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의 '靑.春'일기] 청와대 출입기자, '195번'입니다
입력: 2018.01.02 04:00 / 수정: 2018.01.03 11:16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 1층과 2층 브리핑 공간에서 대변인과 참모진 등의 브리핑을 취재한다./위키트리 제공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 1층과 2층 브리핑 공간에서 대변인과 참모진 등의 브리핑을 취재한다./위키트리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청와대 출입기자 비표가 나왔습니다."

2017년 8월 10일 오후 6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다. 역사적(?)인 날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허가'를 받았다. 한 달여 신원조회 끝에 자격이 주어졌다. 기다리는 동안 인생을 되돌아보기까지 했다. "아, 살면서 뭐 잘못한 게 없었나?""조상님 중에 잘못하신 분은 없겠지?" 등등. 오만가지 걱정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신규 언론사에 문호를 개방했다.

나흘 뒤, 비표를 수령했다. 서약서를 썼다. 보안 사고 예방 차원이었다. "인증 사진 안 찍으세요? 다른 기자분들은 내부 보고용으로 찍으시던데…." 한 행정관이 말했다. '흠. 나도 찍어야 하나.' 대충 찍어서 보고했다.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하긴, 각 언론사마다 청와대 신규 출입에 공을 들여왔던 터라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이전 정부였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또각또각. 광복절 다음 날인 8월 16일, 잘 신지 않던 뾰족구두를 신고, 정장 차림으로 춘추관에 들어섰다. 공식 출근이다. 어색한 걸음걸이만큼, 입구부터 공기가 낯설다. 경호요원은 이름, 언론사명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어 출입증을 건네며 '태그(전자출결시스템)'하라고 했다. 어리바리하게 서 있자, 시범을 보인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마음을 다잡았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지난 8월 1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맞아 진행된 청와대 오픈하우스 행사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지난 8월 1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맞아 진행된 청와대 오픈하우스 행사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안녕하세요, 195번입니다.'

매일 출·퇴근 시 '절대 잊어선' 안될 중요 일과다. 나의 등록번호다. 신규 출입이라 후순위다. 흡사 구치소의 '수감번호'를 떠올렸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동료기자도 "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번호가 503번이었죠? 우리가 더 앞 번호네요"라며 웃었다. 현재 춘추관엔 140개 언론사에서 나온 300여명의 기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지난 7월부터 출석 심사 중이다. 이 때문에 기자들도 바짝 긴장 상태다.

실제 생활도 '수감자'와 비슷(?)하다. 분명 나 역시 '청와대'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성역의 공간을 드나들며 '대한민국 심장부'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통령 집무실 어때?""안에 들어가봤어?" 등 지인들을 만날때면 듣는 질문이기도 했다.

곧 '이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참여정부 때 '취재 선진화 조처'로 청와대 경내 출입에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청와대 관계자들과 개별 취재를 하려면 전화를 이용하거나, 관계자들이 청와대 밖으로 나오는 배려를 구해야 한다. 마감시간에 쫓기는 기자들은 대변인과 국민소통수석 등의 브리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매체'와 '맨' 파워도 갈린다.

일부 기자들은 "대변인 입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고, 때 되면 밥 먹고 수감생활 같다. 국회에선 의원실 방도 자유롭게 드나들고 했는데 답답하다"고 푸념을 쏟는다. 청와대가 아닌 '춘추관 출입기자'란 자조성 표현이 이해가 됐다. 신규 출입기자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복(福)'이라고 해야 할까. 출입 3일 만에 청와대 내부를 볼 기회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들에게 청와대 경내를 오픈했다. 이전 정권부터 출입한 한 기자는 "나도 출입한 지가 2년이 넘었는데 청와대 안 비서동을 다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변화의 바람이었다.

청와대가 배포한 2018년 직원용 달력./청와대 제공
청와대가 배포한 2018년 직원용 달력./청와대 제공

벌써, 4개월 반여가 흘렀다. 더위인지 긴장인지 모를 땀을 뻘뻘 흘렸던 시간을 지나 겨울을 맞았다. 이곳 춘추관도 하나의 '세상'이다. 1층과 2층의 리그가 나뉘고, 여와 야, 주류와 비주류가 있으며, 선수(기자)들의 체급도 고단수다. '소리 없는' 전쟁터'다. 기자생활 정점인 이곳은 '넘사벽'으로 느껴진다. 누가 청춘을 푸른 봄이라 했나. 아, 막막한 나날의 연속이다.

'2017년의 사자성어'가 '파사현정(破邪顯正, 사견이나 사도를 깨어 버리고 정도를 나타냄)'이라고 했다. 그 마음가짐으로 2018년 1월 1일, '청와대 달력'을 걷는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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