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비슷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들의 구속적부심에서 '오락가락' 판단을해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변동진 기자] 법원이 국가정보원 심리전단과 연계된 사이버 외곽팀의 온·오프라인 불법 정치관여 활동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이종명(59) 전 국정원 3차장이 신청한 구속적부심을 기각했다.
그러나 김관진(68)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64) 전 실장의 구속적부심 신청은 인용해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비슷한 혐의로 구속된 이들에 대해 다른 판결이 나왔다는 게 쟁점인 데 상당수 법조인은 법원의 판단을 선뜻 동의하지 않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신광렬 형사수석부장)는 지난달 30일 밤 이 전 차장의 구속적부심 신청을 기각했다. '구속적부심'이란 피의자의 구속이 합당한지 여부를 법원이 다시 판단하는 절차이다. 국민 누구나 수사기관으로부터 구속을 당하면 관할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신광렬 형사수석부장)는 이종명(59)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신청한 구속적부 심사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
재판부는 "기존 구속영장 발부에 따른 구속이 적법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전 차장의 구속적부심을 담당했던 신 부장판사는 김 전 국방부 장관과 임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신청한 구속적부심은 인용(석방 결정)한 바 있다.
문제는 비슷한 혐의를 받는 이들에 대한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법조계 관계자들 사이 논란이 일었다.
이 전 차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국정원 심리전단과 연계된 사이버 외곽팀의 온·오프라인 불법 정치관여 활동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활동비 명목으로 외곽팀장 등에게 수백차례에 걸쳐 국정원 예산 수십억원 상당을 지급해 국고를 손실한 혐의도 있다.
김 전 장관은 연제욱(58) 전 국군 사이버사령관 등에게 정부를 지지하고 야권은 비난하는 사이버 정치관여 활동을 지시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를 받고 있다. 또한 2012년 7월 사이버 정치관여 활동에 추가 투입할 군무원(사이버사 503심리전단 요원)을 친정부 성향으로 선발하도록 신원조사 기준을 상향하고,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토록 조치한 직권남용 혐의도 받는다.
임 전 실장은 2011~2013년 사이버사를 지휘하면서 김 전 장관 등과 공모해 정치관여 활동에 가담한 혐의(군형법상 정치관여)로 구속됐다. 더불어 연 전 사령관으로부터 매달 100만 원씩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신광렬 형사수석부장)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위법한 지시 및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변소 내용 등에 비춰볼 때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면서 석방했다. |
하지만 신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밤 "김 전 장관은 위법한 지시 및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변소 내용 등에 비춰볼 때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면서 석방했다.
임 전 실장에 대해서는 "일부 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현재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거나 증인 등 사건 관계인에게 위해를 가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증금 1000만 원 납부 조건부로 풀어줬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법원의 김 전 장관 석방 결정 1시간 40분 만에 입장자료를 냈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김 전 장관은 군 사이버 활동 결과를 보고받고 지시한 사실, 2012년 선거에 대비해 친정부 성향 군무원을 확충하고 4월 총선 관여 활동에 대해 보고받고 지시한 사실 등을 시인하고 있다. 관련자들도 보고하고 지시받은 사실을 진술하는 등 김 전 장관의 혐의 소명은 충분하다"고 일갈했다.
검찰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석방한 재판부 결정에 반발하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자료를 냈다. /더팩트DB |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심하게는 여론을 우려해 풀어준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속적부심은 영장을 청구할 당시를 기준으로 구속 사유가 정당한지를 따지는 것이다"며 "본안 재판부가 아닌 이가 피의자의 유무죄까지 따지는 것은 권한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도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전 장관의 경우 계속해서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라며 "사실상 유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이렇게 풀어주는 것은…"이라고 씁쓸한 심정을 내비쳤다. 이밖에 다른 법조계 관계자들도 "모르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다만 일각에선 검찰의 '구속편의주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통상적으로 편의를 위해 구속수사를 관례처럼 해왔다"며 "법원이 피의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을 고려해 이같은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자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 조모 씨의 구속적부심 인용을 제시했다.
조 씨의 경우 지난 10월 13일 스스로 조사를 받으러 검찰에 출석했다가 14일 새벽 긴급체포됐다. 이후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다음 날 영장심사에서 구속됐다. 또 긴급체포되기 전 조 씨는 대부분 범행을 자백하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수사 기관의 효율성을 위해서 긴급체포 후 구속하는 것을 관행적으로 해왔다. 이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구속편의주의적인 관행에 제동이 걸려야 한다고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