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국정원·KAI 잇단 영장 기각…법조계 시각은 이랬다
입력: 2017.09.22 13:43 / 수정: 2017.09.22 16:17
국정원 댓글조작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산비리 사건 연루자들의 구속영장이 잇달아 기각돼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하성용 전 KAI 대표. /더팩트DB
'국정원 댓글조작'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산비리' 사건 연루자들의 구속영장이 잇달아 기각돼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하성용 전 KAI 대표. /더팩트DB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변동진 기자] "민감한 사건의 경우 예측 가능한 일관된 판결이 나올 필요가 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산·경영비리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이 같이 지적했다. 검찰 측 역시 잇단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더팩트> 취재진에 "(요즘) 영장이 많이 기각돼서…"라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잇달아 기각되자 검찰과 법원은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KAI 방산·경영비리의 정점에 있는 하성용(66) 전 대표의 구속 여부에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기·횡령 등 10여 개의 혐의를 받는 하 전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과 법원이 서로 '맞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이용일 부장검사)는 지난 21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자본시장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배임, 업무방해 등 10여 개 혐의를 받는 하성용(66)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 전 대표는 재직(2013~2017년) 당시 협력업체 Y사 대표 위모 씨에게 다른 협력업체를 세우게 하고 이 회사 지분을 차명 보유한 혐의를 비롯해 고등훈련기 T-50, 경공격기 FA-50 등을 납품하면서 부품 원가를 수출용보다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100억 원대 이상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또한 각종 해외 사업과 관련해 수익을 회계기준에 맞지 않게 재무제표에 선반영하는 등 수천억 원대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고, 유력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 고위 간부 등의 청탁을 받고 부당하게 10여 명의 사원을 채용한 의혹도 있다.

검찰은 21일 오후 분식회계와 채용비리 등 10여 개 혐의를 받는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임세준 기자
검찰은 21일 오후 분식회계와 채용비리 등 10여 개 혐의를 받는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임세준 기자

사실상 KAI와 연관된 비리의 정점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선 검사는 하 전 대표의 구속 여부에 근심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더팩트>와 전화통화에서 "제가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영장이 워낙 많이 기각돼서…"라며 말 끝을 흐렸다. 다만 "사안이 중대하고, 이번 사건에 하 전 대표가 중심이라는 고려하면 구속여장이 발부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수사 일선에 있는 검사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최근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핵심 사건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구속영장이 잇달아 불발됐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채용비리 관련 혐의(업무방해 및 뇌물공여)를 받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지원본부장 이모(57)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씨의 구속영장 기각은 지난 8일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는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부정채용자 수를 11명에서 15명으로, 뇌물공여 혐의를 3건 추가하는 등 구속사유를 보강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는 공적영역으로 봐야 한다. 중요한 신뢰 인프라가 이렇게까지 무너졌는데 수사당국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의 내용, 피의자의 변소(변호를 위한 소명) 내용, 제출된 증거 자료 등에 비춰 업무방해 및 상품권 횡령의 책임 정도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뇌물공여 경위 및 양태, 주거 및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구속해야 할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또 다시 기각했다.

법원은 지난 8일 민간인 댓글부대 활동을 통해 여론 조작 활동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전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 관계자 2명과 13일 KAI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부하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업관리실장(상무보) 박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더팩트DB
법원은 지난 8일 민간인 댓글부대 활동을 통해 여론 조작 활동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전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 관계자 2명과 13일 KAI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부하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업관리실장(상무보) 박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더팩트DB

게다가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일 민간인 댓글부대 활동을 통해 여론 조작 활동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전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 관계자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어 13일 KAI의 회계사기(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부하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업관리실장 박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이 때문에 법원과 검찰은 장외설전까지 벌였다.

검찰 측은 '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일련의 영장기각 등과 관련된 입장'이라는 제목의 서면을 통해 "지난 2월 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새로운 영장전담 판사들이 배치된 이후 우병우·정유라·이영선·국정원 댓글부대 관련자·KAI 관련자 등 주요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한 국민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없이 기각되고 있다"며 "심지어 공판에 출석하는 특별검사에 대해 수십 명의 경찰이 경호 중임에도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은 물론 통신영장, 계좌영장까지 기각해 공범추적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어 결국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올해 1~8월까지 구속영장 기각률은 19.6%(2259건 청구 중 442건 기각)로 지난해(17.1%, 3594건 중 613건 기각) 대비 2.5%포인트 상승했다. /더팩트DB
서울중앙지검의 올해 1~8월까지 구속영장 기각률은 19.6%(2259건 청구 중 442건 기각)로 지난해(17.1%, 3594건 중 613건 기각) 대비 2.5%포인트 상승했다. /더팩트DB

실제 <더팩트>가 대검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2013~2017년 8월까지)간 서울고등검찰청 산하 지검별 구속영장 청구 및 기각'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올해 1~8월까지 구속영장 기각률은 19.6%(2259건 청구 중 442건 기각)로, 지난해(17.1%, 3594건 중 613건 기각) 대비 2.5%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법원은 "서울중앙지검이 개별 사건에서의 영장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거나 도를 넘는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반박했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권성동) 전체회의에서 "지금 관련된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것 같다. 적절한 방식을 취한 것 같지는 않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도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두 기관의 온도차가 사법계 불신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기본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원친으로 한다"며 "영장전담 판사의 철학과 원칙에 따른 결과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판사별로 너무 편차가 심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 법원 내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있는 결과가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현 대협호사협회 회장은 <더팩트>와 전화통화에서 구속영장 발부와 관련 한 법원 내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있는 결과가 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임영무 기자
김현 대협호사협회 회장은 <더팩트>와 전화통화에서 구속영장 발부와 관련 "한 법원 내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있는 결과가 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임영무 기자

김 회장은 또 "방산비리의 경우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엄격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영장담당 판사도 이에러한 부분을 고려했으면 좋겠다"면서 "국정원은 정치와 연관돼 있어서 입장을 밝히기 좀 (조심스럽다)…사안을 달리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관계자는 <더팩트>에 "우리가 직접 관여한 사건이 아니고,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 않은 상황이다"며 "사법부에 대한 존중도 중요해 입장을 밝히 곤란하다"고 했다.

bd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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