 이사를 묘소에서 만났다. 영화 '1987'의 흥행에 따른 사회적 관심, 그날의 가해자 그리고 동생과의 추억 등에 관해 약 4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철이랑 술도 많이 마셨는데…
박 이사의 기억 속 동생 종철의 모습은 '술친구'였다. 박 열사는 술도 잘 마셨고, 나이보다 의젓한 동생이었다. 그는 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종이컵에 소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 가슴 속엔 여전히 스물두 살 동생 종철이다.
그는 "7살 차이에도 종철이랑 술을 자주 마셨다. 동생은 제가 술을 가르쳐 준 적도 없는 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마셨다"고 웃으며 "종철이가 술을 참 잘 배웠다. 술도 잘 마셔서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종철이가 공장 생활하다 구속됐을 때도 그렇고, 같이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종철이는 학생이었는데도 늘 듬직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컸구나' 생각했다"고 듬직했던 동생을 떠올렸다.
그는 그렇게 듬직했던 동생 종철의 학생운동을 왜, 막지 않았을까. 만약 '학생운동을 못 하게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는 없는지 궁금했다. 돌아온 답은 박 열사 형다웠다.
박 이사는 "종철이가 학생운동 하는 걸 말리지 않았다. 저 자신도 운동권이었는데 어떻게 말리겠나"라며 "당시 시대적 상황을 등한시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종철이의 학생운동은 제가 했었던 것과 차원을 달리했다. 동생은 늘 선두에 섰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에 따르면 동생 종철 그리고 함께 친하게 지냈던 멕시코 출신 신부와 밤새 술을 마셨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박 열사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였다. 박 이사는 그날이 떠올랐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그날은 종철이 대학 합격 축하파티 날이었다. 단골 술집 아주머니가 열쇠를 우리에게 맡기고 나가셨다. 우린 찌개도 끓이고 두부도 부치고, 밤새 술을 마셨다"며 "겨울이었는데 날일 밝을 때까지 소주를 25~26병 정도 마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마셨는데도 세 명 모두 멀쩡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박 열사는 경찰의 고문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당시의 가해자들 일부는 여전히 멀쩡히 잘살고 있다. 박 이사는 이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는 "의미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이사는 "영화에서 경찰 이름이 공개된 사람은 박처원뿐이다. 아마 박처원이 사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명을 밝히지 못한 사람들이 아직 많다. 살아있기 때문"이라며 "전두환의 경우는 이미 법정에서 심판받았다. 법적 심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역사가 판단하지 않겠나"라며 덤덤해 했다.
박 이사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박 열사의 사진을 보며 웃으면서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박 이사가 동생 사진을 보고 있다. |
◆부모님은 박종운을 아들로 생각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소주를 조금씩 한 잔 두 잔 마셨다. 동생 종철의 그리움때문으로 보였다. 박 열사의 사망을 이야기하며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박 열사의 선배 박종운 씨다.
박 열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박종운'이라는 인물도 주목받는다. 박 열사의 죽음과 직접 연관이 있어서다. 박 열사는 수배 중인 선배 박종운의 거주지를 밝히지 않았고, 경찰은 그런 박 열사를 고문 끝에 사망에 이르게 했다.
박 이사는 누구보다도 박종운 씨를 잘 알고 있다. 또, 동생이 박종운을 보호하다 사망했고, 이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몸담은 것도 몹시 가슴 아팠다고 한다. 동생 종철의 사망을 부른 박종운 씨에 대해 어떤 마음일까.
그는 "처음엔 엄청 섭섭했다. 종운이가 한나라당으로 간다고 했을 때 많이 말렸다"며 "선후배가 집단으로 일어나 종운이를 말렸지만 결국, 그렇게 한나라당으로 갔다. 너무 섭섭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종운이가 1988년 12월에 수배가 해제됐다. 종운이는 수배가 해제된 직후 우리 집에 찾아와 부모님을 잡고 엄청 울었다. 그런 모습을 본 부모님은 종운이를 (종철이 대신) 아들처럼 대했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 다른 길을 걷지만, 이건 경우가 아니다"고 씁쓸해했다.
박 이사는 "부모님은 아직도 종운이나 종운이 가족을 미워하지 않는다.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서먹서먹할 수밖에 없다.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한잔 마셨다.
박 이사는 박 열사의 31주기 전날인 13일 영화 '1987' 감독과 배우들이 묘소를 찾아온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배우 강동원, 김윤석, 장준환 감독, 여진구, 이희준(왼쪽부터) 씨 등이 박 열사 묘소에 헌화를 하는 모습. |
◆젊은 세대들 '촛불'은 1987년 '6월 항쟁' 연장선으로 알았으면
그래도 박 이사는 영화 '1987' 감독과 배우들이 묘소를 찾아서인지 금세 다시 웃었다. 추운 날씨에도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는 영화가 흥행해 다행이라며 웃었다. 설마 했는데 영화가 흥행하며 동생 박 열사와 당시를 살았던 국민에 대한 재평가에 뿌듯한 모습이었다.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박 열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에 박 이사는 "영화가 흥행해서 다행이다. 개인적으로는 젊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촛불 혁명은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고, 1987년 6월 항쟁의 연장선에서 이루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6월 항쟁도 국민이 주역이었다. 그 성숙한 국민 의식이 이어졌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사실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영화도 많이 보고"라며 영화 홍보도 잊지 않았다.
박 이사는 박 열사의 친형이다. 영화가 흥행하기 전에도 박 열사는 민주항쟁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될 정도이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지는 않았다. 만약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박 열사에 대한 관심이 지금과 같았다면 어땠을까. 영화의 흥행으로 사회적 관심이 된 것에 서운한 감정은 없을까 궁금했다.
그는 "서운한 감정보다는 많은 사람이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했다. 다른 분들에 비교해 동생 종철이는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희생에 대해 대가도 상당 부분 인정받았다"며 "다른 측면에서 30년간 동생 사건이 알려진 게 다가 아니다. 왜곡도 많다.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운을뗏다.
박 이사가 동생 종철의 묘소 옆에서 과거 함께했었던 시간을 떠올리고 있다. |
그러면서 "우리는 노력했지만, 부족했다는 것을 영화의 흥행을 통해 깨달았다. 오히려 영화가 흥행하면서 그간 알리려 했던 것들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고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이사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당시 검찰의 행태 등 진실이 많이 알려져 그동안 쌓인 적폐청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그는 "영화에서는 정의로운 검찰로 나온다. 영화가 밝혀내지 못한 한계라고 본다. 다른 방법을 통해 더 밝혀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이사는 2015년 '1987'의 감독과 작가를 만났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2시간이 넘는 영화는 적당한 긴장감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고 한다. 박 이사는 "당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살았다. 영화를 만든 모든 분에게 다시 감 사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해맑게 웃었다.
인터뷰 말미 '동생의 사진은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박 이사는 "당연하죠"라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생의 지난 사진을 보여주며, "이날은 언제" "이건 동생과 누구" 등 밝게 웃으면서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동생 종철. 언제가 만난다면 형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보고 싶었다' '잘 있었어?' 등을 예상했다. 그러나 박 이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미안했다. 네가 죽었을 때 그렇게 미흡하게 대처해서 지금도 미안하다. 동생에게 떳떳할 수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