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출연금 요구에 신세계 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대림그룹은 미르재단에 각각 출연금을 납입했다. /더팩트DB |
'2015년 10월 24일' 전경련 그룹 보챈 날?…"불이익 걱정했다" 공통 증언
[더팩트 | 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신세계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대림산업은 미르재단에 각각 5,6억원을 출연했다. 두 그룹이 출연한 재단은 상이하지만, 출연 배경에 청와대의 '무언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증언은 공통된다. 표면적으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요구가 작용했지만, 두 그룹 관계자들은 "등골이 오싹했다"며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101차 공판은 전경련으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요구 받은 기업 임원들의 증인신문으로 진행됐다.
이날 첫 번째 증인으로 신세계 정모 전략실 상무가 출석했다. 정모 상무에 따르면 2015년 10월 24일 신세계 김해성 사장은 전경련 박찬호 전무에게 "26일까지 미르재단에 8억 원을 출연하라"는 내용을 전달 받았다. 이에 매주 월요일에 진행되는 임원 회의에서 임원들은 관련 건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은 "사전 요청 없이 2,3일 전에 연락와서 재단에 출연하라는 것이냐"며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당시 LS그룹에서 작성한 '그룹별 출연 현황 표'도 이날 재판에서 공개됐다. 전경련으로부터 출연을 요구 받은 LS그룹은 다른 기업 출연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문건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문건에는 '현대중공업 회사 경영난으로 미출연', '신세계 회장 출장 중으로 추후 출연' 등 출연 불가능 이유부터 그룹들의 정확한 출연 액수까지 상세히 기재됐다.
정 상무는 "당시 회장이 출장 중이어서 전경련에 미르재단 출연금을 납입하지 않은 것도 맞지만, 계셨어도 이런 보고는 안 드렸을 것"이라며 "문화재단을 만드는 데 문화재단의 취지나 상세한 내용 설명 없이 출연금을 요청하는 부분이 황당했다"고 말했다.
미르재단에 '0원'을 출연한 신세계그룹은 결국 K스포츠재단에 5억 원을 출연하게 됐다. 정 상무는 "2015년 10월 27일 미르재단 현판식이 언론 기사에서 보도된 것을 봤다"며 "대기업 임원들이 모두 참석한 것을 보고 저희의 판단이 잘못됐나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 염려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정 상무는 "보조를 맞추지 않을 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내부 모두가 공감한 사항"이라고 했다. K스포츠재단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음에도 5억 원을 출연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신세계 홍모 부장 역시 이와 관련해 "등골이 오싹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전경련의 미르재단 출연금 압박 배후에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언론에 접하면서 당시 신세계의 거절이 대통령을 거절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라 우려했다.
정 부장은 "전경련이 직접적으로 '청와대'나 '대통령'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요청이 있어서 해야 한다는 톤으로 말했다"며 "'우리가 다 기획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뉘앙스를 보였기 때문에 (정부게) 우리 그룹이 밉보일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두 그룹 모두 2015년 10월 24일 전경련으로부터 미르재단에 출연금을 납입할 것을 요구 받았다. /더팩트DB |
대림산업도 2015년 10월 24일의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림산업 배모 상무는 이날 오후 증인신문에 출석해 "전경련 박 전무로부터 휴일에 급하게 전화가 왔는데, 이틀 안에 재단이 설립돼야 한다고 했다"며 "당시 분위기로 고위층으로부터 요청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림산업은 단 한 장짜리 '재단법인 미르 설립 추진 계획서'를 받아 봤을 뿐이지만, 일반적으로 재단에 출연할 때 따졌던 소유자금 규모, 예산 지출내용 타당성, 사업구성 콘텐츠 등을 무시한 채 6억 원을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배 상무는 "당시 대림 오규석 사장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전경련 박 전무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좋은 일에 많은 그룹이 참여하면 좋지 않겠냐. 서류 준비해서 26일(월요일)까지 할 수 있게끔 협조하라'는 전달 받았다"며 "전경련에게 청와대로부터 연락 받고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들었고, 모든 기업이 참여하는 것으로 인식해서 특별히 내용을 따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림산업은 K스포츠재단 추진 계획과 관련해서도 미르재단과 마찬가지로 한 장 짜리 서류를 받게 됐다. 그러나 미르재단 출연 때와 정반대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K스포츠재단 출연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배 상무는 "K스포츠재단과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관련된지 몰랐다"며 "전경련에서 실제로 많은 건의 요청이 들어오는데, 미르재단은 위에서 내려와서 행정 처리를 한 것이고, K스포츠재단은 전경련 실무자 통해서 전달 받은 것이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ks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