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세월호 유골 은폐 논란, 장(長)과 '실무자들'
입력: 2017.11.27 04:00 / 수정: 2017.11.27 04:00

최근 세월호 유골 은폐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최근 세월호 유골 은폐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인재(人災)'. 사람이 일으키는 재난을 천재에 상대해 이르는 말이다. 3년 7개월 전, '세월호 참사'가 그랬다. 박근혜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빚어낸 재앙이었다. 그날 이후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랜 시간 고통을 견뎌왔고, 새 정부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엔 또다시 대못이 박혔다.

"뼈 한 조각이라도 따뜻한 곳에 보내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수색 요구는 무리라고 결론 내렸다. 이제는 혈육을 가슴에 묻고 내려놓겠다."

지난 18일,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영결식이 열렸다. 유가족들은 애끊는 심정을 토하며, 전남 목포신항을 떠났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1313일 만이었다. 힘든 결정을 내린 데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의지를 밝혀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하지만 사흘 뒤, 유가족들은 청천벽력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영결식 전날인 17일 해양수산부 현장수습본부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손목뼈 한 점을 발견했다. 그러나 김현태 전 세월호 현장수습 부본부장과 이철조 전 본부장 등 일부 간부들은 수장인 김영춘 해수부 장관과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김 장관은 이 사실을 사흘 뒤인 20일에야 보고받고 유가족에게 알리라고 지시했으나 이마저도 이행되지 않았다. 유가족은 21일에야 유골 발견 소식을 접했다. 이미 장례를 치른 뒤였다.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영결식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1313일 만인 지난 18일 열렸다. /더팩트 DB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영결식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1313일 만인 지난 18일 열렸다. /더팩트 DB

'지연 보고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사람은 김 전 부본부장(이하 보직 해임)이다. 현장 책임자였던 그는 세월호 유골을 발견하고도 이 전 본부장과 사전 논의한 뒤 비공개 지시를 한 것으로 지난 23일 확인됐다. 이에 대해 김 전 부본장은 "유가족들에게 희망고문을 하기 싫었다"고 해명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자의적 판단으로 '보고 누락'을 한 사실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단독 결정이 아니라 해수부 '윗선'과 협의를 거쳐 이뤄졌다는 점에서 파문은 더 커졌다.

'세월호 유골 은폐 논란'에서 드러난 중요한 대목은 '공직 사회'가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지난 24일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아직은 대통령 한 사람만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조직 문화도 같이 바뀌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로 규정한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그대로 있고, 그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즉, 해수부 내의 인적 개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권 초기 정부조직개편에 대해 일부 공무원들은 "조직을 뗐다 붙였다 하고, 장(長)만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김 전 부본부장은 지난달 세월호 참사 유족 및 시민단체들이 발표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 조사 방해세력, 명단에 포함돼 있다. 그의 직속 상관인 이 전 본부장도 마찬가지다.

김 장관의 '변'에서도 이 같은 맥락이 읽힌다. 그는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월호 유골 은폐 파문과 관련한 브리핑을 열어 "지시를 실무진이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확인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역시 '실무진'에 포커스를 맞추며 공직기강 개혁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해당 공무원이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 출범'과 재조사 등 국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탓에 은폐했을 거란 시각이다.

세월호 유골 은폐 의혹을 받는 이철조 세월호후혹대책추진단장(왼쪽)과 김현태 부단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이새롬 기자
세월호 유골 은폐 의혹을 받는 이철조 세월호후혹대책추진단장(왼쪽)과 김현태 부단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이새롬 기자

'세월호 변호사'로 불리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cpbc 카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계기로 해수부 내에 여전히 남아있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구태, 이런 것들을 좀 걷어낼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반대로 야권에선 김 장관의 '조직 장악력'과 '무능'을 문제삼는다. 물론 한 조직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장(長)'이 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이치다. '사퇴 압박'을 받는 김 장관은 지난 24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우선 공직사회 내부를 철저히 다잡는 작업에 조속히 착수하고, 또 다른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때 가서 다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23일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공직사회 곳곳에 안일하고 무책임한 풍조가 배어 있다는 통렬한 경고"라고 했다. 이 같은 자성은 전임과 현 정부, 수장과 실무자 모두에 해당될 것이다. 모든 국정 현안 가운데 '사람 중심'과 '개혁'을 내세워온 문 대통령, 결국 답도 여기에 있다. 배는 선장 혼자 움직일 수 없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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