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이희진 전 신고리 공론화위원 "무산 위기 있었다"
입력: 2017.11.20 04:00 / 수정: 2017.11.20 10:24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은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공론화 결과도 좋지만 과정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문병희 기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은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공론화 결과도 좋지만 과정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문병희 기자

[더팩트 | 강남=오경희 기자] '89일', 그 시간은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모델로 평가 받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의 실상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출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3개월여 동안 공론화위원회 위원(갈등관리 분야)이자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의 회상이다.

공론화위(7월 24일 출범)는 20일로 해산한 지 한 달을 맞았다.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 뒤 정적처럼 이 전 위원은 당시만 해도 "(지쳤고, 또 무게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워낙 사회적 관심사가 컸고, 갈등이 컸던 터라 그는 지금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김지형 전 공론화위원장을 비롯해 8명 공론화 위원들과 이해관계자(한국원자력산업 측과 원자력 백지화 시민행동), 시민참여단 471명 등이 함께한 공론화는 '숙의(熟議) 민주주의'란 '빛'을 발했지만, 이면엔 '위기의 그림자'도 여러 번 있었다.

그 위기는 내·외부적으로 작용했다. 이 전 위원은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았지만, 처음부터 공론화 자체에 대한 개념에 대한 이해, 공론화 의제 등 전체적으로 사전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외부적으로도 찬·반 갈등 프레임과 공론화 과정에 대한 불신 등 공론화를 진행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우려와 갈등 속에도 공론화 결과는 사회적 수용성을 높였다.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는 '건설재개(59.5%)'로 났지만, 중단 측은 이를 수용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 모델' 확대 검토 방침을 밝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고리 공론화 결과에 앞서 '과정'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실에서 이 전 위원을 만났다.

◆ 잘못 꿴 첫 단추…"설계부터 험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오는 20일이면 공론화위가 해산한 지 한 달 째인데, 당시 김지형 위원장이나 위원들이 '말'을 많이 아꼈어요. 지금은 할 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당시 저나 위원들이나 이해관계자 등 당사자들 모두 엄청 고생을 많이 했어요. 끝나고 나니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하기 싫더라고요. 너무 지쳤거든요. 위원들은 '갈등해결 조정자'로서 저희가 설계를 할 때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실은 첫 설계부터 험난했어요. '건설중단과 재개' 그것만 두고 결정을 하라는 건데, 지금도 정치권에선 저희 보고 왜 탈원전을 이야기해서 월권을 했다고 얘기하잖아요.

'건설중단과 재개'만으로는 사회적 합의가 될 수 없어요. 그럴거라면 찬반 투표나 국민투표를 하면 깔끔하게 끝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라는 건 모순인거죠. 예를 들어 법정의 소수 시민배심원단처럼 운영해서 8대2로 나온다고 가정했을 경우, 나머지 2는 어떡하려고요. 그래서 사회적 수용성을 가질 방법을 찾아보자, 절차적 공정성을 가진 제대로된 공론조사를 하겠다 얘기를 한거죠.

-공론화 주제부터가 적합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원래 공론화라는 건 어떤 정책을 진행하기 전에 방향성을 가늠하거나, 사전에 그 의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진행 과정에서 보완하는 거에요. 즉 갈등이 일어날 걸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예방적 차원이죠. 그런데 신고리 같은 경우 재개를 하고 있었던 건데 (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이지만 중단하겠다고 방향이 결정된거잖아요. 그러고 나서 '중단/재개'를 물어보니 (갈등이 이미 초래된 상황에서) 공론화 주제로 적합하지 않았던 거죠.

◆ "3개월 내 끝내라…3~4번의 위기"

이희진 전 위원은 공론화 3개월 동안 여러 번 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문병희 기자
이희진 전 위원은 공론화 3개월 동안 여러 번 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문병희 기자

-그래서 3개월 이란 시간은 더 짧았을 것 같은데요.

사전준비가 안됐으니 위원들조차 공론조사하면서 정말 어렵더라고요. '원전'이란 주제 자체도 어려운데, 진행은 해야하고, 우리나라는 공론조사를 제대로 한 적도 없었고요. 집을 짓는데 어디에 지을지부터 시작해서 설계하고 착공하고 공사하고 인테리어하고 순차적으로 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했어요.

-(농담이지만) 그러다 부실공사 나는 건 아닌가요?

(웃음) 그럴수도 있겠죠? 공론화 전례도 없고 외국 사례를 벤치마킹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맞지도 않고 기간도 짧고 기간은 짧은데 그냥 주어졌어요. 정부가 공론화하는 데 큰 예산(46억 원)을 들이고, 공론화 기간(3개월) 동안 원전 중단 비용이 1000억 원이라고 한수원에서 얘기했잖아요. 그래서 위원들도 밤낮없이 출근하고 회의하고 밤에 또 일 터지면 새벽 1~2시인데도 비상이고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워낙 사회적 관심사가 컸고, 당사자 간 이해관계도 달라서 위기도 여러 번 있었을 것 같은데.

저도 그렇고 (김지형) 위원장님도 밤에 잠을 못 잤어요. 날밤 샌 적이 많았어요. 이해관계자 소통협의회를 끌고 가는 데 3~4번 위기가 있었어요. 공론화가 안될 뻔(했어요)…. 이해관계자 측에서 공론화 공정성 문제 제기를 하며 보이콧도 했었죠. 특히 지난달 13일∼14일 계성원에서 열린 '2박3일 종합토론회'가 핵심이었어요. 그 안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진행됐을 것 같죠? 저는 양측 당사자들을 설득하느라 실랑이를 벌였어요.

◆ 건설재개 vs 중단, '간극'을 좁혀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브리핑룸으로 향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브리핑룸으로 향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첨예한 갈등에도, 공론화 결과가 '건설재개'로 발표됐을 때, 중단 측에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네 맞아요. 저희가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노렸던 대목이에요. 공론화 의제부터 '찬반'으로 갈린 상황에서 결과에 대해 양측이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고민이었죠. 어느 쪽이든 공론화 결과를 못 받아들이겠다고 그러지 않겠어요. 그래서 양측에 '혹시 재개된다면, 중단된다면, 무엇을 더 해줬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어요. 재개 쪽이야 원하는 결론을 얻었으니 저희가 공개하지 않은 것이고, 중단 측에서 에너지 정책이라든가 원전 방향성에 대한 부분을 얘기했고, 공론조사 결과에서도 '전체 원전에 대해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차범위를 벗어나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했기 때문에 (공개)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원전 축소' 문항을 넣은 것이 일각에선 월권이란 주장도 제기 됐는데.

이해관계자 양측의 '가치' 자체가 달랐어요. 재개 쪽은 신고리 5·6호기에 한정해서 보는 쪽이었고, 중단 쪽은 원자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고요. 그러나 사실상 원자력과 무관하게 떼어놓을 수 없잖아요. 연관성이 있고요. 그 문항 자체는 1차 설문조사에도 계속 들어갔던 거고 일주일 지나서 배심원단 선정하고 설문지 공개를 했을 때 아무 이야기 없었어요. 4차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나서야 얘기들을 하시더라고요.

◆ "시민참여형 공론화"란 한 이유

이희진 전 위원은 시민참여단의 적극적인 참여를 주목했다./문병희 기자
이희진 전 위원은 시민참여단의 적극적인 참여를 주목했다./문병희 기자

-이번 공론화에서 빛을 발한 대목은 '시민참여단'인데요. 특히 모두 네 차례 조사를 거치는 동안 부동층은 줄고 '건설재개' 비율이 높아진 점이 눈길을 끌었는데.

이번 신고리 공론화를 저희는 '시민참여형 공론화'라고 명명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다른 공론화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이죠. 가령 오리엔테이션인 경우 전 세계 공론화 과정엔 없는 거에요. 숙의과정을 설계할 때 이 부분을 고려했죠. 무엇을 노렸냐면, 저희도 마찬가지지만 시민참여단 등도 공론화가 뭔지 아무도 몰랐어요. 이 모르는 것을 2박3일 토론회를 거치고 나서 결정하라고 하면 시간이 모자라잖아요.

진짜 2박 3일동안도 속칭 빡센 스케줄이었어요. 시민참여단 471분도 의욕과 관심이 높았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대한 고민과 참여가 컸어요. 시민참여단들도 공론화 과정에서 '공정하다고 느꼈느냐'는 데 대해 80~85% 답했고, 수용도도 95%로, 다른 결과가 나와도 수용하겠다고 했어요.

◆ "공론화가 만능은 아냐…후속 보완 필요"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결과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잖아요. 문재인 정부에서 공론화 모델을 확대 검토하는 데 대해선 어덯게 보시는지.

좋은 평가가 많은 것은 사실이죠.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리 다 공론화하자', 이런 얘기 너무 많이 하잖아요. 지자체도 국회도 각 부처도 그렇고요. 그런데 신고리 공론화인 경우 모든 게 출발점에 있었어요. 공론화는 어떻게 진행하고, 어떤 방식으로 가고 가이드라도 있으면 좋았을 거에요.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해서 가는 공론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만능이냐고 묻는다면 만능은 아닌 것 같아요. 정부에선 표준 매뉴얼을 만드는 등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론화 때마다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서 하는 방식은 동의하시나요.

이희진 전 위원을 비롯한 공론화 위원들이 지난달 20일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남윤호 기자
이희진 전 위원을 비롯한 공론화 위원들이 지난달 20일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남윤호 기자

임시적 구성은 (개인적으로) 부정적이에요. 프랑스 같은 경우는 국가공공토론위원회 기구를 상설화해서 정책 진행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반영하게끔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인권위원회 격과 같은 상설 기구를 만들어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예산지원을 하고 실행도 하고 정책에도 참여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해요. 위원회를 임시로 구성해서 가는 건 후속조치도 끊기고, 노하우랄지 연속성이 떨어지잖아요.

또 한가지 보완할 부분은 갈등 부분은 당사자가 누구냐가 중요해요. 원자력산업 쪽 시민단체, 환경단체 쪽 규정했는데, 지역 주민들은 빠졌어요. 한수원 노조에서도 소송해서, 소송도 당해서 기각됐지만…. 신고리 공론화위가 국무총리 훈령으로 만들어지긴 했으나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안돼 있어요. 앞으로 사회적 공론화를 한다고 하면 디테일하게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걸 공론화하고, 방식, 누가 주체, 기간은 어떻게 하고, 어떤 의제 가져가서 할지 말이에요.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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