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기 모면'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사고, '매뉴얼' 외면
입력: 2017.10.30 11:23 / 수정: 2017.10.30 11:39
지난 25일 오후 6시 50분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당산역(합정 방면) 승강장 안전문이 고장나 약 1시간 30분 동안 사고 위험에 노출됐다. 안전문이 열린 상태에서 열차가 승강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독자 제공
지난 25일 오후 6시 50분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당산역(합정 방면) 승강장 안전문이 고장나 약 1시간 30분 동안 사고 위험에 노출됐다. 안전문이 열린 상태에서 열차가 승강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독자 제공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지난 25일 오후 혼잡 시간대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합정 방면) 스크린도어(안전문) 고장 사고와 관련, 서울교통공사가 사고 후 대응 과정에서 기본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더팩트> 추가 취재결과 확인됐다.

<더팩트>는 지난 27일 지하철 2호선 당산역에서 혼잡 시간대에 스크린도어 고장 사고가 발생, 1시간 30여분 동안 시민들이 사고 위험에 노출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당시 지하철 운행 전반을 책임지는 서울교통공사 측은 해당 사고에 대해 상급 기관인 서울시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사고 은폐 시도 의혹도 일었다.

◆'1시간 내 기술직원 출동' 규정 어겨…교통공사 "중대 장애 아니라서"

30일 <더팩트> 추가 취재 결과, 서울교통공사는 사고 발생시 준수해야 하는 기본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은 것으로 또 다시 드러났다. 지하철 고장 처리 매뉴얼에는 고장 처리를 위한 기술직원이 '1시간 이내' 출동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기술직원이 출동한 것은 사고 발생 1시간 30여분이 지난 뒤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지난해 구의역 사고 후 서울특별시의회 김상훈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서울교통공사와 은성PSD가 맺은 과업지시서 18조(고장처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시서에 따르면 '계약 상대자는 고장 및 모든 장애시 신고 접수 후 1시간 이내에 출동 완료해 즉시 처리할 수 있는 경우 즉시 처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최대 24시간 이내에 처리가 완료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고장나면 1시간 안에 기술직원이 출동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5일 당산역 스크린도어 고장 사고의 경우 같은 날 오후 6시 50분께부터 개방된 채 방치돼 있던 스크린도어가 발견됐고, 이에 대한 조치는 같은 날 오후 8시 5분께 신대방 승강장 안전문 관리소 기술직원이 출동해 8시 15분이 되어서야 이뤄졌다. 약 1시간 30분 만에 조치가 최종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안전문이 한 역에만 64개가 있고, 당시 당산역 스크린도어 고장은 중대한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됐다"고 해명했다. 1시간 이상 스크린도어가 고장이었지만 '중대 장애'가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했다는 답변이었다. 이번 사고가 '인재(人災)'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6월 김상훈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서울교통공사와 은성PSD의 PSD유지보수 과업지시서에는 고장처리에 대한 규정이 포함됐다./채널A 뉴스 캡처
지난해 6월 김상훈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서울교통공사와 은성PSD의 'PSD유지보수 과업지시서'에는 고장처리에 대한 규정이 포함됐다./채널A 뉴스 캡처

◆안전요원 배치 규정도 무시…구의역 사고 원인 '센서 고장' 가능성 높아

서울교통공사는 스크린도어 고장 사고 시 배치해야 하는 안전요원의 규모도 무시했다. 지난해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2일 '승강장 안전문 안전 보강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한 대책을 살펴보면 서울시는 문제가 있는 승강장 안전문 전면 교체와 함께 취약 역사로 꼽힌 9곳에 출근시간대 안전요원을 4명씩 배치해 안전관리를 강화한다고 했다. 또 '서울시 뉴딜일자리'를 활용, 선발한 단시간근로자 556명을 지하철 1~8호선 278개 역사에 2명씩 안전요원으로 배치해 사고를 예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당산역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 접수 후 현장에 배치된 안전요원은 단 한 명이었다. 당시 혼잡 시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명의 안전요원이 승강장 내 시민들을 안전하게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게 현장 시민들의 지적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안전요원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역무원들은 다른 안전업무와 함께 스크린도어 문제까지 감시해야 한다"며 "한 명이 투입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 파악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갈팡질팡하는 행태도 문제다. 서울교통공사는 <더팩트> 취재 전까지 정확한 고장 시간과 사고 원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듭된 취재에 '센서 고장'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지난해 구의역과 김포공항역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도 스크린도어 센서 고장이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스크린도어 센서가 고장나면 자동적으로 경보음이 울리는 시스템으로 알고 있다"며 "사고 당시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면 센서 고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25일 오후 6시50분쯤 승강장을 순회하던 부역장이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발견해 고장 신고가 이뤄졌다"며 정확한 사고 시간도 파악하지 못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스크린도어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더팩트 DB
지하철 스크린도어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스크린도어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더팩트 DB

◆교통공사 '사건 은폐 의혹'…서울시 '책임 떠넘기기'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사고 처리 과정도 논란이다. 서울교통공사는 해당 사건에 대해 서울시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고, 서울시는 "지하철과 관련된 모든 책임은 서울교통공사에 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서다.

서울교통공사는 '보고 누락'에 대해 "출입문 하나만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경미한 장애로 판단했다"며 "역무원이 즉각 배치돼 역내에서 처리했다"고 말했다.

당초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답했던 서울시 담당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니 '10분 내에 조치가 완료된 경미한 사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산역 스크린도어 고장은 10분 이내 조치가 완료되기는커녕 최소 1시간 25분가량 개문된 상태로 있었다. 뒤늦게 이뤄진 보고조차 '허위 보고'였던 것이다.

서울시는 '허위 보고'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서울교통공사에 있다. 실무는 서울교통공사에서 하고, 서울시에 보고가 이뤄지면 큰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게다가 서울시는 지하철 운영의 관리감독 최종 책임자인 데도, 스크린도어 고장과 같은 사고 발생에 대응하는 '안전 매뉴얼'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안전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는지 묻자, "안전 매뉴얼은 갖고 있을 수가 없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이어 "만약 사고가 나면 안전처에서 조사를 나간다. 서울교통공사에서 갖고 있는 매뉴얼을 기준으로 조사한다"고 덧붙였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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