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린 제45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발의' 직접 나서나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여의도와 삼청동에 영화 <1987> 바람이 분다. 최근 여야 지도부는 단체관람을 추진하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한 번 봐야할 영화"라며 청와대 내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앞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 치안당국 수장 4인방의 '관람 인증샷'도 한몫했다.
정치적 이유와 맞닿아 있다. '개헌' 때문이다. 영화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을 조명한다. 6월 항쟁은 전두환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받침돌이 됐다.
올해 정치권 최대 화두도 개헌이다. 30년 넘게 유지돼온 지금의 헌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데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됐다. 새 정부 초기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가 모두 개헌을 주요 화두로 제시했다.
관건은 시기와 방향이다. 국회 개헌 특위는 개헌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이에 대한 정부여당과 야당 간 '간극'이 크다.
◆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與 '동시' vs 野 '분리'
사진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가 지난해 7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추미애 대표를 예방해 발언하던 당시./배정한 기자 |
지난해 12월 29일 여야 원내대표는 ▲2월 중 개헌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 ▲이를 위해 교섭단체들이 1월 중 추가 협의를 진행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 이달 여야가 개헌안 시점을 놓고 정면충돌을 예고한 대목이다. 지난해 말 종료를 앞뒀던 개헌특위는 올해 6월까지로 활동기한을 연장했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뤄질지 여부'다. 여당은 시간과 비용(1227억 원 추가 소요), 투표율 등을 고려해 '동시 실시'를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논의가 무르익지 않았다며 '분리 실시'로 맞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개헌은 '6월 13일(지방선거일)'로 맞춰져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2018년은 무엇보다 개헌의 시간"이라며 "각 언론 여론조사 결과 국민이 개헌에 압도적인 지지와 찬성을 보내고 있고 투표시기도 지방선거와 동시에 하는 것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분위기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29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삼각 커넥션에 의한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실시는 안 된다"며 "한국당은 국민 개헌을 반드시 내년 안에 실시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 정부 권력구조 방향과 내용도 각 정당별 '셈법' 엇갈려
국민의당이 '2018년 무술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단배(團拜·신년인사회)식을 연 가운데 안철수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효균 기자 |
1987년 개헌에서도 '대통령 임기'가 중요한 논점이었다. 헌법안에 대한 협상을 벌였던 여야 대표 8인은 당시 '5년 단임'으로 정치적 합의를 봤다. 30년 후, 여야는 권력구조 개편엔 동의한다. 문제는 선호하는 '정부형태'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다. 대통령 권한을 일부 분산한 뒤 4년 뒤 재평가를 받도록 해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현 대통령제를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꿔야한다는 모양새다. 대통령은 국민 직선으로 뽑고 국회가 총리를 뽑아 내치를 담당토록 해 권력을 분산하자는 주장이다.
특히 권력구조 개편은 '선거구제 개편'과도 연계돼 있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 양당 체제가 유지되도록 한 핵심은 '소선거구제'다. 1위 득표자만 당선의 영광을 누리며, 한 정당이 특정 지역 의석을 독식하도록 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다수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에 비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등은 선거구제 개편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선거구제 개편 방향은 '비례성 강화'다. 각 정당의 실제 득표율 비중이 최대한 그대로 국회 의석수에 반영토록 하는 안이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도입, 석패율제 등이 꼽힌다. 이 경우, 지역구를 가진 현역의원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여야 간 이해관계가 얽힌 이유다.
◆ 국회서 합의 못하면…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직접 발의?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을 적고 있다./청와대 페이스북 |
여야가 '2월까지' 개헌안 마련에 실패할 시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시기는 내년 5월 초가 '마지노선'이다. 개헌특위는 앞서 ▲내년 2월 특위 차원의 개헌안을 마련하고 ▲3월15일 이후 개헌안을 발의해 ▲5월24일까지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일정을 수립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1일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단 오찬에서 "국회가 그럴 능력이 없으면 헌법상 대통령도 개헌(안)을 발의할 권능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국회가 그 역할을 하지 않을 때는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국회가 활동 기한을 연장한 개헌특위에서 개헌안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정부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문 대통령 또한 그동안 개헌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지난해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18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이 개헌에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청와대 관계자는 "여야 합의를 최대한 기다리겠지만 국회가 못한다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그러나, 개헌안을 발의해도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국회의원 198명(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의석수를 모두 모아도 181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국회를 통과한 개헌안은 30일 안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며 유권자 과반이 참여해 과반이 찬성하면 개헌이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