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소장 공백' 헌재, 국감 정상화 가능할까?
입력: 2017.10.13 06:15 / 수정: 2017.10.13 06:15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255일째 수장 공백 상태이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박한철 전 소장 퇴임 이후 255일째 수장 공백 상태이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헌법재판소=변동진 기자]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의 퇴임 이후 헌재 소장 자리가 255일째 공석인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김이수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野)권은 헌재 국정감사 보이콧을 고려하고 있다. 김 권한대행 체제로 가겠다는 건 '헌법과 국회를 부인하는 것이고, 현(現)정부 코드에 맞춰 헌재를 운영하겠다는 속내'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게다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 민감한 사건과 관련 '8인 재판관 체제'로 처리하긴 어려워 헌재 관계자들은 "하루 빨리 9인 체제를 갖춰 기관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새롬 기자
청와대는 지난 10일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새롬 기자

12일 법조와 정계에 따르면 야 3당은 청와대의 김 권한대행 체제 유지 방침에 대해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반발하며 13일 예정된 '헌재 국감 보이콧' 여부에 대해 논의한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지난달 18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간담회에서 재판관 전원이 김이수 재판관 권한대행직 계속수행에 동의했고, 이에 청와대는 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애초 문 대통령은 5월 19일 김 권한대행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인준안 처리가 장기간 계류됐고, 결국 지난달 11일에 찬성 2표 부족으로 인준안이 부결됐다.

국민의당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은 13일 예정된 헌법재판소 국정감사 보이콧 여부에 대해 논의한다. 사진은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 / 남윤호 기자
국민의당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은 13일 예정된 헌법재판소 국정감사 보이콧 여부에 대해 논의한다. 사진은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 / 남윤호 기자

청와대의 발표 다음 날인 11일 법사위 소속 국민의당 박지원‧이용주 의원은 성명을 내고 "헌법이 부여한 정당한 권한에 따라 국회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 처리했다"며 "청와대와 헌재가 김 권한대행 체제로 가겠다는 건 헌법을 부정하고 국회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헌재가 스스로 정권의 눈치를 보며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면서 "존재 의의를 상실한 헌재에 대한 국정 감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헌재 국감 보이콧을 시사했다. 특히 두 의원의 이번 성명에는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소속 법사위원들도 같은 날 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의사를 무시하고 대행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헌재소장 임명을 미루는 것은 헌법이 정한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헌재를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김 권한대행을 통해 헌재를 자신들의 코드에 맞게 운영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힐난했다. 또 바른정당 법사위 간사인 오신환 의원은 언론과의 인텁에서 "헌재소장 지명 거부가 문재인 정부에 맞는 코드인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 또 헌재를 대통령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국회가 입법 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기능이다. 예컨대 각 기관의 예산 낭비 여부를 비롯해 사업 진행 현황, 공정성 등을 국민 앞에서 검사받는 것이다.

법최고기관이라는 헌재의 역할을 감안한다면 '국감 보이콧 위기'는 매우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상반기에만 무려 130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되는 등 기관의 위상이 최고조이지만, 차기 대법원장이 정해진 대법원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선 '헌재 홀대론'까지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기관 정사화를 위해 하루 빨리 9인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팩트DB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기관 정사화를 위해 하루 빨리 9인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팩트DB

무엇보다 헌재는 '뜨거운 감자'인 양심적 병역거부와 한일 외교장관의 위안부 문제 합의 등 민감한 사건에 대해 처리해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으로 '9인 완전체'가 무너진 뒤 9개 월여 동안 정족수 문제로 주요사건 처리에 손을 놓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유정 변호사는 '주식 재테크'에 발목 잡혀 낙마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 헌재 관계자들은 "주요사건들을 처리하려면 소장 자리를 채우는 것보다 9인 체제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선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하고 위헌, 탄핵, 정당해산 등을 결정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8인 체제에선 의견이 5대 3으로 갈릴 경우 정족수 미달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헌법재판관을 3명은 국회, 3명은 대법원장, 3명은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돼 있다. 이는 민주적 정당성의 확보와 권력분립(삼권분립) 정신에 충실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며 "8인 체제에서 민감안 사건을 심판한다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헌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다"며 "청와대는 헌법질서 수호의 '최후의 보루'인 헌재의 기능 회복과 정상화를 위해 재판관 공석을 메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헌재가9인 체제가 되더라도 사건 처리 1순위로 꼽히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경우 연내 처리가 어려울 전망이다. 신임 헌법재판관 취임으로 재판부가 새롭게 꾸려지면 재심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bd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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