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국무총리와 대권의 상관관계
입력: 2017.12.15 05:00 / 수정: 2017.12.15 05:00

국무총리와 대통령은 가깝고도 먼 자리다. 국무총리는 항상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권주자로 자주 입에 오르내렸지만 지금까지 실력있는 총리들이 대통령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똑부 총리로 평가받는 이낙연 총리의 미래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더팩트DB
국무총리와 대통령은 가깝고도 먼 자리다. 국무총리는 항상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권주자로 자주 입에 오르내렸지만 지금까지 실력있는 총리들이 대통령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똑부 총리'로 평가받는 이낙연 총리의 미래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더팩트DB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말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를 가졌다. 전직 언론인인 그로선 친정을 방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토론회를 시작하기 전 테이블을 돌며 언론계 선배,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으며, 취재기자들을 포함한 후배 언론인 및 일반인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그가 관훈클럽의 부름을 받은 것은 총리로서의 행보가 기대 이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충제 계란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따끔하게 질책해 국무위원들의 군기를 잡았는가 하면 국회에서도 명품 답변을 해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는 현역 중견 언론인 5명이 국정현안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하는 꽤 까다로운 자리였지만 그는 관문을 무난히 통과했다. ‘낙하산 인사’논란, ‘적폐청산’의 부작용, ‘책임 총리’의 역할 등 패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차분하고 조리있게 답변해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경기도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양승진 교사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안산=임영무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경기도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양승진 교사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안산=임영무 기자

그는 공공기관장에 정치인이 내려오는 것에 대해 “정치인들이 상임위 활동 등을 해서 그런지 비교적 일을 잘한다. 그래서 조직 관리도 잘하고 리스크도 적다”며 낙하산 인사를 방어했다. 국정농단, 댓글사건 등 적폐청산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 가야 할 때가 아니냐고 하자 잘못된 것을 들춰내는 건 언론이 좋아하는 것 아니냐며 반격하기도 했다. 국무총리의 국무 위원 임면에 대한 제청권 행사에 대해서는 “인사과정에서 단수든, 복수든 협의를 거쳤다”며 “낙마한 사람에 대해서는 제 의견을 전달했다”고 해 나름대로 역할을 했음을 내비쳤다.

개헌에 대해서는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합의해야지 마무리되는 것”이라면서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돼 있어 내 생각을 밝히는 게 적절치 않다”고 피해갔다. 다양한 국정 현안에 대해서도 막힘 없이 답변했다. 원전폐쇄 등으로 원전산업이 고사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탈 원전하는 데만 62년이 걸리는 만큼 원전산업에 대한 지원책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우려를 표명하자 정기상여금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할 것인지 여부는 부처간 협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며 최저임금에 대한 정부지원은 내년 경제상황을 봐가며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KBS, MBC 등 공영방송사태, 프레스센터 소유권 분쟁 등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답변해 디테일에도 강하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흔히들 리더를 똑똑함과 멍청함, 부지런함과 게으름 등 대립되는 속성을 조합해 ‘똑똑하고 부지런함’(똑부), ‘똑똑하고 게으름’(똑게), ‘멍청한데 부지런함’(멍부), ‘멍청하고 게으름’(멍게)으로 나눈 뒤 유능하면서도 방향을 정해줘 아랫사람을 헛고생시키지 않는 ‘똑게’를 최고의 리더로 꼽는다. 반대로 능력이 없는데도 부지런하기만 해 부하들을 피곤하게 하는 ‘멍부’를 최악의 상사로 친다. 이에 대입하면 이 총리는 ‘똑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을 꼼꼼하게 챙기면서도 부지런히 현장을 찾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경북 포항시 한동대학교를 찾아 지진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포항=문병희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경북 포항시 한동대학교를 찾아 지진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포항=문병희 기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성급한 질문도 나왔다. 그는 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 총리업무만 하기에도 벅차다”며 몸을 낮추었으며, 다시 유도질문이 나오자 “총리 다음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제 놀 자유도 있지 않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에게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뛰어나다 보니 능력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전남 지사 시절에는 보고서의 오탈자까지 잡아내는 바람에 너무 세세한 것까지 신경쓰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뒤집으면 대범함, 포용력은 부족하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을 봐야 하고, 용인술이 중요한 대통령의 덕목과는 거리가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은 가깝고도 먼 자리다. 국무총리는 항상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만큼 국민들에게 어필할 기회가 많다. 그래서 과거에도 능력 있는 총리들이 대권주자로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이회창, 고건, 김황식 전 총리 등이 그렇고 최근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황교안 총리도 유력주자로 거론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력있는 총리들이 대통령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능력과는 결이 다른 ‘시운’(時運), ‘카리스마’, ‘권력욕’ 등 뭔가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똑부’총리가 ‘대권 불임’의 전통에 어떤 족적을 남길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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