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곤의 세상토크] "바보야,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
입력: 2017.10.13 05:47 / 수정: 2017.10.13 06:56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에서 여야간 적폐청산과 정치보복프레임 충돌이 일면서 자칫 국감이 공회전이 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12일 법사위 국감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연장 쟁점을 두고 여야 의원간 설전이 오갔다./ 배정한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국정감사에서 여야간 '적폐청산'과 '정치보복'프레임 충돌이 일면서 자칫 국감이 공회전이 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12일 법사위 국감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연장 쟁점을 두고 여야 의원간 설전이 오갔다./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 '태백산맥'이 이념의 대립에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했다는 평가가 (작가)의도에 맞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작가 조정래는 이렇게 설명한다.

" '중립적'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객관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저는 양쪽 입장의 가운데에 섬으로써 또 하나의 입장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는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객관적 시각으로 양쪽의 모순, 문제점, 잘못 같은 것을 냉정하게 보고 비판하려고 한 것이 저의 태도였다."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의 한 대목이다. 작가는 그 어떤 정치의 종속물, 그 어떤 이념의 부속물이 되는 걸 거부했다.

'어떻게' 쓰는 것보다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작가의 시각으로 현 정국의 '적폐청산'과 '정치보복'공방을 바라본다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정치와 이념의 굴레에서 썩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서 불쑥 '태백산맥'을 끄집어낸 게 겸연스럽지만 그래도 이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으로 자위하고 싶다. '청산'과 '보복'의 프레임 충돌에서 사실를 바탕으로 진실을 확인하려는 민심의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한 오늘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20일간의 일정으로 12일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 돌입. 정부에는 값진 성찰의, 의원님들께는 보람찬 의정활동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SNS를 통해 '값지고 보람찬' 국감을 기대했다.

정부정책이 민생을 위해 수립되고 집행되고 있는지, 세금은 올바로 쓰였는지, 소외계층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없는지, 정치권의 음습한 뒷거래는 없는지 등 구부러진 것은 펴고 막힌 곳은 뚫으면서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게 국감이다. 국민을 위한 입법부의 정부 감시·비판의 마당이고 그 순기능적 역할이 막중하기에 국민들 눈길도 쏠린다. 국민들은 '국감스타'를 기다린다.

하지만 이번 국감이 본연의 기제가 작동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여야의 드잡이가 벌써부터 국민들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 단적으로 이번 국감이 더불어민주당의 '적폐청산'과 자유한국당의 '정치보복'프레임이 격돌하면서 소모적이고 혼탁한 정쟁터로 결국 소멸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깊어서다.

민주당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명령을 받들어 국감을 통해 적폐의 근원을 밝혀낼 것"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당은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의 다른 표현이다"며 맞선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며 누적된 비정상 관행의 일소를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량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및 제1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더팩트DB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며 누적된 비정상 관행의 일소를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량이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및 제1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더팩트DB

"적폐청산과 개혁은 사정이 아니라 권력기관과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누적되어 온 관행을 혁신해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누차 강조하지만 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문재인 정부는 과거지향적으로 가는 것 같다. 보수의 씨를 말리려고 한다"며 거의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대거리한다.

현재 여당에서 주로 거론하는 적폐들은 과거 보수정권 9년기간 중 자행된 국정원과 군의 불법선거 개입· 여론공작·방송장악·사자방(4대강,자원개발,방위산업비리 의혹)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발단이 된 국정농단 사건 등이다. 장기간 누적된 비정상적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뿌리뽑아야만 대한민국이 미래로 갈수 있다는 게 여권 의지다.

보수 야당은 반사적으로 "반대진영을 궤멸시키기 위한 정치보복이다"고 목청을 키운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권의 독단과 독선, 정치보복에 온몸으로 맞선다'며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기까지 했다. 이러다 보니 특정 혐의와 의혹으로 검찰조사를 받는 옛 보수정권 인사들은 누구처럼 "나는 정치보복을 받고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을까 싶다.

부부싸움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 원인이었다는 식의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국방부 국감에서 '공관병 갑질'논란 등으로 물의를 빚은 박찬주 육군대장을 "적폐청산의 희생양이다"고 두둔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공영방송 장악, 선거개입, 국정원 여론 조작 혐의 등의 최종 책임자로 자신이 지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이덕인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공영방송 장악, 선거개입, 국정원 여론 조작 혐의 등의 최종 책임자로 자신이 지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이덕인 기자

근래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의 적폐의혹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사람들의 '정치보복'주장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들의 주장대로 현 정권의 적폐청산 움직임이 정치보복이라면 보수 야당은 프레임 정치대신 정치보복 증거를 제시하면서 국민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현란하고 요란스런 정치언어는 거두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건강한 사회라면 적폐청산에 여야가 따로 없다. 미래지향적인 정치인이라면 잘못된 과거는 스스로 앞장서 정리해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잃어버린 질서와 흐트러진 공의의 회복은 정치보복이 될 수 없다는 게 상식적인 국민들 생각이다. "바보야,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고 본다. 국민들은 어느 정당이, 어느 의원이 해괴망측한 논리로 국감을 공회전시키고 재차 적폐를 쌓는지 기억해야 한다. 최소한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여야의 프레임 전쟁 속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사실과 진실를 확보하는 국민이 적폐를 털어낸다. 더불어 청와대 · 여당이 꼽는 적폐청산 대상의 적합성 여부도 '조정래 작가'의 객관적 시각으로 따져봄은 당연하다.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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