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화제의 판결] 한밤 중 길가는 여성 따라가도 속옷 입으면 무죄?
  • 김소희 기자
  • 입력: 2017.09.27 06:58 / 수정: 2018.03.06 11:52
속옷만 입은 채 길가는 여성을 따라간 남성이 공연음란죄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않아 무죄라고 판시했다. <해당 사진과 내용은 관계가 없음.>
속옷만 입은 채 길가는 여성을 따라간 남성이 '공연음란죄'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않아 무죄라고 판시했다. <해당 사진과 내용은 관계가 없음.>

법은 상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려워할 필요도, 거부감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더팩트>는 법조계에서 이슈로 떠오른 '특별한' 판결을 소개하는 [TF화제의 판결]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해당 판결이 화제가 된 사연을 비롯해 판결문을 알기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을 모르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이 코너를 통해 '법을 아는 사람'이 되길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지난 3월 22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수원의 한 모텔 앞. 속옷만 입은 40대 남성 A씨가 지나가는 20세 여성 B씨에게 접근했다. B씨의 근처에 다가간 A씨는 B씨를 빤히 쳐다보며 나란히 길을 걸었다. A씨는 또 다른 날 밤 11시 40분쯤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를 벗어 속옷과 스타킹만 입은 채 23세 여성 C씨에게도 다가갔다.

속옷만 입은 채 길 가는 여성들 옆을 따라 걷는 A씨. 이 남성은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됐다. A씨에겐 어떤 판결이 내렸을까.

수원지법 형사14단독 조서영 판사는 25일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체 노출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노출 부위나 방법 및 경위 등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면 음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즉, 재판부는 A씨가 두 차례 모두 상의를 착용한 상태였고, 하의를 벗은 채 피해자들을 따라 걸으며 쳐다봤지만 속옷을 분명히 입고 있었던 점을 기준으로 판시한 것이다.

또 A씨는 당시 속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신체 중요 부위를 노출하거나 성적 행위를 연상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아 여성들에게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고 재판부는 봤다. 따라서 '공연음란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남주 법률사무소 율도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더팩트>에 "기존 판례 경향에 따르면 신체 일부를 '직접적으로' 노출하면 공연음란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면서 "A씨 역시 신체를 노출하지 않고 속옷을 입고 여성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에 공연음란죄가 아닌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본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음란죄'로 기소됐지만,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판단된 것으로 보인 이번 판결. '공연음란죄'는 무엇이고, '경범죄처벌법 위반'은 무엇이길래 A씨는 무죄가 됐을까.

수원지법 형사14단독 조서영 판사는 25일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로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위반의 기준이 명확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S 자료화면 갈무리
수원지법 형사14단독 조서영 판사는 25일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로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위반'의 기준이 명확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S 자료화면
갈무리

먼저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위반'은 '타인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공공연히 행하여야 한다'는 점은 공통된다. 다만 경범죄처벌법은 '노출'만을 다루고, 성적 욕망이 있었는지 여부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공연음란죄'는 형법 제245조로 음란 행위가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따라 판단된다. 또 노출된 부위에 성기가 반드시 포함돼 있었는지도 따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속옷을 입었는지 여부, 성 행위를 연상시켰는지가 '공연음란죄'와 '겸범죄처벌법 위반'을 규정짓게 된다. 그러나 재판부 역시도 조항에 대해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어 일반 시민들이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위반'에 대해 구분짓기는 다소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공연음란죄'냐 '경범죄처벌법 위반'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던 판례가 종종 있었다.

다만 2004년 대법원이 '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위반'에 대해 내린 판결이 기준이 되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신체 노출 행위가 있더라도 그 일시와 장소, 노출 부위, 노출 방법·정도, 노출 동기·경위 등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그것이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인정되면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41호'에 해당된다"면서 "형법 제245조의 음란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 2016년 11월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놔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경우 경범죄처벌법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3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헌재는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은 것이나 사람의 신체 중 '가려야 할 곳'이 어딘지 의미가 불분명하고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은 사람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당시 헌재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헌재도 '위헌' 제청을 하면서 입법 방향에 대해 '성기', '속옷' 등 법조항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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