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계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역풍이 불지 조마조마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1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
민주노총, 27일 민주당사 점거 농성 철회…"민주당, 촛불정신 실현 위임받은 것 뿐"
[더팩트|국회=조아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된 뒤로 줄곧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계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역풍이 불지 조마조마한 모습이다.
근로기준법 개정 중단과 한상균 위원장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여의도 당사에서 기습 단식농성을 벌이던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지난 27일 자진퇴거했다. 이 사무총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가 지난 18일 당사를 점거했지만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해온 민주당은 이날 퇴거로 한숨을 돌렸다.
민주노총 측은 근로시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을 결사 반대하며 반발 차원에서 당사 단식농성을 벌여왔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3당 간사는 지난달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되 휴일에 근무할 경우 휴일근로 할증(50%)·연장근로 할증(50%)을 중복해서 적용하지 않고 하나만 인정해 150%의 임금을 주는 방안에 합의했다.
민주노총에선 중복할증을 인정해 200%의 임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주말수당 중복할증을 폐기한 합의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갈리면서 결국 근로기준법은 환노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연내 처리가 무산됐다.
이 사무총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에 당사를 점거하고 '촛불고지서'를 내밀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 반대와 아울러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부 당시 민중총궐기 사건으로 수감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면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9일 단행된 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엔 한 위원장의 이름은 제외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상생·연대를 실천하는 노사와의 만남'을 주제로 노사 관계자들을 만나 노사정 대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0월 24일 문 대통령과 노동계 인사들의 만찬 모습. /청와대 제공 |
이춘석 민주당 사무총장 등이 나서 이 사무총장을 만나 퇴거를 요청했지만 설득에 실패했고, 당 지도부 역시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었다. 이 사무총장은 전날 투쟁발언에서 "대통령의 결단이면 바로 가능할 한 위원장의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박근혜에 의한 민중총궐기 탄압으로 이루어진 정치수배가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 등은 촛불정신의 후퇴를 보여주는 증거"라면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촛불을 주도한 세력이 아니다. 단지 촛불광장의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게 촛불정신의 실현을 위임한 것"이라고 거듭 민주당과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사무총장의 건강악화로 인해 당사 단식농성이 10일만에 풀렸지만 각종 노동현안과 민감한 사안 등이 산적한 상황이어서 향후 노동계와의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퇴거 전 민주노총 측은 추미애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실제 성사되지 않으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관측이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 사무총장의 단식 농성이 끝나고 나서 민주당으로부터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다"면서 "올해에 이어 2018년에도 이 문제에 대해 투쟁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정부가 이렇게 계속 촛불민심과는 괴리되는 양상으로 가는 것을 두고볼 수만은 없는 일"이라면서 "이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 청구 방침인데, 문재인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는 아울러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일자리위원회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며 벼르고 있다. 내부 찬반 논쟁 끝에 일자리위원회에 참여를 결정한 민주노총이었지만 노정 교섭 및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명확한 실행계획이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회의에 참석했던 민주노총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핵심적 사업에 대해서 요란하기만 하고 실제로는 훨씬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한 마디로 하면 노동계의 희망만 잔뜩 부풀려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월18일 오후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제3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이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는 노동계가 배제되는 경우도 많고...정치적으로 공약했던 것들이 반쪽짜리에 불과했다는 것이 상당부분 드러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노동계의 반대에 크게 부딪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으로선 상당히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에선 근로시간 단축이 주요 국정과제인 만큼 연일 신속입법을 강조하고 있는데, 지방선거 등 굵직한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 관계자는 "난감하다. 노동계 쪽에서도 양보를 어느정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당장 지방선거가 다가오는데, 현안 해결은 어렵고 해서 설득에 나서야 하는데 상당히 (처지가) 어렵다"고 했다.
민주당은 내년 2월 임시국회까지는 근로시간단축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여전히 노동계를 달랠 수 있는 카드를 찾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노동계와 당내 이견을 좁히는 것이 최대 과제"라면서도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 마련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