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거식증 위험성' 해외에선 '마른모델 퇴출' 바람…국내는?
입력: 2017.10.24 04:00 / 수정: 2017.10.24 11:07
2007년 이탈리아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제작한 거식증 반대 캠페인 광고. 사진 속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이사벨 카로의 모습이 담겼다. 이 광고는 신문과 광고판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거식증의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NO. ANOREXIA 포스터
2007년 이탈리아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제작한 '거식증 반대' 캠페인 광고. 사진 속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이사벨 카로의 모습이 담겼다. 이 광고는 신문과 광고판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거식증의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NO. ANOREXIA' 포스터

[더팩트 | 김소희 기자] #. 지난 5월 14일 덴마크 출신의 20세 모델 올리케 호이어는 일본에서 열리는 '2018년 루이비통 크루즈' 쇼에 '살이 쪘다'는 이유로 서지 못했다. 프랑스 에이전트 측은 올리케 호이어에 "위축한 위와 비만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물만 섭취해라"라는 말과 함께 출연 취소를 통보했다. 올리케 호이어는 178㎝의 장신이지만 허리 둘레는 24인치에 불과한 '마른 모델'이었다.

#. 2010년 11월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가 28세의 나이로 숨졌다. 사망 당시 이사벨 카로의 키는 165㎝였지만 몸무게는 31㎏ 밖에 나가지 않았다. 이사벨 카로는 2007년 프랑스에서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통해 모델 업계의 현주소를 알렸다. 13살 때부터 거식증을 앓아온 이사벨 카로가 모델 에이전시로부터 들은 건 "살을 더 빼라"는 말이었다. 이사벨 카로의 죽음으로 모델업계의 거식증과 정신질환 등 각종 질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케링그룹, 모델 건강보호 위한 '모델 헌장' 발표

지난 9월 6일 세계 최대 명품기업 두 곳이 패션 모델들의 건강 보호를 위한 공동 헌장인 '모델 헌장'을 들고 나왔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케링그룹은 "모델들은 6개월 이내 키와 몸무게, 비만도 등이 적힌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몸매 보정 사진을 낼 땐 '보정된 사진'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두 기업은 프랑스 기준으로 34사이즈(한국기준 33·XS) 미만 모델을 기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해당 기업은 모델들에게 6개월 이내 키와 몸무게, 비만도 등이 적힌 건강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몸매보정 사진을 낼 때 보정된 사진임을 명시하도록 했다. 또 모델들이 언제든지 정신의학 전문의나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성명서에서 "전체 패션 사업이 우리의 방침에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패션 모델들의 근로조건을 변화시키겠다"면서 "모든 여성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은 케링그룹의 우선순위다. 패션모델들의 근로조건을 개선시키겠다"고 했다.

LVMH 산하에 있는 명품 브랜드로는 루이비통·디오르·겐조·펜디·지방시·셀린느 등이 있다. 두 그룹은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미국 뉴욕의 런웨이에서 자사가 고용하는 모델에게도 일괄적으로 '모델 헌장'을 적용하기로 했다.

살이 쪘다는 이유로 패션쇼에 서지 못한 덴마크 모델 올리케 호이어. /올리케 호이어 인스타그램
'살이 쪘다'는 이유로 패션쇼에 서지 못한 덴마크 모델 올리케 호이어. /올리케 호이어 인스타그램

프랑스 정부는 지난 5월 지나치게 마른 모델의 패션업계 활동을 금지했다. 이를 지키지 않는 모델 에이전시나 브랜드, 디자이너 의상실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해당 법안은 거식증을 앓다 사망한 이사벨 카로의 죽음이 계기가 돼 발의됐다. 프랑스에는 약 3~4만 명의 거식증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마른 모델' 패션업계 활동 금지법안 시행…스페인·이스라엘 등 유럽 각국 동참

마리솔 투렌 프랑스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린 아이들에게 비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신체 이미지를 노출하게 되면 자기 비하와 자존감 저하 등을 유발하며,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법 시행 의도를 밝혔다.

이 법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모델들은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 지수인 BMI가 포함된 건강진단서를 2년마다 제출해야 한다. 또 모델의 원본 사진에 키를 늘리거나 허리를 줄이는 등 체형 보정이 가해졌을 경우 사진에 '수정된 사진(Photographie retouchee)'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 법을 어기면 최대 6개월의 징역과 최고 7만5000유로(약 96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이미 마른 모델 기용을 금지하자는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10년 전부터 마른 모델이 여성들에게 그릇된 미의식을 심어줘 일반인들의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에 스페인·이스라엘·영국 등 각국에서 모델들의 건강권과 인권을 위한 각종 규제와 법규들이 마련됐다.

스페인은 2007년 BMI 18.5 이하의 모델을 퇴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모델들의 '건강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이스라엘은 2013년 BMI 18.5 미만 모델의 광고 출연을 금지했다. 덴마크 역시 모델들에게 건강검진을 반드시 받게 하고 있다.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는 2015년 입생로랑의 여름 광고와 2016년 구찌의 겨울 광고에 '앙상한 모델이 나온다'는 이유로 방영을 금지하거나 경고처리했다. ASA는 구찌 광고에 대해 "상체를 살짝 숙인 자세 때문에 모델의 허리가 지나치게 가늘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입생로랑 광고에 대해서는 "종아리와 허벅지 굵기가 똑같은 저체중 모델을 이용한 광고는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5월 마른모델의 패션업계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이 법안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공론화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179㎝, 47㎏이라고 고백한 모델 최소라. /최소라 인스타그램
프랑스 정부는 지난 5월 마른모델의 패션업계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이 법안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공론화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179㎝, 47㎏"이라고 고백한 모델 최소라. /최소라 인스타그램

◆국내 섭식장애 환자, 7년 새 2000명가량 늘어

우리나라 모델들도 다이어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를 거치며 맹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모델 최소라(25)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다이어트를 어떻게 하는지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제 키와 몸무게는 179㎝, 47㎏입니다. 저는 패션위크 때 정말 단 한 끼도 먹지 않습니다. 한 번 패션위크가 열리면 4주 넘게 하죠. 그러면 저는 4주 동안 물만 마십니다. 정말 가끔 너무 힘들 때 바나나 반 개 정도 먹습니다. 이 기간에는 면역력이 약해지고 온몸에 붉은 반점 같은 게 생겨나요. 몸도 엄청 건조해지고요. 그리고 스트레스성 장염이 생기고 입안 곳곳에 상처가 납니다. 힘도 생기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쓰러집니다."

지난해 8월 아이돌 그룹 오마이걸의 멤버 신혜진(23·예명 진이) 씨는 거식증 증세를 이유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오마이걸 소속사 WM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 따르면 데뷔 당시 키 159㎝, 몸무게 40㎏ 후반대였던 신 씨는 '통통하다'는 악플에 스트레스를 받아 무작정 굶는 등의 방법으로 다이어트했다. 이후 38㎏까지 몸무게가 빠지면서 거식증 증세를 호소했다.

최 씨와 신 씨처럼 단기간에 살을 빼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진행할 경우 오히려 건강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수많은 현대인들이 무리한 다이어트의 대표적 폐해인 거식증, 폭식증과 같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섭식장애는 식이 행동과 관련된 이상 행동과 생각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신경성 식욕 항진증(폭식증)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섭식장애로 치료를 받은 전체 환자 수는 1만 2468명으로 나타났다. 이중 81%인 1만44명이 여성이었고, 20~29세 여성은 2384명이었다. 섭식장애 환자는 2008년 1만 940명에서 2012년 7년새 2000명 가까이 증가했다.

남성보다 여성이 4배 이상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감을 경험했다. 여성 섭식장애 환자의 증가폭은 남성 환자에 비해 2배가 넘는다. 특히, "예뻐야 한다. 마른 몸을 가져야 한다"는 등 외모 강박증에 시달리는 10~30대에서 섭식장애 수치가 매우 높았다. 전체 환자 중 49.2%에 달했다.

◆"섭식장애는 사회문제"…정부·국회가 나서야

섭식장애는 사회문제이며,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마른 체형을 선호하게 만들었고 잘못된 식이습관을 하도록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섭식장애를 방치하면 만성적인 질병을 얻거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사회문제라는 인식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더팩트>에 "미디어는 현실과 너무 떨어진 기준을 가지고 여성의 몸을 재단하고 '마르고 긴 몸이 돼야 한다'고 강요한다"며 "패션업계를 비롯한 사회는 다양한 체형의 여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여성의 인권이나 노동권, 건강권은 확보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정부나 국회의 역할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의 수가 여전히 매년 1만 명 이상인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하지만 유럽에선 '마른 모델 퇴출' 분위기와 각종 법안이 마련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정부와 국회는 조용하기만 하다"고 꼬집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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